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농사지은 아빤 이익이 없다"

콩 고르기 아르바이트 한 아들의 글... 씨앗 한 톨의 위대함으로

등록 2007.02.27 14:33수정 2007.02.2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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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이들이 작은 상을 앞에 두고 콩을 고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가는 큰놈은 손으로, 초등학교 6학년 되는 작은 놈은 작은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아이들이 작은 상을 앞에 두고 콩을 고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가는 큰놈은 손으로, 초등학교 6학년 되는 작은 놈은 작은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 이우성

겨우내 콩을 골랐습니다. 농부에게 겨울은 긴 휴식이기도 하지만 콩이나 마늘을 갈무리하거나 집안에서 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서리태와 약콩(쥐눈이콩)을 심어 꽤 많은 양을 수확했습니다. 일부는 친환경생협단체에 수매로 내고 일부는 우리 먹을 것, 그동안 신세진 분들에게 나누어먹으려고 남겨두었다가 시간 날 때마다 콩을 골랐습니다.

검불이나 쭉정이를 고르는 일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 같습니다. 명상하는 일입니다. 점치는 집에 있는 것과 같은 앉은뱅이 상을 가운데 두고 조용히 앉아 잘생긴 콩만 고릅니다. 며칠을 해도 양은 줄지 않습니다. 고르다보면 쥐눈이콩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봅니다. 쥐눈이콩은 유난히 예쁩니다. 정말 꼭 쥐 눈과 닮았습니다.

@BRI@모든 농사일이 그렇지만 콩농사도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콩을 심고, 풀을 매주고, 넘어지지 않게 줄을 매주고, 콩꺽기를 하고, 타작을 하고, 콩을 고르는 이 모든 일이 일일이 손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니 조금 양이 많다 싶으면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이제 수확을 마치고 매끈하고 잘 생긴 실한 놈은 무게를 달아 지퍼 백에 담아 아는 분들에게 선물을 하고, 쭉정이는 밥에 놓아먹거나 콩나물을 해먹거나 튀밥을 튀겨 간식용으로 먹습니다.

생각보다 남은 콩의 양이 많아 아이들에게 1kg 고를 때마다 1000원씩 준다고 하고 콩을 고르게 했습니다. 돈에 눈이 먼(?) 아이들이 밤늦도록 콩을 고릅니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는 작은 아이가 쓴 글이 하도 재미있어 덧붙입니다.


“아빠가 콩을 1kg 고를 때마다 1000원을 주신다고 해서 콩을 고르고 있었다. 콩을 고르다가 이상하게 생긴 것이 좋은 것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럴 땐 너무 귀찮다. 그걸 어떻게 또 찾아서 막 다시 옮겨야한다. 하지만 잘될 때는 너무 잘 되서 좋기도 하다.

어느 날은 나무 책상에 콩을 깔아놓고 콩을 고르다가 흙이 너무 많아서 흙을 터는데, 책상 모서리가 부러진 것이다. 엄마가 보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막상 해보니깐 그게 더 편했다.


엄마가 왔다. 잘했다고 했다.... 돈이 궁해서 엄청 열심히 하다 보니 3kg이 넘었다. 더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만했다. 다음날도 했다. 다음날은 더 열심히 할라고 했지만 왠지 어제 한 것이 오늘 할 때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별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했다.

오늘은 일이 술술 잘 풀린다. 하지만 부러진 모서리가 있는 쪽을 형이 차지해 버려서 잘하지 못했다. 책상모서리가 위쪽으로 구부러져 있어서 끌어올릴 때 흘리게 된다. 흘리다가 방법을 터득했다. 그래서 떨어지는 곳 바로 밑에 통을 놓아두고 하니 모서리가 잘린 부분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막 열심히 했다. 2천원이 나왔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다. 매일매일 하고 싶지만 다음날이 되니 막상 하기가 귀찮고 피곤하고 손도 아프고 콩도 별로 없어서 최악의 조건이었다!

별로 땡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할까 말까 생각중인데 요즘 다시생각해보니 내가 후회스럽다. 젠장 그때 열심히 했으면 저금할 돈도 생겼을 텐데 큭.. 이제 돈이 있다면 열심히 해야겠다. 하지만 돈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만 생각하지 말고 “아버지 일을 도우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근데 며칠 후 아빠가 우리가 힘들고 열심히 땀 흘리며 그 조그만 한 콩을 깜찍하게 골랐는데, 그 콩을 그냥 모두에게 나눠주시다니. 팔 것도 별로 없었는데 그걸 모두 주고 이제는 아예 바닥이 다되어간다. 근데! 그것도 팔지 않고 친척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마음이 넓은 건지 우리를 약올리시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콩을 열심히 고르고 모두를 나누어주고 우리에게도 돈을 주고 그 콩을 나누어주고 하면 아빠는 남는 이익이 없는 게 아닐까? 열심히 농사지은 것인데 아무 이익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깐 아빠가 약간 불쌍했다. -끝-”


a 잘 생긴 콩만 골라 지퍼백에 담아 선물용으로 신세진 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애써 고른 것을 그냥 나눠준다고 불만이 많습니다.

잘 생긴 콩만 골라 지퍼백에 담아 선물용으로 신세진 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애써 고른 것을 그냥 나눠준다고 불만이 많습니다. ⓒ 이우성


옛날 시루 맨 아래에는 생 짚을 깔고, 그 위에 짚을 태운 재를 깔고 불리지 않은 쥐눈이콩을 한 켜 깔고, 그 위에 다시 물에 불린 콩을 한 켜 깔고 해서 콩나물을 해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아침마다 콩나물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눈인사를 하고 물을 번갈아가면서 줍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콩나물은 아이들에게는 자연공부와 같습니다.

시중에 파는 것과 같이 통통하게 살이 찌지는 않지만 홀쭉이 콩나물을 무쳐먹고, 밥에 놔먹고, 국에 넣어먹고 해서 밥상에 올리면 젓가락이 자주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콩농사가 콩나물반찬으로 끝이 나고 이제 한해 농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한 들판에는 경운기 소리, 트랙터 소리가 요란합니다. 두엄을 내고 밭을 가는 부지런한 농부도 있습니다. 온난화의 징조인지, 왠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어김없이 들로 밭으로 나가는 농부들이 있는 한 세상은 또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생기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도 잡곡, 채소, 고추, 콩농사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씨앗을 뿌립니다. 씨앗 한 톨의 위대한 움직임이 이제 땅 위에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덧붙이는 글 |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김없이 들로 나가는 농부들, 힘들고 어려워도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립니다. 이런 농부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허리 휘고 손발이 갈라져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을 위해 농부들이 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김없이 들로 나가는 농부들, 힘들고 어려워도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립니다. 이런 농부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허리 휘고 손발이 갈라져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을 위해 농부들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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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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