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정치적 도덕적 쇄신을 추진하기 위한 `참정치운동본부`가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서경석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인명진 당 윤리위원장등이 나란히 출범식장에 앉아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레판토 해전의 베네치아와 한나라당의 차이
보수세력을 비판하자면 먼저 대표적인 보수정당 한나라당을 과녁 위에 올려야 한다. 한나라당 하면 가장 먼저 2002년 대선을 떠들썩하게 만든 병역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다. 세월이 지났다지만 여전히 한나라당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거리가 먼 것이다. 일본의 보수정당이나 유럽의 귀족, 미국의 보수세력이 가지고 있는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한국의 한나라당 인사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세계사를 읽다보면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일어서는 나라와 민족은 반드시 '싹수'가 있었다. BC 500년께 이탈리아 반도 중부 조그마한 언덕에서 일어난 로마가 그렇고, 14∼15세기 중세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고 전성기를 누린 해상무역공화국 베네치아가 그랬다. 로마와 베네치아가 흥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 징표는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었다. 1571년 10월7일 일어난 레판토 해전을 보면 이런 정신을 잘 알 수 있다.
지중해 제해권을 두고 투르크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일대 결전을 벌인 이 해전에서 기독교 함대는 비록 승리했지만 희생도 컸다. 기독교 함대 전사자가 무려 700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베네치아 공화국 참전자가 가장 많았다. 기록 문화에 투철했던 중세의 베네치아는 당시 전사자를 귀족과 평민 등 신분별로 나누어 단(單) 단위까지 기록해 놓았는데, 문제는 귀족 전사자가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전사자 처리방식. 베네치아 당국은 평민 전사자를 국립묘지격인 국가유공자 묘역에 묻었는데, 귀족 전사자는 전사자 명단에만 올리고 이 묘역에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귀족들은 따로 좋은 개인 묘지를 마련할 재력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전사자 묘역에 수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당국이 귀족전사자 유족들에게 베푼 것은 '명예'였다. 베네치아의 명문가들은 레판토 해전 전사자를 몇 명 냈다는 것을 가문의 최고 명예로 삼았다.
이런 사례는 서양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삼국통일 전쟁 당시 화랑 관창을 아들로 둔 신라의 품일 장군이나 전쟁에서 패한 아들을 용서하지 않은 김유신 장군에게도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있었다. 아들을 한국전쟁에 내보내 전사하게 만든 중국의 모택동도 마찬가지다.
이런 전통에서 비추어보면 한국의 보수정당 한나라당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들은 명백하게 불법행위를 저질러 소속 의원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는데도 방탄 국회를 연 사례가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데도 석방결의안을 내 감옥에서 해당 의원을 빼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아직도 특권을 즐길 뿐 조국과 공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지 않고 '짐'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한나라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으로 가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삼국통일을 하기 전 신라의 서라벌에 안주해 있던 진골, 성골 계급 같다고 할까? 당시의 진골, 성골들은 삼국통일이라는 대업보다는 서라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편안하게 먹고 마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초석을 닦은 태종무열왕 김춘추도 처음에는 서라벌의 진골 오렌지였다.
현재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 지역구를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을 들여다보면 이들 중 다수가 정당의 지상과제인 정권획득보다는 지역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최우선 고려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행태는 지난 2006년 5월31일 치러진 지방 선거 공천과정이나 지역구 의원들이 입김을 넣을 수 있는 모든 정치 일정에서 엿보인다. 즉 이들에게는 당장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이나 자신의 지역 영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물이 절실한 것이다. 이들은 정치적 소신이나 인물 됨됨이보다는 자신에게만 머리를 조아리면 만사형통이다.
한나라당은 또 보수정당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한 정치이념이 없다. 노무현 정부가 4대 개혁입법이라고 내세운 국보법 폐지, 과거사 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을 놓고 벌어진 국회 내 공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단기간에 국민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보수정당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선들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오락가락했다. 이런 한나라당이 만약 집권한다면 또 하나의 이익집단이 들어서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