남북관계, 언론들의 덧셈과 뺄셈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남북정상회담과 대선

등록 2007.02.16 10:26수정 2007.07.0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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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계산법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한쪽은 덧셈을 하는데 다른 한쪽은 뺄셈을 한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등은 4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어제 개성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 준비접촉에 소요된 시간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여섯 토막을 냈다.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남북 대표가 실제 접촉한 시간"이라고 했다.

<경향>·<서울>은 4시간, <조선>·<중앙>은 40분

숫자놀음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40분'이 함의하는 바가 에스컬레이트 된다. '40분'이 '초고속 합의'로, 그것이 다시 '일사천리'로 변형되더니 급기야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사전에 뭔가 짜여진 게 있으니까 준비접촉이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 있지 않았겠냐는 의혹이다.

시나리오 생산 주체도 확장된다. 다른 '비공식 협의'(중앙일보) 가능성을 제기하고,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의 비밀접촉'(조선일보)을 예견한다.

두 신문이 깔아놓은 길을 걸으면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2·13 합의 이후 가속도를 붙이는 남북 접촉 이면에 뭔가 있다. '비선'에서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그게 뭘까? <조선일보>는 남북정상회담에 눈을 맞췄다.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남북 대화를 재개하려는 것이 결국 남북정상회담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찌 보면 해소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궁금증이다. 동맹국간의 정상회담도 준비단계에서 공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북정상회담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반드시 짚어야 하는 건 필요성이다. 이걸 두고 계산법이 다시 갈린다. 매우 현격하다.

<조선>의 삐딱한 계산법

<조선일보>는 삐딱하다. "여권에서 베이징 합의를 특히 반기는 이유가 현재의 정치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인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떻게 남쪽 집권세력이란 사람들까지 대선에 눈이 멀어 민족의 재앙을 팔아 표를 살 수 있다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고도 했다.

<한겨레>는 적극적이다.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했다. 전문가의 입을 빌려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경제·문화 중심의 남북관계를 핵문제와 군축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평화의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남북한 안팎의 정치적 이유로 각종 회담이 파행을 겪는 일이 더는 있어선 안 된다"고도 했다.

핵심은 역시 대선이다. <조선일보>는 "남북정상회담이 대선판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한겨레>는 "대선이 남북정상회담에 재를 뿌릴 가능성"을 경계한다.

어느 신문의 입장이 타당한지를 잴 필요는 없다. 숱하게 벌여온 논쟁이다.

도드라지는 대목이 있다. <조선일보>가 그랬다. "지금의 이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맹비난했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이 "참여정부가 1년 남았는데 이 기간에 남북관계를 불가역적 수준까지 올려놓아야 한다…이 동력이 다음 정부, 그 다음 정부까지 유지되려면 많은 것을 합의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말에 발끈해 토해낸 비난이다.

남북관계는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대선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제기됐다. 대선은 정파의 운명을 가르지만 남북관계는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그래서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이다.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견지하느냐에 따라 장기적인 남북관계, 나아가 한반도 정세가 달라진다.

원론적인 얘기가 아니다. 2·13합의에 따르면 한반도의 운명은 1년 후 중대 고비를 맞을 공산이 크다.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대략 1년 안에 끝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교롭다. 이 시점은 남한 정권의 교체기와 맞물려 있다. 정권이 '재창출'되든 '탈환'되든 남한 정부의 대북라인과 외교라인이 모두 교체되는, 그래서 대응력이 가장 크게 떨어지는 때에 북핵 문제가 최대 고비를 맞게 된다.

어쩔 것인가?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불가역'의 토대를 닦는 게 나은가, 아니면 남북정상회담을 미뤄 '가역'의 여지를 남겨놓는 게 나은가?
#정상회담 #김대중 #김정일 #김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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