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가정법원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건물.오마이뉴스 권우성
넷째, 법원내의 엘리트코스로 법원행정처를 거친다는 점이다.
전도양양한 법관 상당수가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아 재판보다는 법원행정을 담당한다. 오랜 기간 동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다가 대법관이 된 분 가운데는 재판으로부터 너무 오래 떠나 있다 보니 재판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이래 임명된 대법관의 약 40%가 법원행정처의 고위직을 맡은 적이 있고, 법원행정처 차장(최근까지만 해도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이 겸직하였다)의 경우 대법관으로 승진한 경우는 70%를 넘고,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헌법재판관·고등법원장 등 상급의 직위로 승진한 것으로 나타난다.
다섯째, 법원행정에 종사하는 법관이 더 우대된다는 점이다.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법관들이 우대되는 것은 물론, 대법관으로 '승진' 임명된 법관의 대부분은 법원행정에 종사하던 법관들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판을 담당하다가 대법관에 임명된 경우는 극소수(김영란 대법관, 윤일영 대법관, 안병수 대법원판사 등)이고 대부분은 법원장 등 행정에 종사하던 법관들이다. 사법부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통합되고 통제되는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법원 내의 (인사)문제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책을 출판한 어느 변호사는 20년이 다 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인사유감'이란 글을 썼다가 서울민사지방법원 발령 하루 만에 다시 울산지원으로 좌천당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괘씸죄에 걸려 좌천당했다는 얘긴 들었지만, 본인이 증언하는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책에 실려 있다는 내용을 빌자면, 당시 대법원장이 "나는 이 나라에서 나보다 높은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는 사람이다, 새까맣게 아래에 있는 젊은 판사가 나를 모욕에 가깝게 비판하는 것을 가만둘 수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순하게 생겼구먼, 서 판사가 비판한 인사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서 판사도 자숙하면 선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법관조직의 과도한 관료화·계급화는 사법부 만악의 근본'이라는 글을 썼다가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지금은 어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분도 비슷한 경우이다.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대법원장의 인사에 대해 감히 유감이라니 불경죄에 해당할 법 하다.
아하, 대법원장이 그런 자리였던가? 며칠 전에는 2월 법원인사에 대해 현직 판사가 비판하는 글이 법원내부통신망에 올라 보도되기도 한 걸 보면 예전만큼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대법원장의 여전한 인사권 앞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이상하기 그지없는 법원 인사의 몇 가지 법칙
이런 인사법칙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아무래도 서열에 충실하다는 것 말고는 없다. 아마 법원에 근무하는 분들에게는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여겨질 지 모르겠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참으로 이상하기 그지없는 것이 법원의 조직이고 인사이다. 냄새나는 방안에 오래 있는 사람은 그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방에 새로 들어온 사람은 그 냄새를 쉽게 맡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과거 사법부의 인권옹호 노력이 부족했던 데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였고, 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그 용기를 칭송하였다. 사법부의 수장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참으로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한 사건이라 할 법하다.
그러나 과연 그게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바라봐야 할 일일까? 과거의 잘못된 판결이 한두 건도 아니고 천여 건이 넘는데, 법관들은 또는 과거에 법관이었던 사람들은 그저 대법원장님의 말씀이라고 경청만 하고 있어야 옳은 것일까? 혐의를 받는 판결을 한 판사는 자존심도 없나?
대법원장이라는 자격으로 재심을 거치지 않고 법원의 판결에 대해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헌법에서 요구하는 법원의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발언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결론이야 옳다지만, 이런 발언의 맥락은 결코 적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에 반할 위험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이런 무반응이 이러한 법원의 서열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서열화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대법관의 임명방식·대법원장의 인사권과 법관 양성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