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으로 '친일역사관' 건립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사전'에 이어 중점과제로 추진... 송기인 신부 1억 기부

등록 2007.02.23 18:53수정 2007.07.0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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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순종의 칙유.

순종의 칙유. ⓒ 민족문제연구소

"여러분이 모아주신 자료가 역사를 창조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가 일제 식민정책의 실상과 친일행위자의 반민족적 행위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절의 민중생활 등에 대한 자료를 상설 전시하는 역사관을 만들기로 했다.

@BRI@정치권·언론계·행정부 등에 잔존하는 친일세력의 방해로 좌초될 뻔했던 '친일인명사전편찬' 사업을 국민이 살려냈듯이 역사관 건립 또한 국민의 동참을 호소해 또 하나의 역사를 일궈낼 방침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24일 오후 2시 충무아트홀(컨벤션센터)에서 정기총회를 열어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 ▲친일파연구총서 완간 ▲경술국치 100주년 기획사업 추진을 3대 중점 장기 과제로 확정짓는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과 일제협력단체사전,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등에 대한 '친일파연구총서'를 2010년까지 완간할 예정이다. 또한 일본과 한국 우익들의 식민지미화론을 반박하게 될 '일제강점기 피해종합보고서' 간행사업을 '경술국치 100주년 기획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까지 추진한다.

연구소는 이날 친일문제 연구로 해직됐다가 장기간의 투쟁을 통해 복직한 김민수 서울대 미대교수에게 공로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역사관 건립을 통해 어두웠던 역사와 진정으로 화해해야"


연구소는 이날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이하 역사관) 건립을 위한 '역사관건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한다. 준비위원장은 역사학자 이이화씨가 맡기로 했으며 리영희, 백낙청, 법륜, 이만열, 조정래, 최병모씨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한다.

올해에는 '자료기증운동', '연구소 소장 자료홍보', '기획전시' 등에 주력한 뒤 내년에 역사관건립위원회 발족과 함께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범국민 모금운동을 추진할 방침이다.


연구소는 2만여 점의 희귀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이 자료와 국민들의 기증 자료를 건립될 역사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연구소가 보관한 자료 가운데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조선의 통치권을 대일본 황제에게 양여한다"는 내용이 담긴 '칙유(勅諭·황제의 포고문)'와 데라우치 마사다케 초대 총독의 칙유, 이완용을 비롯해 권중현, 조중응 등 친일파들의 훈장증서, 편지 등이 있다.

연구소가 기증받고자 하는 자료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일제의 수탈과 강제동원에 관한 유물과 피해자의 유품,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한 작품과 문헌자료, 당시 민중들의 생활상에 관련된 자료로 문헌, 영상, 음향, 박물 등이다.

이이화 준비위원장은 23일 "일제 잔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일부 학자들이 식민지근대화론 등의 주장을 펴면서 일제식민지를 미화하고 있다"며 "관념적으로 친일청산을 외칠 때가 아니라 일제청산을 구체화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할 때이며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환수는 역사적 행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준비위원장은 또한 "후손들에게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알게 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미래를 여는 것"이라며 "자료 수집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너무 큰 고통을 가했기 때문에 상처와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라며 자료수집에 자신감을 보였다.

이 준비위원장은 특히 "보수 세력들은 친일청산 문제를 국민 갈등과 분열을 유발시키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반민족행위에 대한 역사청산은 통일시대를 향한 민족의 과제"라며 "역사청산의 기념비를 세우는 역사관 건립을 통해 어두웠던 역사와 진정으로 화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민 참여로 역사관 건립돼야 제 값어치 할 것"
[인터뷰] 송기인(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신부

▲ 송기인 신부
ⓒ오마이뉴스 조호진
송기인(67) 신부는 지난해 말 민족문제연구소에 1억여 원을 기부했다. 연구소 초창기부터 지도위원과 이사 등을 지낸 송 신부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1년간 재직하면서 받은 급여 9700만원을 고스란히 모았다가 기부한 것이다.

