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다

[현민이의 유럽에서 삐대기 - 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 ①편]

등록 2007.03.02 14:01수정 2007.03.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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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프라이부르크다.

2003~2004 부안 방폐장반대투쟁. 분노로 가득 했던 부안 항쟁의 와중에 우연히 읽었던 한 권의 책이 있었다.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다'. 부산 국제신문의 김해창 기자가 쓴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독일을 다녀올 수 있었던 몇 번의 기회를 놓치면서도, 결국 이번 여행을 준비하게끔 했던 도시이다. 그래서일까 한 번의 방문으로는 아쉬워 결국 다시금 찾게 되었다.

처음 방문 때인 12월에 이어 1월에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겨울의 한복판임에도 펑펑 내리는 흰 눈을 한 번도 맞을 수가 없었다.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필자와 같은 처지의 떠돌이에게는 따뜻한 날씨가 도움이 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준비해간 두터운 겨울옷은 트렁크에서 나올 새가 없을 정도였으니…. 현지의 사람들도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무척이나 당혹스럽다고 할 정도였다. 유럽의 날씨는 한국의 장마처럼 집중호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태풍이 잦은 곳도 아니란다. 안정적인 기후를 갖고 있다 보니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 유럽이 아닌가 싶었다.

두 번째 방문 길도 전날 유럽북부에 몰아친 강풍으로 난리가 난 탓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열차가 연착하면서 뒤죽박죽이 되어 정신이 없었다.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을 거쳐 내려오는데 예정보다 3배의 시간이 걸렸다는 한 부인은 아직 유치원에나 다닐 만한 어린 아들 둘을 챙기느라 넋이 빠질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이들이 어지간해서 쓰지 않는 'I hate DB(독일 철도회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하소연했겠는가? 그래도 차창 너머로 줄지어 있는 풍력발전기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지붕 위의 태양전지판을 반갑게 마주치면서 프라이부르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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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흔히 만나는 풍력발전기. 재생가능에너지의 상징이다. ⓒ 이현민

프라이부르크는 산과 와인, 대학의 도시

빽빽한 상록수로 하늘을 가려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 숲, 흑림)라 불리는 독일 최대의 삼림지대가 있다. 칼스루에(Karlsruhe)에서 스위스 접경인 바젤(Basel)까지 길이 160km, 폭 50km 정도의 울창한 숲인 슈바르츠발트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기도 하고, 뻐꾸기시계로 유명한 곳이다.

또 유명한 온천 휴양지인 바덴바덴(Badenbaden)과 자연호수인 티티제(Titisee)와 같은 관광지를 가지고 있다. 바덴바덴은 88서울올림픽을 결정한 IOC총회가 열렸던 곳으로 우리나라에 친숙한 지명이다.

이러한 울창한 산림을 가르켜 독일에서 유학중인 한 후배는 '산이 아니라 나무 밭'이라고 하였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획적인 인공조림과 관리를 통하여 목재를 생산하는 등 지역주민들에겐 경제 활동의 무대이긴 하지만, 수종의 다양성이나 풍광에 있어서는 우리의 산과 같은 '아름다움' 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프라이부르크는 이러한 슈바르츠발트의 관문이면서, 700년 전에 세워진 뮌스터대성당 등이 있는 관광도시이다. 또한 인구 20만명 중에 프라이부르크대학을 포함하여 3만 명의 학생이 있는, 7명 당 1명이 학생인 대학도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을 대표하는 환경도시이다.

1970년대 인근 비일(Wyhl)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에 지역주민들은 검은 숲을 비롯한 자연을 망친다는 이유로 원전반대 운동을 일으켰고, 건설 예정지인 숲과 포도밭을 가진 농민들 역시 와인 양조와 지역 농산물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이유로 함께 하였다.

주민들은 원전반대운동에만 그치지 않고 '에너지 운동'으로 발전시켰다. 무분별한 자가용 승용차 이용, 난방용 전기사용 등을 줄여 나가는 에너지 절약운동과 함께 도시의 환경 전반에 대한 실천운동을 벌여 나갔다.

