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1천만원 시대' 대학생들

등록 2007.02.28 12:17수정 2007.02.2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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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하대학교 후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 ‘인상된 등록금이 버겁다’는 내용을 플래카드 문구를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인하대학교 후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 ‘인상된 등록금이 버겁다’는 내용을 플래카드 문구를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 우먼타임스

[이재은 기자·최윤희 인턴기자]'내 동생 입학한다. 나 휴학한다. 우리 형 복학한다. 나 군대 간다.'

새 학기 개강을 앞둔 2월 중순 인하대학교 캠퍼스에 걸려 있는 현수막 문구다. 2007학년도 1학기 등록금이 9.5% 인상돼 재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과도한 부담을 받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학 1년 등록금이 1천만원에 육박하면서 각 대학 캠퍼스 곳곳에는 '인상된 등록금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나붙고 있다. 학기당 4백만원(공과·예술대학 기준)을 훌쩍 넘는 등록금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휴학을 하거나 서둘러 입대를 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비싼 학비를 마련하느라 오히려 공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고달픈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서울 C대학 음악학부에 재학 중인 정소연(가명·21)씨. 아침 일찍 일어난 그는 식사를 하고 서둘러 학교로 향한다. 이른 시간, 한산한 도서관 열람실에서 정씨는 전공 서적을 펴고 공부를 시작한다.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친구들은 각종 학원에 다니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씨는 날마다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면서 취업 시험에 대비한다. 당장 이번 학기 등록금을 충당하기도 벅찬 형편에 비싼 학원비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돼도 그는 좀처럼 도서관을 떠나지 않는다. 늦은 점심을 먹어야 저녁 식사비를 아낄 수 있다. 오후 3시, 아는 선배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고 난 뒤 정씨는 피아노 레슨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경기도 시흥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학교에서 시흥까지 왕복 4시간이 걸리지만 요즘처럼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때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죠. 더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시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정씨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새 학기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나서부터는 더 마음이 무겁다.

"이번 학기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고, 제 용돈도 벌어야 해요. 학자금 대출도 두 번째 받는 거라 이자가 배로 늘 텐데, 매달 이자를 갚는 일이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에요."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정씨는 학교 근처 피아노 학원에 들러 교사 면접을 보았다.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 이자가 수직 상승한 만큼 두 배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몸도 마음도 지치는 하루하루가 연일 이어진다.

"가끔은 정말 이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저처럼 학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학생이 일 년에 천만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감당하는 건 너무 버겁죠. 게다가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며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고 쳐요. 제 전공이 음악인 만큼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서 계속 공부를 해야 전망이 있는데… 끝이 안 보여요. 돈 많은 부모님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이상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충당해야 하는 저 같은 대학생들에겐 하루하루가 투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늦은 밤 집으로 향하는 정씨의 발걸음이 무겁다.

등록금 부담이 커질수록 장학금을 타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진다. 그러나 1인당 장학금 액수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장학금을 타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서울 M대에 재학 중인 홍주희(가명·21)씨는 학과 조교의 추천으로 졸업할 때까지 외부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지만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내심 걱정도 만만찮다. 이 장학금의 경우 매 학기 성적이 백분율 85점 이상, 과에서 5% 이내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학기도 꼭 장학금을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불안하다.

특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등록금이 인상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먹고 자는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자취생들은 10% 등록금 인상률이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이들이 한 학기당 필요한 금액은 등록금을 포함해 최소 6백만~7백만원.

M대학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김지나(22·가명)씨는 학교 측의 이번 학기 등록금 인상 결정 소식을 접하고 이사를 결심했다. 자취방 월세를 줄여 오른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한 방에 4명이 함께 모여 사는 곳으로 이사하기로 했어요. 환경은 열악하지만 어쩔 수 없죠. 한 달에 10만원쯤은 아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라도 절약해야지 별 수 있겠어요."

3월 초 개강을 앞둔 대학가의 풍경은 밝지만은 않다. 오늘도 여전히 많은 대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열심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1년 등록금 1천만원 시대. 학비 걱정하느라 막상 본연의 업무인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 고민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대한민국 대학교육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정부 무이자 대출 등 대책 마련 나서

끝없이 오르고 있는 대학 등록금에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대책을 논의 중이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1년 수업료는 가히 놀랄 만한 수준이다.

의과대학의 경우 포천중문의대, 가천의과대가 이미 1천만원을 넘어섰고, 이화여대와 성균관 대학교가 각각 990만원과 977만3천원으로 그 뒤를 잇는다(2006년 현재). 예체능계열도 이화여대 899만5천원, 연세대 890만원으로 1천만원에 가까운 금액이고, 공학계열 역시 고려대 851만8천원, 이화여대 848만8천원으로 높은 수준이다.

인문·사회계열은 백석대학교 664만원, 을지의과대가 653만5천원으로 자연계와 비교해서는 싼 편이지만, 금액 자체로 볼 때 결코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올해 등록금 인상률은 사립대의 경우 5%에서 많게는 10% 이상이나 된다. 국·공립대 중에서는 전북대가 29.4%, 부경대 28%가 올라 최고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국회는 지난 2월 16일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김신일 교육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학 등록금 경감을 위한 ‘교육현안 연석 당정협의’를 가졌다. 이날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기초생활 수급권자와 차상위 계층에게 무이자로 등록금을 대출해주는 등록금 부담 경감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는 가을학기부터는 저소득층 대학생 17만명이 무이자 등록금 대출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구체적인 대상자는 기초생활 수급자(3인 가족 기준 연 1127만원 소득 이하)와 차상위 계층(3인 가족 기준 연 1353만원 소득 이하) 자녀들이다.

또 연 7%였던 학자금 대출 금리를 2%포인트 더 내리는 방안을 마련,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당정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장학금 혜택을 늘리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신용 불량자가 된 학생들을 구제해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등록금 인상안을 미리 알리는 등록금예고제를 대학에 권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전국교수노동조합은 2월 13일 등록금후불제가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며, 무이자 대출은 자칫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등록금 논쟁은 앞으로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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