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문 초록교육연대 대표는 학부모와 교사, 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교육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밝혔다인권실천시민연대
간담회에서 기조발언을 한 초록교육연대 안승문(전 서울시 교육위원) 대표는 “생활 속 민주주의를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체험하게 하는 가장 좋은 장치가 학운위”라며 “학운위가 바로 서면 교육계에도 희망이 있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교사, 학생, 학부모가 무엇이든 함께 논의하고 머리를 맞대 고민하는 것”이라며 “위에서의 행정지침이나 정책에 의한 반강제적인 시행은 오히려 교육을 죽인다”고 지적했다. 구성원에 의한 민주적인 논의가 가능할 때 학교가 살아난다는 얘기다.
안 대표는 자신이 교사로 있던 학교의 사례를 소개했다. 학교에서 학생회 담당으로 있던 1999년 학생회의 공약이 두발자유화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일단 해보게 하자는 생각으로 첫 대의원대회에서 공약이행에 대한 토론을 거치게 했고, 머리 길이, 모양, 액세서리 등과 관련한 설문지를 만들어 아이들과 학부모가 합의를 거쳐 작성해 오도록 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로 두발자유화를 하자는 쪽이 과반을 넘지 못했다. 이런 결과를 학운위에 올렸는데, 당연히 학부모위원들은 두발자유화를 강경 반대했고 교사위원도 반대 했다. 다행스럽게 사전에 잘 설득해 놓은 교장은 찬성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안 대표는 아이들에게 6개월 정도 기회를 주고 결정하자는 ‘유보적합의’를 중재안으로 제안했다. 현재의 두발규정은 일제의 잔재이기도 하고,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는 관행일 뿐이어서 아이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합의된 규정’으로 시행해 보자는 것이었단다.
새로 규정을 정해 시행했는데 놀랍도록 잘 지켜졌다고 한다. 연말에 교사와 학생들의 평가 설문에서도 78%정도가 잘 지켜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학운위에서는 두발자유화를 확정하게 되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당시 학운위를 통해 남긴 1700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책상을 교체하기로 했다. 문제는 교사들이 원하는 책상과 학생들이 원하는 책상이 달랐고, 어느 학년에 줄지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는 점이다. 결국 이 문제도 교사들을 잘 설득해 선택권을 아이들에게 주어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이런 경험은 자체로 아이들에게 아주 소중한 민주주의의 경험이었고, 자부심도 대단했다. 연관성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왕따 문제가 줄어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학운위의 교육적 관점을 ‘실패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실패를 하더라도 학부모, 교사, 학생이 서로 논의를 거쳐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해보는 것이 교육적 효과는 훨씬 크다는 것이다.
또 학운위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200-300명이 참여하는 학부모총회에서 이루어지는 학부모위원의 선출을 모든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학생회 대표들의 학운위 참여를 보장하고, 현재로서는 교장의 입장만을 지지하는 역할로 전락한 지역위원에게는 의결권을 주지 않는 과도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운위가 학교를 바꾼다
간담회에서는 다른 경험자들의 발표도 있었다. 강북구 미아동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3,4대 학운위원장을 지냈던 두리출판사 최용철 사장은 “학운위가 학교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로 학운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사장은 학운위가 할 수 있는 일로 우선 두발 등 학생들의 일상을 바꿀 수 있고, 예산 등 학교의 기존 예산 집행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런데 학운위를 바꾸기 위해서는 ‘전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최 사장이 말하는 전술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학운위 개혁을 노골적으로 내세우지 말고, 교장과 학운위에 참여하고 있는 학부모들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사장은 이를 위해 교장과도 자주 만나 ‘회동’을 갖고, 학교 측으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아 학부모위원들과 함께 합동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학운위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회의를 지역주민과 지역 언론에 공개하고, 매번 회의를 영상으로 남기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학부모들과 대화가 되면서, 급식업체 선정을 합리적으로 바꾸고, 학교운동장을 개방하고, 예․결산 심사와 집행의 흐름도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
은평구 역촌동의 한 초등학교에 학부모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가수 이지상씨는 어려움부터 토로했다. 이씨는 “교장선생님을 잘 도와서 학교를 발전할 수 있게…”라는 어느 학부모 위원의 당선 소감을 소개하면서 교장에 의해 구성되고, 교장을 지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있는 학운위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게 있다”는 말로 밝은 전망을 내놨다. 아이들에게 강제로 신문을 보게 해 만들었던 학교발전기금을 “생각지 않았던 인물이 학운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만으로 교장이 부담을 느꼈는지 첫 회의에서 없애겠다고 했다”는 것.
또 초기에는 학교 측이 내놨던 안에 대한 지지가 절대적이었으나 이제는 반대가 더 많다며, “처음에는 표결로 하자던 학운위원장이 이제는 끝까지 논의하자고 한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씨는 “처음에 학교 측 의견을 지지하던 학부모가 나중에 자신이 그렇게 했던 것이 가슴 아프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며 “서두를 것이 아니라 학부모를 설득해 입지를 넓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초등학교에 학부모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지난 1년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학부모위원들과 친해지는 시간이었다”며 “올해부터 ‘나라의 방패가 되자’라는 가사가 있는 교가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보려 한다”고 말해 역시나 학운위 구성원들과의 친밀감 형성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편 간담회 참가자들은 모두 학운위원들끼리의 네트워크나 정보공유 통로가 부족한 점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이런 모임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보자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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