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일, 아무리 법 없이 살 사람이라 할지라도 왜 미운 사람이 없을까?
내게 정말로 커다란 해를 끼치지 않았을지라도 세상에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 받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 미운 사람이 단지 나의 가족,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행복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가쿠타 미쓰요의 <죽이러 갑니다>에 나오는 7명 주인공들의 마음 속에는 각기 미운 사람이 하나씩 있다. 결혼과 더불어 결혼 전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버린 남편을 미워하는 구리코, 정확히 누구에 대한 미움인지 모를 그것을 더러운 몸 냄새를 풍기며 만날 도서관 자리를 죽치고 있는 노숙자에게 보내는 미도리.
절교를 선언하자 치사한 따돌림으로 복수하는 남자친구를 미워하는 사오리, 불륜이 들통 나 아내로부터 심한 모욕감을 겪자 자신의 아내를 미워하는 시게하루. 자신처럼 예쁜 딸을 기대했으나 차마 남에게 말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의 비행과 일탈을 일삼는 거구의 딸을 미워하는 가요코. 자신을 차버리고 아이까지 지워버린 옛 애인을 미워하는 노리유키 등.
@BRI@이 모두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 그 중 아내를 미워하는 시게하루의 심정은 이렇다.
"십 엔짜리 동전으로든 저주로든 사람을 죽이는 일은 가능하다고 시게하루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죽이는 것은 그 작은 물건이 아니니까. 그것을 손에 든 사람의 마음이니까."
미움과 증오는 오뉴월에도 서릿발을 내리게 하지 않던가? 그러니 10엔짜리 동전으로 사람을 못 죽일까?
이 일곱 명의 주인공들이 미워하는 대상은 모두 저 먼 곳의 타인들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딸, 남편, 어머니 등. 기대가 배반되는 곳, 그곳에서 미움은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기에 일곱 명 주인공의 미움의 대상은 모두 너무도 가까워야 할 대상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한 때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던 사람도 세월이 흘러가면, 왜 그렇게 미워했었나 싶다. 나 역시 그 사람의 인형이라도 만들어 틈날 때마다 바늘로 콕콕 쑤시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인형을 구하지 못해 못 다 이룬 꿈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 인간 그렇게 살다가 죽게 놔두라고 해'라는 체념조로 위안을 삼게 되었다.
최고의 복수란 그 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이 단편모음집에 나오는 미움과 증오로 똘똘 뭉친 일곱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최고의 복수란 미움이나 증오, 살인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공감했던 단편은 <아름다운 딸>. '엄마 닮아 공부도 잘 하겠어, 엄마 닮아 예쁘겠어.' 우리는 모두 가족, 그리고 딸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남들이 무심코 건네는 한 마디가 그 판타지에 부합되지 않으면 몹시도 불행한 인간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도처에 너무도 흔한 이야기라서, 그리고 내 이야기가 될 것만 같아서 조금 뜨끔했던 작품이다.
자 그럼, 이 일곱 명들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 미움과 증오의 대상을 죽이러 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 미움 때문에, 그 증오 때문에 죽이러 갔다손 치자. 그리고 죽였다 치자. 마음이 시원할까? 미움을 어찌해야 할까는 독자가 직접 결정하시기를.
덧붙이는 글 | 추신 : 제목을 보니, 이 장르가 픽션이라 참 다행이다 싶다. 논픽션이었으면 정말로 섬뜩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
가쿠타 마쓰요는 1967년 출생으로 1990년 <행복한 유희>로 가이엔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한 이후, 노마문예신인상, 산케이아동출판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5년 <대안의 그녀>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사랑이 물까>, <인생 베스트 텐>, <내일은 멀리 갈 거야>, <프레젠트> 등이 있다.
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Media2.0(미디어 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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