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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가 퇴원하고('평원이가 동생을 보내던 날 밤' 참조) 며칠 쉬어서 몸이 좀 나아졌는지, 오늘 강좌 나간다고 새벽에 애비가 평원이를 데리고 왔다.
막 아침상을 받던 차여서 당연 평원이 밥그릇도 올라왔다. 평원이는 밥에 흥미가 없는지 이 방 저방 돌아다니며 딴전만 피우다가 즈이 애비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또 떼놓고 갈까봐 낌새를 눈치채고 있는 것이다. 예상에 없던 할애비 집 행차(?)에 은근히 불안해서일 거라고 짐작해본다.
"평원이 밥 먹어야지"
할멈이 평원이를 부르자, 저 쪽 방에서 "싫어!" 하는 대답만 울려보낸다. 싫어? 내가 봐온 바로는 녀석이 제 에미 애비에겐 경어를 쓴다. 에미 애비가 평소에 아이한테 존댓말을 쓰도록 가르친 결과일 것이다.
할애비 집에 올 때도 물론 경어를 쓰도록 에미 애비가 지적하지만 따로 살다보니 그게 평원이의 몸에 익을 만큼의 생활로는 배어 있지 못했다. 더구나 할멈과 이 할애비는 손자 귀여운 마음에 녀석이 경어를 쓰지 않는 것을 크게 탓하지 않아 왔다.
그래서인지 할애비와 할미에겐 적잖이 반말로 내쏘는 것이다. 이러구러 애비가 슬며시 나가버렸다.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가 애비를 찾기 시작한다.
"아빠 어디 계시지… 으응?"
그래도 보이질 않자 엉엉 울기 시작한다. 할멈은 가게에 나갈 시간이 됐으므로 누룽지를 긁어다 탁자 위에 놓고는 옷 챙겨입고 현관문 앞으로 나선다.
"평원아, 할머니에게 뽀뽀해야지!"
"뽀뽀 싫어!"
잔뜩 골이 나 있는 아이에게 뽀뽀하자니 성공할 리가 없었다. 할멈은 헛주먹을 쥐어 녀석의 머리 위로 한 번 날리는 시늉을 하곤 나갔다. 녀석이 울고 있으니 나마저 밥 생각이 달아나버렸다. 뭘 좀 끄적거려 볼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시나브로 평원이의 울음소리도 잦아드는 듯싶더니 마침내 스스로 조용해졌다.
본디 평원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울음 끝이 길진 않다. 좀 울다가도 바로 그치는 편이다. 그 때문에 할멈은 '아이가 점잖고 인정도 있고, 심성이 착하다'며 남의 자식들에게도 다 있을 장점을 특히 부각시켜 자랑하곤 한다.
녀석이 뭐하고 있기에 조용한가 하고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건넌방엔 가보니 어느새 누룽지 그릇을 가져다가 끌어 안고 먹는다. 허허허… 웃음이 안나올 리 없었다. 아침 밥을 안 먹었으니 좀 시장했었을까?
"평원이 누룽지 먹네… 맛있어?"
마른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평원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저를 떼놓고 나간 애비에 대한 그리움이나 섭섭한 감정은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도 먹어봐요" 한다. 이래서 할멈이 아이가 인정이 있다고 한 것일 게다.
"먹어봐요?"
나는 되물었다. 할멈이 말하던 인정스러움을 확인하기보다는 이 순간 내 머리 속에는 녀석의 반말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이맘때부터 말버릇을 고쳐주지 않으면 힘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평원이 에미 애비가 그렇게 하고 있듯이 나 또한 애들 남매를 그렇게 가르쳐 온 것으로 기억한다.
평원이가 누룽지를 조금 뜯어서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먹어봐요, 하는 게 아니고 잡숴보세요 그렇게 하는 거야" 등을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그렇게 말했다. 평원이는 대번에 "잡숴보세요" 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착하고 귀여운 일인가. 나도 모르게 평원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는 녀석이 뜯어준 누룽지를 도로 건네주며 "어서 너나 먹어" 했다. 이때 "뭐야 할아버지이, 너나 먹어가 모야? 잡숴보세요 해야지요" 한다.
하하하하하, 할아버지는 바보라는 듯이, 그러면서 어른처럼 껄껄 웃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리고 함께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원이의 그 말은 그 맘적 아이가 지닌 한계성 언어지만 그 한계가 바로 인간의 무한한 발전적 의문이며 지평임을 깨닫게 하는것이었다.
에미야 애비야, 이 순간을 깃점으로 며칠 전 너희의 슬픔(관련기사 참조)을 모두 떨쳐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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