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이라고 보기엔 좀 쩨쩨한 거 아냐?

'나 때문에 DVD 연체료 4달러를 냈다'는 항의 메일을 받고

등록 2007.03.04 13:53수정 2007.07.0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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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한테 좀 당황스러운 이메일을 받았다.

"나영, 네가 이 일로 나를 쩨쩨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집에 가져간 DVD 때문에 연체료 4달러를 내가 물어야 했다. 그러니 기회가 되면 '비스트로'에서 내게 서브(이태리식 샌드위치)를 사주면 좋겠다."

카이는 이곳 제임스메디슨 대학교의 부속기관인 CDA(Career Development Academy)의 ESL 책임강사다. 그런데 그가 지난주에 수술을 받게 돼 내가 3일 동안 카이를 대신해 수업을 맡게 됐다.

학생들은 주로 쿠바, 온두라스, 도미니카, 멕시코 등 중남미에서 왔는데 이들은 취직을 위해서 혹은 대학 진학을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초보 학습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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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중남미 학생들. ⓒ 한나영

젊은 선생인 카이는 3일 동안 내가 가르쳐야 할 내용을 <학습 계획서>에 꼼꼼히 적어 놓았다. 그 계획서대로 가르치게 되는데 마침 금요일 오후엔 DVD 영화를 보게 됐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영화(< Civil Action >)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해서 그냥 DVD를 집으로 가져왔다. 월요일에 갖다 놓을 생각으로.

그런데 그만 그게 문제가 된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DVD가 학교 것인 줄 알았다. 그랬던 터라 '연체료' 운운하는 카이의 돌발적인 이메일을 받고 보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카이는 자기를 쩨쩨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 메일을 보는 순간 '쩨쩨한' 카이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 내 생각 - "깨끗하게 연체료 4달러를 돈으로 돌려준다. 팁(?) 1달러를 보태 5달러 지폐 한 장으로 끝낸다."

이렇게 정색을 하고 메일을 보낸 만큼 그대로 갚아주는 게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물론 생각지 않았던 연체료를 물게 된 카이의 입장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큰돈도 아니고, 자기를 대신해서 강의를 해 준 사람에게 (물론 강사료를 받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솔직히 서운했다. 그래서 무조건 그대로 갚아주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 큰딸 생각 - "서브 사달라며? 그냥 사줘."

그런데 큰딸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어떻게 그냥 돈을 주느냐는 것이었다. 카이가 이메일에서 밝힌 대로 서브를 사주면 되지, 돈을 그대로 주면 오해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얘, 그건 오히려 한국식 생각 아니니? 돈을 그대로 주면 오해할 거라는 것은…. 그리고 서브를 사다줘? 아니면 같이 가서 먹어? 식은 서브를 사다 주는 것도, 같이 가서 서브를 먹는 것도 어색한 일이지.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할 말도 별로 없는 사람들끼리."

▶ 미국인 교수 생각 - "하하, 젊은 친구가 돈이 없는 모양인데 그냥 돈을 주는 게 나을 듯."

내 미국 생활의 자문관(?)인 한 미국인 교수에게 이 일에 대해 물었다.

"글쎄, 이게 문화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좀 황당하다. 나 같으면 이런 경우에 이렇게 공식적인 메일을 안 보낸다. 차라리 나중에 만나서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연체료를 언급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너희 미국인들은 이런 경우에 다 이렇게 대응을 하냐? 쩨쩨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쩨쩨한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이런 메일을 받았으니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 돈을 줘야 하느냐, 아니면 서브를 사다줘야 하느냐?"

"연체료가 얼마라고? 4달러? 글쎄, 미국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나 같으면 그런 메일 안 보낸다. 하지만 보내왔으니 그냥 돈을 줘라. 하하, 아마 그 젊은 친구가 돈이 없는 모양이다."

결국 어떻게 마무리를 했나. 먼저 카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미안하다, 너에게 심려를 끼쳐서.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DVD가 학교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다 못 본 DVD를 집에서 보고 갖다 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네가 연체료를 물게 됐다고 하니 정말 유감이다. 조만간 내가 갚겠다. 그리 알고 걱정하지 마라.

그나저나 너 참 대단하다. 그 DVD가 네가 빌린 것이었다고 해도 나는 수술 받은 환자가 그것을 찾으러 다시 학교에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훌륭한 선생님이다. 학생들에게 영화를 보이려고 애쓴 네 열정에 감탄을 한다(연체료 유감과는 별도로 이건 정말 진심이었다)."


며칠 뒤 다시 학교로 찾아가 카이를 만났다.

"내가 몰랐던 거 미안하다. 자, 여기 돈 5달러. 그리고 이거 받아라. 자몽."

준비해 간 5달러를(1달러는 팁인데) 자몽과 함께 건넸다. 그러자 카이는 '곧장'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미안하다. 네게 혼란을 줘서. 하지만 어쨌건 내가 연체료를 물었다(그 말 좀 그만 해라). 그래서…."

결국 깨끗하게 해결하고 돌아섰는데 나중에 카이에게 '돈과 과일'을 줘서 고마웠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얘. 돈 주면 뭐, 어색할 거라고? 안 받을 거라고? 천만의 말씀. 돈 안 줬으면 욕먹을 뻔 했잖아."

외국인으로 살면서 이것이 문화의 차이인지 아니면 개인의 성격차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내 땅, 내 조국을 떠나봐야 내 나라가 편하고 살기 좋은 곳임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DVD #중남미 #연체료 #문화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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