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니, 이젠 더 이상 춥지 않습니다

원주 방송고 늦깎이 졸업생 박영란씨를 만나다

등록 2007.02.26 16:50수정 2007.02.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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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대부분의 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린다. 하지만 요즘 졸업식 풍경은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들면서 눈물바다를 이루던 졸업식을 경험했던 어른의 눈에 밀가루가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요즘의 졸업식은 낯설기만 하다.


졸업과 함께 대부분이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요즘 졸업이 주는 의미가 예전처럼 각별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떠난다는 아쉬움보다 벗어난다는 해방감이 앞선다. 가난과 남루함이 일상이 되어 살아온 세대에게 졸업은 보다 나은 사회에 한 발을 내딛기 위한 통로였다. 하지만 풍요 속에서 생활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졸업은 그다지 절박한 게 아니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 정도로만 남아 있다.

남다른 감회를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졸업식도 있다. 가난에 꺾여 제 나이에 공부를 하지 못한 이들이 다니는 방송고 졸업식은 예전의 정겨움이 많이 남아 있다. 늦깎이 학생이 되어 고등학교 3년 과정을 마친 이들이 느끼는 방송고등학교 졸업식에는 눈물과 감동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a 졸업식장에서 답사를 발표하는 박영란 학생

졸업식장에서 답사를 발표하는 박영란 학생 ⓒ 원주 방송고등학교

지난 2월 11일 원주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 박영란씨를 통해 학교에 다닌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졸업이 어떤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되새겨본다. 이 글은 졸업식장에서 박영란씨가 발표한 답사와 메일을 통해 주고 받은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이들이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당하는 상처는 많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가져오는 가정환경조사서의 부모 학력을 적는 곳을 보며 상처를 받고, 직장에 취업할 때, 승진할 때 받는 불이익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입학할 학교를 찾기도 어렵지만, 방송고와 같이 입학할 학교가 있다 해도 선뜻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박영란씨의 경우는 어떠했는지 알아보자.


3년 전 우리는 원주 방송통신고등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가슴 한 켠에 숨겨 두었던 학벌이라는 비밀 아닌 비밀의 보따리를 처음으로 이곳에서 풀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거듭된 망설임과 주저함을 뒤로 하고 그간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쌓아온 사회적 위치를 접어두고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과 희망을 책가방에 담아 더 이상 아들의 학교가 아닌 나의 학교에서 나의 선생님과 누구누구의 엄마와 아빠가 아닌 나의 이름으로 처음 교정을 밟았습니다.


입학이라는 벅참과 설렘보다 혹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옆 친구 얼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그간 잊고 살았던 내 이름 석자를 또렷이 불러주시는 선생님의 출석 체크 시간엔 어리둥절 대답도 시원스레 못하면서 얼마 동안을 숨어 다니듯 나의 고교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알아볼까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한 방송고 생활이었지만, 그 생활 속에서 그동안 잊혀진 이름이 선생님 입을 통해 되살아났음을 회상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방송고 생활은 부러움 속에서 두 아들이 다녔던 학교 건물에서 아들의 담임을 했던 선생님 반의 학생이 되어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했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한 달에 두 번 하는 등교 일엔 남모르게 뜨겁게 박동치는 가슴을 감추느라 하루 종일 냉수만 들이켰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아들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두 아들이 가장 부러웠었는데 그 아들들이 꿈과 지식을 키워간 교실에서 그 아들의 담임선생님을 내 담임선생님으로 맞아 나도 아들처럼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어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얼마나 오랜 세월 기다리며 준비해 왔던 날들인데요.

뒤늦게 시작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한 달에 두 번 학교에 가서 받는 출석 수업이지만 각 과목 선생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졸업을 맞으며 그동안 가까이 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이 든 제자를 인정해 주시고 움츠러들었던 내 자신에게 가치 부여를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부족한 나의 스승임을 뿌듯해 하시는 영원한 담임 장해일 선생님.

언제나 가슴을 활짝 열고 저희들의 애환과 기쁨을 마치 당신의 일인양 챙겨 주시고 보듬어 주시며 용기를 주셨던 우리들의 영원한 지주 함영기 선생님.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본교 학생들 지도하시느라 피곤에 지친 몸으로 꼭 쉬셔야 할 일요일도 반납한 채 저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시려 애쓰셨던 각 과목 선생님들. 지난 3년간은 선생님들이 곁에 계셔서 너무 행복 했습니다.


방송고 3년을 누구보다 뜨겁게 보냈던 박영란씨에게 졸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메일을 통해 보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건설회사에서 10년째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대학을 전공한 젊은 친구들과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늘 보이지 않게 학벌과 짧은 지식 때문에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괜히 주눅 들고 자신 없고….

방송고를 졸업하고 나니 이젠 더 이상 춥지 않습니다. 광고지에 나오는 구인 광고를 보면 거의 모두 나에게 자격을 주는 것 같아 저는 요즘 구인 구직 광고난을 재미있게 자주 본답니다. 이렇게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을 왜 진작 하지 못했지 후회도 하구요.


졸업 이후의 생활에 대해 박영란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방송고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합격해서 입학을 기다리는 감격을 꾸밈없이 표현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박영란'이란 이름을 영광스럽게 대학 학적부에 올리다니 너무 감격스러워 매일 혼자 자꾸만 크게 웃습니다. 이런 제 기분 아실런지요?

졸업이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느낌으로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거쳐 가는 과정 정도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졸업은 큰 느낌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졸업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쁨으로 다가서는 이들이 있다. 박영란씨를 비롯한 방송고 졸업생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이룬 졸업이기에 그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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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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