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은 어려워~

[졸업고전분투기] 졸업 학점은 미달되고, 졸업 시험은 3차까지 치르고

등록 2007.02.21 11:33수정 2007.02.21 16:3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지만 혹시나 연락이 끊긴 친구의 전화가 아닐까 생각해 받았다. 전화는 다름이 아닌 학과 사무실에서 걸려 온 것이었다.


"허환주씨인가요?"
"네, 그런데 누구시죠?"
"학과사무실 조교입니다. 다름 아니라 허환주씨가 학점을 채우지 못해 졸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 뭐라고요? 그럴 리가요?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혹시 졸업시험이 통과되지 못해서 그런 건가요?"
"졸업을 하려면 140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허환주씨는 138학점밖에 이수하지 않으셨네요. 자세한 것은 학사지원팀에 문의해보세요."


@BRI@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나는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학점이 아주 좋지 않아 안 좋은 학점은 버려 가면서 겨우겨우 평점 3점을 넘겼다. 전체 평점이 3점을 넘겨 졸업을 하게 되어 기뻐했는데 인제 와서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혹시 실수로 학점을 더 버린 걸까. 아님 전산상의 오류일까.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왔다갔다했다. 졸업 학점을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말 당황이 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내가 여름에 했던 '직장체험 학점제'. 우리 학교에서는 노동부에서 지정한 기업에서 방학 동안에 인턴직원으로 일을 하면 2학점을 인정하는 제도가 있다. 나 역시 여름에 인턴생활을 했던지라 그것을 신청했는데, 혹시 그것이 인정이 되지 않은 것일까.

졸업학점은 140학점, 난 138학점


학교에 직접 가서 알아보고 싶었지만 현재 난 인턴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다. 결국 전화를 학사지원팀에 걸었다. 그런데 전화는 왜 이렇게 돌리고 돌리는지, 어렵고 어렵게 담당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담당은 내 전화번호와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하더니 자기가 한번 알아보고 나서 전화를 준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이거 참, 기다리는 사람은 피가 말라 죽겠는데 담당은 전화가 안 오고, 그렇다고 학교를 찾아갈 수도 없는 몸이고….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결국 2시간 기다렸다 다시 전화를 하니 퇴근했다고 한다. '아니 시간이 오후 4시도 안 됐는데 벌써 퇴근이라니…!'하며 벌컥 화를 내려고 하다가 이내 참았다(참고로 우리 학교 직원들은 방학 때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오후 3시에 퇴근한단다).

결국 다음날 아침에 다시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물었고, 겨우겨우 오류를 바로잡았다. 오류는 다름이 아닌 내 직장체험 증명서를 누락시킨 것. 화를 내려고 했으나 담당이 이것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말에 맥이 탁 풀려서 "알았다"고 한마디 하고 끊어버렸다. 뭐 졸업하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다행 아닌가.

전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 졸업이라는 것이 쉬운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졸업이라는 것은 무슨 아홉 고개 같았다. 한 고개 넘으면 또 고개가 나오고, 또 나오고….

졸업시험 보는 건 왜 가르쳐 주지 않는 거야

우리 학과는 몇 년 전부터 졸업하는 4학년들에게 졸업논문을 내는 것 대신, 졸업시험을 보는 것으로 바꿨다. 졸업논문을 안 내는 사람도 많고, 베껴 내는 사람도 많아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었다.

올해 졸업하는 나는 졸업시험에 강박관념이 있었다. 솔직히 말이 졸업이지 4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학과 수업은 거의 제대로 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졸업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졸업시험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란다. 3과목을 시험보는데 각각 100점 만점 중 60점만 맞으면 합격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험 공고가 난 뒤 공부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속으로 '지화자'를 외쳤다. 부담감 백배였는데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었다. 그래서 난 졸업시험 공고가 뜨면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었다. 공고가 뜨면 시험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이….

'시험 공고가 뜨면 학과사무실에서든, 친구들이든, 누구든 나에게 알려주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졸업시험을 기다렸다. 한번 제대로 공부해보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은 완전 오판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지나가다가 벽에 붙어 있는 작은 공지를 보게 되었다. 졸업시험 공고였다. '아∼ 이제야 공지를 했구나, 시험범위는 어디까지지? 장소는 어디지…' 등을 생각하면서 보다가 두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시험날짜가 '11월 20일'이었던 것이다. 뭘 그것이 놀랄 일이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공지를 본 날짜가 시험 보기 바로 3일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졸업식날, 후배들이 졸업자들이 사용했던 사물함 열쇠를 수거하고 있다.
졸업식날, 후배들이 졸업자들이 사용했던 사물함 열쇠를 수거하고 있다.허환주
내가 세상을 잘못 산 걸까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경황이 없었다. '왜 나에게 졸업시험 공지가 났다고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것일까'하며 학과 관계자들을 원망하기도 하다가,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범위를 보니 자료 찾는 데만도 하루가 족히 걸릴 거 같았다. '이를 어떻게 하나'하고 생각을 하는데, 공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1차에 떨어진 사람들을 위해 2차 시험까지 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구나'하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지화자'를 외쳤다.

