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할머니가 도시 할머니가 되었네요!"

9년 만에 어머니 모시고 미장원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07.02.23 16:32수정 2007.02.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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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머니 뒤를 빈 휠체어를 끌고 따라가는 아내, 그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어머니 뒤를 빈 휠체어를 끌고 따라가는 아내, 그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박철

봄이네요. 봄 햇살이 환장할 정도로 눈부신 한낮입니다. 봄을 봄이라고 말할 밖에 달리 말해 보았자 군더더기가 될 듯싶네요. 오늘 아침은 아침산행을 다녀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미용실을 다녀왔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9년 전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하십니다. 남들이 장애인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래서 문밖 출입을 자유롭게 못하시지요. 어머니의 외부와 소통은 전화가 유일할 것입니다.

@BRI@저희 집 식구가 강화에서 8년을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 온 지 만 2년이 넘었습니다.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어머니를 강화에 두고 와 늘 마음이 걸렸습니다. 명치끝이 체한 듯 늘 더부룩했습니다.

팔십이 다 된 노인을 두고 온 이유는 새로 이사온 사택에 방이 둘밖에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시골생활이 좋다며 부산행을 거부했습니다. 너무 멀어서 어머니를 뵈러 강화까지 다녀오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2년 동안 빚쟁이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성치 않은 몸이신데 저러다 무슨 일이라도 당하시면 어떻게 하나 그게 늘 걱정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당신 혼자 사시는 것이 자식들에게 훨씬 편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말만 믿고 크게 선심이라도 쓰듯이 적당히 어머니를 잊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러다 작년 말 새벽에 묵상을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목회(牧會)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돌보고 섬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저 혼자 살자고 어머니를 시골에 내팽개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렇게 살 수 있는가? 그렇게 하고도 양심 있는 목사라고 할 수 있는가?'

마치 쇠망치로 한 대 맞은 듯이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너무 저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어머니를 모셔오자고….


착한 아내는 순순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을 쉽게 돌릴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싫다며, 여기가 좋다고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속내를 왜 모르겠습니까? 어머니도 실은 큰아들네랑 살고 싶으셨습니다. 다만 형편이 넉넉지 못한 큰아들 내외에게 부담을 주게 될까봐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어머니의 고집은 대단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설득해도 막무가내셨습니다.

"어머니, 제발 저를 보아서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잘하고 싶어요."

아침마다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단단히 잠겼던 어머니 마음의 빗장이 열렸습니다. 간신히 어머니의 승낙을 받아내고 지난 1월 말, 서울에 사는 동생이 어머니를 부산까지 모시고 왔습니다. 어머니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리 한쪽을 못 쓰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집안 구석구석을 다 고쳤습니다. 완전 새집이 되었습니다.

a 지난 설날, 어머니가 낳은 사남매 식구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모였습니다.

지난 설날, 어머니가 낳은 사남매 식구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모였습니다. ⓒ 박철

지난 설 명절에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했습니다. 저희 4남매 식구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모였습니다. 누나네는 자형과 조카가 외국에 살기 때문에 자기 식구 4명도 5년만에 모였다고 하는데, 생각지 않았던 누나네 식구까지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어머니가 얼마를 더 사실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런 일을 없을 듯싶습니다. 밤늦도록 모두가 서로 배려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자고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사진도 찍었습니다.

어머니가 척추를 다치고 미장원 출입은 9년만에 처음인 것 같습니다. 휠체어를 극구 사양하고 워커를 의지해서 조심조심 골목길을 걸어가시는 어머니, 그 뒤를 빈 휠체어를 끌고 따라가는 아내, 두 여자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저랑 셋이 미용실을 가기는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a 미용사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잘라냅니다

미용사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잘라냅니다 ⓒ 박철

미용사는 능숙한 솜씨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잘라냅니다. 바닥에는 흰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이발을 다 마치고 어머니가 하얗게 웃으십니다. 기분이 무척 좋으신 모양입니다.

"어머니, 머리를 깎으시니 십 년은 젊어 보이시네요. 시골 할머니가 도시 할머니가 되었네요!"

아내는 이를 드러내고 어머니보다 더 크게 웃습니다. 봄 햇살이 인기척도 없이 골목 안에 가득합니다. 이보다 기분 좋을 수가. 참으로 행복한 아침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저를 마치 효자처럼 생각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실을 그렇지 못합니다. 저도 이제 50이 넘었으니 사람 구실하며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저를 마치 효자처럼 생각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실을 그렇지 못합니다. 저도 이제 50이 넘었으니 사람 구실하며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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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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