송 신부는 자신이 전달한 기부금이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의 종자돈이 된 것에 대해서는 무덤덤했다. 그러나 역사관 건립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위해서는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며 "국민의 힘으로 '친일인명사전편찬'이 추진됐듯이 국민의 참여로 역사관이 건립돼야 제 기능을 하고 값어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22일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이다.

- 기부금을 전달하게 된 계기는.
"위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받은 급여 전액을 연구소에 전달했지만 용도는 강조하지 않았다. 나는 교구에서 기본 생활비가 나오기 때문에 월급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연구소는 늘 쪼들린다. 그러한 형편을 봐왔기 때문에 필요 경비로 쓰라고 전달한 것인데 역사관 건립에 사용하겠다는 뜻을 전해왔기에 그런 줄 알고 있었다."

- 기부금이 종자돈이 되어 역사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데 소감은.
"'반민족문제연구소'라는 명칭으로 연구소가 출발할 때 이사로 참여하면서 사단법인을 추진하는 과정도 지켜봤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과거 연구소 이사로 있었기 때문에 신청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사단법인 신청이 4번이나 반려됐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된 것 같지만 사회 곳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친일보수 세력이 방해하고 있다. 일제잔재를 청산해야 민족의 긍지를 제대로 찾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역사관 건립은 매우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역사정신' 혹은 '시대정신'이 '정치적 논란'과 '경제중심의 가치'로 인해 실종된 분위기이다.
"삼엄하고 암울했던 유신치하에서는 목숨을 바치고, 감옥에 가면서도 군사독재 타도를 외쳤다. 나이, 지역, 신분 등에 상관없이 하나가 되어 싸웠는데 지금은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면서 민주화 세력이 분화됐다. 이런 기회를 노리던 수구·보수 세력이 이 틈을 타고 부상하고 있다. 어느 역사에서나 역사의 수레바퀴에 브레이크를 거는 세력은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가 뒤로 후퇴한 적은 없었다. 우리 사회와 역사의 발전은 계속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다만 속도는 진보세력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본다."

- 이러한 때에 역사관 건립의 필요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건물에 근대역사 전시관으로 만들었는데 이곳은 일제 당시 동양척식회사가 있던 수탈기관이었다. 전시관에 찾아온 관람객 가운데 초등학생들의 호응이 큰 것을 보면서 역사를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전해야 함을 느꼈다. 역사관을 국가가 추진할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위해서는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국민의 힘으로 '친일인명사전편찬'이 추진됐듯이 국민의 참여로 역사관이 건립돼야 제 기능을 하고 값어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민간이든 기관이든 역사기록을 보존하는데 소홀하다는 비판이 늘 제기돼 왔다.
"역사의 보존이나 기록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매우 부족하다. 순교와 박해 등을 겪은 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프랑스 신부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됐다. 만약 한국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기록을 남겼을 지 의문이다. 연구소가 친일자료를 힘들게 찾아낸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이제 자료를 잘 활용하고 보관할 책임이 우리 앞에 놓였다. 역사자료를 중시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민족도 나라도 바르게 발전한다고 믿는다."

- 대선을 앞두고 진보-보수논란이 가열되면서 과거청산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자연스러운 정권교체는 국민의 뜻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회의 진보가 정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의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역사발전이 늦어지고, 타격을 받을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다. 걱정한다고 마음대로 되겠는가. 큰 틀에서 보면 역사의 순리라고 본다."

- 재직하는 기관의 명칭처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를 위해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는 진실을 밝히고 화해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그저 대충 덮으면 시간이 해결한다는 사고가 강한데 그래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천주교의 고백성사는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에 대한 고백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한다. 우리 기관이 하는 일 또한 그렇다.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벌을 주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규명을 통해 진정으로 화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해자가 잘못을 고백한다면 얼마나 멋진 화해가 되겠는가. 가해자들이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빈다면 국민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제주 4.3사건과 인혁당 재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해자는 고백을 꺼리고 결국, 정부가 대신해서 용서를 구하게 된다. 이런 화해는 화해라고 할 수 없다. 화해하는 좋은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요즘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회 원로 등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데 가해자들이 잘못을 고백할 것을 당사자들에게 권고해 줄 것을 부탁할 예정이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친일역사관 #순종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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