결국 난 11월 20일에 치러진 졸업시험에서 떨어졌다. 뭐 그렇다고 한심하게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3과목 중 한 과목은 이틀 동안 '빡 세게' 공부해서 붙었다. 이제 남은 건 2과목, 2차 졸업시험에서 꼭 붙으리라 맘먹었다. 2차 졸업시험은 11월 27일.

2차 졸업시험 주간에는 뭔가 일이 제대로 꼬였었다. 군대에서 휴가나온 후배가 날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아오지 않나, 어머니의 중요한 심부름을 하기 위해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집에 가야 하지 않나,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던 친구에게 연락이 오질 않나…. 뭐가 꼬여도 제대로 꼬였다.

하지만 자료야 다 구했겠다, 시험 보기 이틀 전부터 밤새서 공부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또다시 완전한 오판이었다.

난 3학년까지 신문을 만드는 학보사에서 활동을 했다. 4학년이 되어서는 이제 신문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신문사 후배가 시험을 앞둔 3일 전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 바쁘세요?"
"어. 아니, 안 바빠, 왜?"
"아니요. 마감을 해야 하는데, 기자들이 한 명도 없어서요."
"엥, 그래? 기사는 다 채웠어?"
"아니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아, 그래…."
"……."
"……."


솔직히 후배의 도움요청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기자 1, 2명이 힘들게 신문을 만들고 있는 것을 아는데, 그것을 모르는 체하기란 어려웠다. 결국 난 시험을 3일 앞두고 후배를 돕기 위해 학보사로 갔다. '빨랑 끝내고 시험공부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몸도 마음도 파김치

금요일부터 시작한 학보사 일. 빨리 끝내고 시험공부를 해야겠다는 내 생각은 신문을 만들면서 저만치 멀리 떠나갔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렇게 저렇게 해서 신문은 토요일 새벽에야 겨우 다 만들었고, 나는 후배와 함께 마감의 피로를 풀기 위해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이제 졸업시험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되어버렸다.

거의 아침이 될 때까지 마신 다음 학교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눈을 뜨니 낮 12시. 정신적 공황상태를 느꼈다. 졸업시험은 오후 2시였기 때문이었다.

난 2차 시험 역시 떨어졌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하얗게 뒤덮었다.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을 순 없지,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학과사무실에 문의를 했다. 3차 졸업시험은 없느냐고…. 딱 잘라서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서글프던지, 눈물이 날 뻔했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학과장 교수님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학과장 교수님은 어찌나 바쁘시던지 연구실을 갈 때마다 번번이 계시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안절부절. 어떻게 할까 하다가 교수님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구구 절절한 사연을 담아서…. 물론 거짓말도 약간 담아서 말이다.

이게 통했던 것일까. 교수님에게 답 메일이 왔다. 3차 시험 보는 것을 다른 교수님들과 한번 고려해보겠다고….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감사드린다고, 그리고 평소 교수님을 존경하고 있었다며 나의 진로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다며…. 속이 너무 보였나? 그 뒤 교수님에겐 연락이 없었다.

조금 천천히 걷기

속이 부글부글, 머리가 지끈지끈.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이번에 졸업하지 못하면 여름에 졸업하는 것인데, 그럼 취직도 못 하고 집에서는 아마 날 잡아먹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 초조한 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교수님에게 메일이 왔다. 학과사무실에서 내 연락처를 몰라 연락을 하지 못했다며 시험은 12월 26일 교수연구동에서 본다는 내용이었다. 기쁜 마음 반, 우울한 마음 반이었다. 기쁜 거야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거였고, 우울한 마음은 시험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인생이 왜 이런 거야 대체….' 난 자학했다.

그래도 이틀 동안 별 방해 없이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일까. 겨우겨우 졸업시험을 통과했다. 다행히도 말이다.

새로운 곳으로의 도전. 누구나 두렵고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새로운 곳으로의 도전. 누구나 두렵고 어렵기는 마찬가지다.김수원
참 힘들었다. 남들을 보면 졸업 참 쉽게 하는 거 같았는데, 내가 이런 일을 겪다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다들 졸업을 하기 위해 뭔가 어려운 사정들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어쨌든 난 이제 졸업을 한다. 졸업이라는 것이 조금은 두렵고 사회라는 곳에 발을 내딛는 것이 무섭긴 하지만 말이다. 깜깜한 터널에 혼자 내버려진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아 그저 저 멀리 보이는 빛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늘 해왔던 것처럼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가면 되지 않을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