시 당국의 정책도 이에 조응하여 자전거 도로, 보행자 도로를 넓히고, 독일 최초의 버스-열차 간 환승 정책을 펴는 등 친환경적인 교통 정책을 펼쳐 나갔다. 게다가 철저한 쓰레기 분리수거 등 환경문제에 대한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갔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1980년대 산성비에 의한 피해이다. 대기오염에 의한 산성비로 검은 숲을 포함한 독일일대의 삼림의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독일 전체 삼림피해 면적은 1982년 7.7%에서 해마다 급속히 증가해서 84년 이후에는 50% 이상이 되었다. 마냥 풍부하리라 생각했던 숲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까지 더해지면서 환경보전의 중요성은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이에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도시 만들기에 더욱 박차를 가한 덕분에 1992년 독일의 '환경수도'로 선정되었다.

프라이부르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60m 높이의 솔라타워(Solar Tower)이다. 중앙역 옆에 두 개의 높은 건물 외벽을 태양전지판이 뒤덮은 채 푸르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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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타워(Solar Tower). 건물 외벽이 태양전지판이다.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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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타워(Solar Tower)의 태양발전 관련 안내판 ⓒ 이현민

5분 쯤 걸어가면 빅토리아호텔이 있다. 1급 호텔 임에도 지붕에 태양전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전기? 난방? 빅토리아 호텔에서는 모든 것을 태양에너지로부터 받고 있습니다'라는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다. 전기뿐 아니라 하수처리시설로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호텔이란다. 돈이 있으면 묵으련만, 하루 밤 자는데 170유로라니…. 후딱 나오고 말았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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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난방 등 모든 것을 태양에너지로 해결한다는 빅토리아 호텔의 걸개그림 ⓒ 이현민

근처에 직업학교가 있다. 건물 입구에 태양광 발전과 태양열 난방을 함께 설치하고, 둘레를 빙 돌아 태양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소수력 발전기도 설치가 되어 있었다. 건물 안에는 자동차 엔진 같은 기계들이 많이 있는 것이 기계와 관련된 직업학교 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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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학교 건물과 태양광, 태양열 시설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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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학교 태양에너지 안내문 - 잔디밭을 빙 돌아 10여개가 설치되어 있다.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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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학교의 소수력 발전 - 건물 앞으로 흐르는 하수시설에 낙차를 두어 설치하였다. 우리의 물레방아와 유사하다. ⓒ 이현민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아주 쉽게 태양전지판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많이 설치가 되어 있다. 건물 그림자 때문에 제대로 발전효율을 기대하기 힘든 지붕에도 올려놓았다. 독일에서 만난 박사 한 분은 한국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왔다가, 재생에너지로 바꿔 박사학위를 땄다.

지금은 Q-Cell이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셀(Cell), 모듈(Module, 태양전지) 제조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 분이 처음 프라이부르크에 도착해서 보니 지붕마다 올려져 있는 파란 태양전지판이 그렇게 이쁘고 신기하더란다.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다 보니 전공까지 바꾸게 되었다고. 실로 태양에너지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숙소였던 유스호스텔은 도심에서 제법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풍력발전기 3대가 돌아가는 산기슭에 위치하고 앞으로는 드라이잠(Dreisam)이라는 하천이 흐르는 곳에 있어 유럽에서 묶었던 호스텔 중에 가장 좋았던 곳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데노바 경기장(Badenova Stadion)라는 'SC Freiburg' 축구팀의 전용 경기장이 있다.

이 경기장에는 1995년 서쪽 스탠드 지붕을 시작으로 대형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이 시설은 프라이부르크 축구팀의 분데스리가 1부 승격에 맞춰 설치되었는데, 시민들에게 구좌 별 출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하여 100kW 규모의 당시로는 유럽 최대 규모의 햇빛발전소를 지었다.

