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누가 당신들의 '시민'인가?

'광주문화중심도시' 관련 지역신문의 보도 태도에 대한 생각

등록 2007.03.03 15:14수정 2007.03.0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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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왼쪽)와 <전남일보>(오른쪽)는 지난 3일 각각 1면 기사와 사설을 통해 아시아문화의전당 설계에 대해 시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광주일보>(왼쪽)와 <전남일보>(오른쪽)는 지난 3일 각각 1면 기사와 사설을 통해 아시아문화의전당 설계에 대해 시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광주일보> <전남일보>PDF
지역 언론이 아시아문화전당 설계 당선작을 문제 삼고 있다. 전당 당선작에 대한 좋거나 싫은 감정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공론의 광장이라 할 수 있는 언론이 허점투성이 논리로 당선작을 문제 삼고 있는 모습은 민망하다 못해 추하게까지 보인다.

<전남일보>는 '문화중심도시 '새 틀' 완벽하게 짜야'라는 제목의 3월3일자 사설에서 "국제 공모를 통해 당선된 문화전당 설계작 '빛과 숲'은 개방형 지하광장 형태로 건축과 조경의 경계를 허물어 자연친화적으로 설계돼 일부의 찬사를 받았으나 대다수 시민들로부터는 랜드마크 기능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형식적 완결성도 갖추지 못한 매우 허튼 논리다. 도대체 "일부의 찬사를 받았으나 대다수 시민들로부터는 랜드마크 기능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논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일부'와 '대다수'는 양적 개념인데 140만 광주시민들에게 일일이 물어 보기라도 했는지 궁금하다.

또 하나 문제는, <전남일보> 사설이 언급한 '일부의 찬사'와 '대다수 시민들의 비판'이라는 용법이다. 찬사는 '일부'가 했고, 비판은 '대다수 시민들'이 했다는 말인데, 비판했다는 대다수 뒤에만 '시민'이라는 단어를 붙여 놓았다.

현재의 당선작을 문제 삼는 지역언론(을 비롯한 '일부' 세력들)의 논리에는 늘 '시민' 혹은 '지역여론'이 등장한다. <전남일보> 사설에서도 거듭 언급된다.

"지역여론을 무시한 문광부의 독선"
"조성계획을 새롭게 수립하기로 한 것은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조치"
"광주시민들의 여론을 우선적으로 반영해야"
"시민여론을 무시하고 문광부가 독선적으로 추진해 온 것이 오늘의 사태를…"


이 문장은 아래와 같이 바꿔야 옳다.


"전당당선작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여론을 무시한 문광부의 독선"
"전당당선작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조치"
"전당당선작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여론을 우선적으로 반영해야"
"전당당선작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문광부가 독선적으로…"


@BRI@ 전당당선작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둘 다 여론이고, 둘 다 시민의 의견이다. 전당당선작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지역여론', '시민여론'으로 곧바로 일치시켜버리는 <전남일보>의 용감한 태도가 황당할 따름이다.


오해말기 바란다. 전당당선작을 옹호하고자 이런 기사를 쓰는 게 아니다. 어떤 사안이든지간에 입장과 처지에 따로 호불호가 있기 마련인데, 그 호불호에 함부로 '시민'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간청이다. 그 호불호의 논리를 전개하는 데서 형식적 정합성이라도 갖춰달라는 부탁이다.

<전남일보> 사설 내용들은 이념의 다름을 사실의 다름으로 바꿔치기 한, 전형적으로 '야바위'스러운 문장이다. 문제는 이같은 문장들이 <전남일보>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신문에도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전남일보> 사설이 나온 날과 같은 날 <광주일보> 1면 톱기사는 '亞전당 지하설계 문광부 지침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문광부 직원 아이디어를 당선작에 반영시켰다는 류재한 교수의 '의혹 제기'를 싣고 있다.

기사는 "지난 2004년 문광부의 C모씨와 M모씨가 농담처럼 주고받은 전당의 지하설계 이야기가 결국 설계 당선작에 반영됐다"는 류 교수의 주장을 옮겼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특정인의 주장을 이처럼 1면에 크게 보도하는 태도는, 그것이 곧 그 신문사의 '입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타인의 발언을 인용해 자사의 입장을 드러내는 고전적인 방식을 통해 <광주일보>는 무엇을 얻으려고 한 것일까.

혹시 누군가가 "광주일보의 C모 기자와 M모 기자가 나눈 '모기업인 대주건설에 조금이나마 물량을 대주기 위해 광주일보 기자들이 과잉충성을 하고 있다'는 농담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광주일보>의 보도태도에 의혹을 제기한다면, <광주일보>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남일보>의 사설이 대학 입시의 논술답안이었다면 결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광주일보>의 기사가 상식을 가진 신문사 수습기자의 취재기사라면, 곧바로 취재보충 및 기사 재작성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이라 할 수 있는 <전남일보> <광주일보>의 '말장난'을 보고 있노라면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참혹할 따름이다.

기사 첫머리에 인용한 <전남일보> 사설을 다음과 같이 바꾸면 어떨까.

"…자연친화적으로 설계돼 대다수 시민들의 찬사를 받았으나 일부로부터는 랜드마크 기능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틀렸는가? <전남일보> 사설이 맞다면, 이 말도 맞다. 그저 자신들의 입장일 뿐인 내용들을 '여론', '시민의 요구'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당신들의 시민'인가. 나는 그 시민에서 빠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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