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해서 아름다운 그들 <기자로 산다는 것>

등록 2007.02.18 11:05수정 2007.07.06 15:43
0
원고료로 응원
a

ⓒ 호미

조직에서 몸 담고 활동한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나는 조직의 틀에 박힌 생리를 무척이나 껄끄러워 한다. 그래서 내 정체성을 굳이 밝히라면 자칭 게릴라에 독립군인 자유인이다.

내 자유를 담보하고 싶지 않아, 정당이나 그 어떤 단체에 매여 본 일이 없다. 나의 사회화된 활동이래야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집단에서 힘을 모을 일이 생기면 게릴라로 그저 머리 수를 보태주는 게 전부이다.


그런 내가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시사모' 회원으로 가입했고, 거리 문화제와 출판 기념회를 부지런히 쫓아 다니고 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나는 <시사저널> 정기 구독자도 아니었고 애독자도 아니었다. 앞으로도 정기 구독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전에 시사저널에 가진 관심이라야 "우리나라에도 진중한 주간지가 하나 있군" 정도 였다. 여성신문사에 다닐 때 시사저널 편집장이던 서명숙씨가 와서 기사 쓰기에 대해 무척 인상적인 강의를 했음에도 다른 장소에서 그를 만났을 때 기억조차 못한 정도니 말이다.

사실 기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기사가 의외로 스트레이트 기사라고 들었다. 짧은 매수에 정확하면서 인상적으로 사실이 각인되도록 기사나 머리말을 쓰는 일이 쉽지 않아 스트레이트 기사만으로 수년간 훈련을 받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스트레이트 기사를 통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일간지 기자들의 본질이라면 심층취재를 통해 어떤 사건의 뿌리를 뽑는 근성이야말로 정론을 추구하는 품격있는 주간지 기자들이 갖추어야 할 요건일 것이다.

<기자로 산다는 것>에는 근성 있는 전·현직 기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고지식해서 아름다운 사람들, 순수하고 겁 없는 사람들, 현실 감각이 없어 아직도 언론의 정도를 걷겠다는 이상주의자들 쯤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들의 18년간의 행적이 너무나 치열했다.


부도난 회사에서 십 수개월간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우직하게 버텨내 <시사저널>을 살린 사람들, 별명이 '왕뚜껑'인 사회부·정치부 기자로 잔뼈가 굵은 서명숙 전 편집장이 만삭의 몸으로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고, 일요일에 사무실서 혼자 물에 밥 말아 눈물을 반찬삼아 먹었다는 고백….

사석에서는 한없이 따뜻하고 인간적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너무나 철저하고 야박하기 그지없더라는 어느 기자의 선배들에 대한 글, 열다섯 번의 특종에 열세 번의 소송이 걸렸다는 정희상 기자의 고백 등은 프로 근성의 정수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들이야말로 명품을 만들어낼 잘 단련된 근성있는 기자들이었던 셈이다.


출판기념 겸 후원회장에서 그런 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우직함이 주는 거짓없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흔히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고들 한다. 이제 그 펜이 칼이 아닌, 자본의 노예로 전락해 펜의 기능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자들은 과감하게 자본의 노예로부터 언론의 해방을 외치며 반기를 들었다.

잠깐 신문사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한 나의 사적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광고가 목숨 줄인 상황에서 자본 권력과 맞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사저널 기자들은 목숨줄을 담보로 펜의 독립성을 지켜내기로 결정했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목숨줄을 담보했으니 그들은 반드시 살아 남아야만 한다. 어려운 싸움이지만 18년간의 근성으로 '펜이 자본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펜의 참 기능을 반드시 되찾으리라 믿기에 스스로 자유인임을 포기하고 '시사모' 회원이 된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자부한다.

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호미, 201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