지금은 다른 쪽 스탠드 지붕에도 남쪽 방향으로 지지대를 설치하고 태양전지판을 세워 놓았다. 출자에 참여한 시민들에게는 이익을 배당할 뿐만 아니라 축구경기장의 지정좌석권을 배당으로 제공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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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데노바 경기장(Badenova Stadion)의 북측 스탠드.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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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데노바 경기장(Badenova Stadion) 태양광발전 안내판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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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훈련 모습 - 낮에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로 조명을 밝히고 있다. ⓒ 이현민

'에게…'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 한 마디 드리자면, 영국이나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프로축구 1부 리그 경기를 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 같은 여행객에게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원체 운동을 좋아하는 필자라 영국에서는 엄두도 못 내고, 독일에서 2부 리그 경기라도 한 번 보려고 알아봤더니 회원이 아닌 경우에는 당일 경기장에 가서 반환된 표를 운 좋게 구하면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인기가 있는 클럽은 그나마 암표들도 표자체가 가짜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니….

바로 옆에 있는 슈트란트바트(Strandbad)라는 휴양지 역시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올려져 있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많은 시설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태양 에어컨(Solar air conditioning)이다. 프라이부르크 상공회의소(IHK)를 찾아가니 이곳을 포함하여 4군데 건물에 태양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겨울이라 작동하고 있지는 않았고, 담당자가 없어서 자세한 설명 대신에 자료만 몽땅 얻어 가지고 왔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이 겨울에 난방을 위하여 전기사용이 높은 반면, 우리나라는 여름 냉방을 위하여 전기사용이 급상승한다. 순간 전력 사용 최고일과 사용량을 보면 2004년에는 7.29일에 5126만kW/h, 05년 8.17일 5463만kW/h, 작년에는 8.9일 5706만kW/h이고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여름철 전기 사용의 주범 에어컨을 태양에너지로 작동한다는데, 우리 정부와 기업은 뭐하고 있는지. 아직 돈이 안 되니까 관심 밖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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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어컨이 설치되어있는 상공회의소(IHK) 건물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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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회의소(IHK) 건물 태양 에어컨 설명판 ⓒ 이현민

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의 태양이 낮에만 일을 하는 건 아니다. 태양이 보내준 에너지로 축구경기장의 조명이 빛나고, 가로등이 도시를 밝혀준다. 밤까지 이어지는 태양에너지의 불빛 아래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휴양지를 비추며,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는 에어컨을 가동한다.

아무리 같은 전기일지라도, 방사능을 뿜어내면서 태어난 원자력 전기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와 함께 튀어나온 화력발전소 전기가 태양이 만들어 내는 전기와 같겠는가 말이다.

한 사회의 내적인 발전의 원동력을 주민들이 스스로 깨닫게 되자, 자각에 따른 실천이 일어났다. 이러한 부모들의 실천을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 역시 자연의 소중함을 온전히 물려받았다. 정치와 행정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중장기적인 계획을 만들어 뒷받침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였던 것이다.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지나가면 길이 생긴다'는 루쉰의 말처럼.

덧붙이는 글 | * 다음 기사에는 프라이부르크의 교통정책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 생태지평연구소(ecoin.or.kr) 운영위원이자, 부안 시민발전소 소장인 이현민은 농사일이 끝난 지난 11월부터 영국 런던 - 독일 베를린 - 체코 프라하 - 독일 프라이부르크 - 라이프찌히 등 유럽 각지를 돌며, 교통 - 에너지 - 놀이 - 공원 - 여가 등 우리의 모든 일상을 통해 유럽은 어떤 생태적 변화를 추구하며, 큰 흐름을 맞이하고 있는지 농부의 시선으로 찾아가보는 여행을 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에는 프라이부르크의 교통정책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 생태지평연구소(ecoin.or.kr) 운영위원이자, 부안 시민발전소 소장인 이현민은 농사일이 끝난 지난 11월부터 영국 런던 - 독일 베를린 - 체코 프라하 - 독일 프라이부르크 - 라이프찌히 등 유럽 각지를 돌며, 교통 - 에너지 - 놀이 - 공원 - 여가 등 우리의 모든 일상을 통해 유럽은 어떤 생태적 변화를 추구하며, 큰 흐름을 맞이하고 있는지 농부의 시선으로 찾아가보는 여행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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