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쌀 지원 재개 순순히 물러선 이유는?

남북장관급회담 합의, 비핵화 초기조치 이행에 순풍

등록 2007.03.02 18:11수정 2007.03.0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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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 삼일째인 1일 오후 이재정 남측수석대표와 권호웅 북측 수석대표가 모란봉극장에서 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 삼일째인 1일 오후 이재정 남측수석대표와 권호웅 북측 수석대표가 모란봉극장에서 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베이징 6자회담에서의 '2ㆍ13 합의'로 물꼬가 트인 한반도의 해빙기류가 자연스레 남북관계로 흘러 들었다.

남북이 2월27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열린 제20차 장관급회담에서 6개항의 공동보도문에 대체로 원만한 합의에 이른 것은 우선 '2ㆍ13 합의' 이행이 순풍을 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BRI@정부는 당초 이번 장관급회담의 목표로 '남북관계의 복원ㆍ정상화'와 함께 '6자회담 합의이행의 측면지원'을 내걸었다. 6자회담과 남북대화가 선순환적 연계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해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북한의 당면한 최대 관심사인 쌀ㆍ비료 지원 재개 문제에 있어서 '단계적 접근' 원칙을 세운 것은 이런 맥락이다.

공동보도문을 보면 최대 쟁점이었던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개최시기가 남측 주장대로 4월 하반기(18~21일)로 결정되는 등 북측이 크게 고집을 세우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당초 2일 오전 예정됐던 종결회의가 오후로 미뤄지는 등 막판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동안의 남북회담 관례에 비춰보면 이 정도 진통은 오히려 없었다면 섭섭했을 정도다.

북측이 당초 경추위를 3월 안에 열자고 요구했던 것은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된 남측으로부터의 쌀과 비료 지원을 조속히 재개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남측은 '2.13 합의'에 규정된 초기단계 이행조치가 끝나는 4월14일 이후 개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지켜보면서 단계적으로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의도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이 경추위 조기 개최 입장에서 순순히 물러선 것은 일단 약속이행의 의지를 거듭 확인한 것으로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공동보도문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남측이 우선 봄철 파종기에 맞춰 필요한 비료를 지원하겠다는 이면합의를 해준 것도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조선적십자회중앙회가 대한적십자사에 지원의 시기와 양을 요청해 올 경우 이에 응하는 방식으로 15만t 정도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동보도문 제2항에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보장을 위해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서 이룩된 합의들이 원만히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담긴 것도 비록 '상징적' 문구이긴 하지만 '2ㆍ13 합의' 이행의 정치적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7개월여 만에 나흘간 평양에서 열리는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남측 수석대표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 방북단이 27일 오후 평양으로 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7개월여 만에 나흘간 평양에서 열리는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남측 수석대표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 방북단이 27일 오후 평양으로 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남북관계, 미사일 발사 이전 수준으로 복원

남북관계는 이번 회담을 통해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조성된 위기상황 이전 수준을 복원하는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산가족 사업과 관련 화상상봉을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실시키로 합의하고, 대면상봉 행사도 5월 초 금강산에서 갖기로 했다.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 추진과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다룰 남북적십자회담의 개최 일정에도 합의했다.

또 6.15와 8.15를 계기로 평양과 남측 지역에서 진행될 민족통일대축전에 쌍방이 적극 참가한다는 합의를 공동보도문에 담았다.

6.15와 8.15 행사에 대해서 북측은 권호웅 단장이 기조발언에서 "준비단계에서부터 북남 당국이 적극 지원하고 축전 행사에 주동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

비핵화 초기단계 조치와 이번 장관급회담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된다면 6.15와 8.15 행사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당국자들의 거듭되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대선 전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산가족 대면상봉 행사날짜를 정확히 잡지 않고 5월 초로 해놓은 것 등 남북관계의 불안요소들은 남아있다. 4월에 열리는 경추위에서 북한이 원하는 쌀 지원 등 경제협력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이산가족 상봉이 미뤄지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북측 기조발언 등을 통해 외세간섭 배제 등을 거듭 강조한 점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권호웅 북측 단장은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은 외세가 끼어들어 노골적으로 간섭에 나서고 남측 당국이 동조함으로써 온 겨레가 관심하는 현안문제들을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물론 이는 북측이 상투적으로 되풀이하는 입장표명이긴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특히 이런 언급의 빈도가 잦았다는 것이 회담 관계자의 평가다.

열차 시험운행 합의는 했지만…

남북을 잇는 경의선ㆍ동해선의 열차 시험운행에 대해서는 '상반기 중 실시'라는 합의가 이뤄지긴 했으나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는데 따라'라는 전제가 붙어있어 실제 실시될지 여부는 속단하기 이르다.

'군사적 보장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에 대해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열차 시험운행은 지난해 구체적 날짜까지 정해졌으나 북측의 일방적 연기 통보로 무산된 바 있다. 남측이 기조발언에서 제기한 열차 연내 개통은 아예 공동보도문에서 빠졌다.

이밖에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4월10~12일 금강산에서 열릴 제8차 적십자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도 향후 논의 향방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공동보도문에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직접 언급하지 않고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라는 표현을 썼다.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그 동안 꺼려온 북측이 최근의 해빙무드를 타고 적십자회담에서는 어떤 입장을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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