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한국어로 써 본 밸런타인데이 카드

백인 유대봉씨가 아내에게 전한 카드말은?

등록 2007.02.17 19:54수정 2007.02.1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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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다음 주 수요일이 밸런타인데이예요. 이번 주 숙제는 여러분 부인들께 한국어로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쓰는 거예요. 밸런타인 카드를 써서 여러분들 부인 앞에서 읽어주세요. 그리고 그 카드를 주세요. 그렇게 카드를 주었을때 부인들이 뭐라고 했는지 써 오는 것이 다음 주 숙제예요."


지난주 한국어 수업을 마치면서 미국 아저씨들로 구성된 한국어반 학생들에게 내준 숙제이다. 공교롭게도 이 반은 한국 부인과 결혼한 백인 아저씨들로 구성된 학급이다. 항상 학교 행사가 있으면 부인과 아이까지 모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본교의 기둥들이다. 이번 주가 밸런타인데이라서 한국 부인들에게 점수를 딸 수 있도록(?) 밸런타인데이 카드에 들어갈 내용을 가르쳐 주고 직접 카드를 쓰도록 한 것이다.

어제 포도주 회사의 중역이자 어드로이트 칼리지의 학생 대표인 백인 아저씨 유대봉씨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자신의 부인에게 쓴 밸런타인데이 카드 내용이었다. 필자는 그 카드 내용을 부인에게 쓰기 전에 교정을 봐달라고 보낸 줄 알고 수정할 부분을 수정하여 다시 보냈더니 바로 "너무 늦었네요. 벌써 아내에게 줬어요"라고 답이 왔다.

오늘 수업에서 유대봉씨의 밸런타인데이 카드 내용을 함께 검토하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대봉 씨가 한글로 쓴 발렌타인데이 카드

요보,
반렌타인데이를 축하해요.
이가 인사 작아요 그렇지만 제 마음에 있어요.
제 부인만 날마다 살아요.
그리고 영원히 사랑해요.
요보

<해석>


여보,
발렌타인데이를 축하해요.
이 인사는 짧아요. 그렇지만 제 마음에서 나왔어요.
당신하고만 날마다 살아요.
그리고 영원히 사랑해요.

당신의 남편 / 유대봉



우선, '요보'는 '여보'의 오타로 유대봉 씨는 한국어를 배우기 전에도 항상 부인을 '여보'라고 불렀다고 했다. 그래서 우스운 일도 벌어지곤 했는데, 유대봉씨 댁에 미국 친구들이 놀러왔는데, 유대봉씨가 부인에게 '여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도 유대봉씨 부인에게 물 좀 주세요 (물론 영어로), 여보 (한국어로)!"라고 해서 유대봉씨가 '여보'는 영어의 '허니'에 해당한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반렌타인데이를 축하해요'에서 '밸런타인데이'를 '반렌타인데이'로 쓴 것은 유대봉씨가 'ㄴ'이 'ㄹ'의 부분처럼 생각돼서 혼동이 된다고 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그리고 세 번째 줄의 '이가 인사 작아요'의 '이가'는 '이거'의 오타이고 '이 인사'라고 해야 할 것을 '이거 인사'라고 쓴 것이다. '작아요'는 '짧아요'라고 해야 할 것을 이미 아는 단어인 '작아요'를 썼다고 했다. 그 다음 문장 '그렇지만 제 마음에 있어요'는 '그렇지만 제 마음에서 나왔어요'를 영어 식으로 쓴 것이고, '있어요'와 '이에요/예요' 모두가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혼동하는 영어권 학습자들의 오류를 보여준 것이다.

다음 줄의 '제 부인만 날마다 살아요'는 '부인'이 와이프라는 것을 이용해서 쓴 것으로 영어의 'you'에 해당하는 '당신'이라는 말을 몰라서 범한 오류이다. 이것을 통해서 '당신'이란 부부 간에만 쓸 수 있는 '달링'같은 말이라고 말해주었고, 부부 관계가 아닌 경우에 '당신'이란 말을 잘못 쓰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해요'는 지난 주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이라서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여보'라고 쓴 것은 자신을 지칭한 것으로 부인에게는 자신이 '여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쓴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해석을 붙였다.

a 추석 잔치에서 송편을 만들고 있는 유대봉 씨 부부

추석 잔치에서 송편을 만들고 있는 유대봉 씨 부부 ⓒ 구은희

한글 자판이 서툰 유대봉씨는 짧은 카드의 내용이었지만 거의 30분이 걸려서 카드를 완성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유대봉씨의 카드 내용 밑에 부인이 교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주었을때, 그 부인의 반응은 틀린 한국어를 수정하려 했다는 것이다.

유대봉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카드를 주자 "자, 그럼 어디 봅시다" 그러면서 펜으로 수정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유대봉씨가 난생 처음으로 쓴 한글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받으신 부인께서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기뻐하셨을 것이다.

또한, 오늘 수업 시간에 유대봉씨는 작은 글귀가 적힌 메모지를 한 장 들고 왔다. 거기에는 '치즈하고 사과는 냉장고에 있어요'라고 전형적인 한국인들의 흘림체로 쓰여 있었다. 특히 '치즈'의 'ㅈ'은 정직한 인쇄체에만 익숙한 유대봉씨에게는 알아보기 힘든 글자였나보다. 그 메모는 바로 유대봉씨의 부인께서 밖에 나가시면서 유대봉씨께 남긴 한글로 씌어진 메모였던 것이다. 이제는 부인과 한글로 메모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유대봉씨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a 송편을 즐겁게 만들고 있는 정성운 씨

송편을 즐겁게 만들고 있는 정성운 씨 ⓒ 구은희

같은 클래스에 있는 유대인 정성운씨도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한글로 써서 부인 앞에서 읽고 주었다고 했다. 항상 모든 일에 꼼꼼하게 성실하게 하는 정성운씨는 부인의 반응까지 저널에 적어 왔는데, 카드를 받고 부인이 뽀뽀를 해 주었다고 적혀 있었다.

사실, 자신을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애쓰는 남편들을 볼 때, 그리고 서툴지만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남편들을 볼 때, 그 부인들은 큰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생애 첫 번째 받아보는 미국 남편들의 한글 밸런타인데이 카드는 평생 그 부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한국어를 잘 하는 우리 남편도 나에게 카드를 안 써줬는데, 한국 사람이 아닌 남편이 열심히 배워서 정성스럽게 써 준 카드는 얼마나 큰 감동을 안겨줬을까?

이번 주말에는 본교에서 '설날 잔치'를 한다. 떡국을 먹고, 한복을 입어보며, 윷놀이도 하며 세배도 하고 한국 영화 '춘향뎐'도 함께 볼 것이다. 한국에서 '띠'가 뭔지를 배우고 자신의 '띠'를 알게 된 용띠 유대봉씨와 말띠 정성운씨도 함께 황금돼지해를 맞이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더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더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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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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