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관보> 1905년 3월 29일자(부록)에 게재된 법률 제1호 도량형법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법률 제1호'라는 표기가 들어 있으나 이것을 일컬어 '대한제국의 법률 제1호'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해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률 제1호라는 것은 해당연도(즉 1905년)의 법률제정순위가 가장 앞선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로 '도량형법'이 대한제국의 법률 제1호가 맞는 것일까?
<대한제국 관보> 1905년 3월 29일자(부록)에는 도량형법(度量衡法)에 관한 내용이 게재되어 있다. 여기에는 분명히 '법률 제1호'라는 표시가 들어 있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도량형법이 법률 제1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대한제국 시절의 최초 법률로 인식하는 것은 곤란하다. 도량형법에 법률 제1호라는 타이틀이 붙었다고 해서, 그것을 대한제국 최초의 법률로 생각하는 것은 그 당시의 법령체계를 잘못 인식한데서 빚어진 오해이다.
그 당시의 법률체계를 살펴보면, 법률의 순서를 부여하는 방법은 지금처럼 축차적으로 번호가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연도별로 제1호부터 번호를 새로 붙여나가는 형태를 취했다. 이러한 방식은 요즘 각 행정관청에서 관보고시를 할 때에 역대고시내역을 누적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연도로 따로 번호를 붙여나가는 것(예를 들어 문화재청 고시 제2007-1호)과 동일하다.
그러니까 도량형법이 법률 제1호라고 하는 것은 대한제국이 첫 법률로 이것을 제정했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연도, 즉 1905년도에 반포된 법률로서 그 순서가 가장 빠르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 아닌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출범한 것이 1897년인데 무려 8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법률 제1호가 제정되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돌이켜보면 근대적인 법률체계가 도입된 것은 갑오경장 이후의 일이었다. 아래는 갑오경장 이후 제정반포된 각연도별 법률 제1호 연혁(법률반포일 기준)을 옮겨온 것이다.
개국 504년(1895년) 3월 25일 법률 제1호 재판소구성법(裁判所構成法)
건양 원년(1896년) 1월 18일 법률 제1호, 포사규칙(포肆規則)
건양 2년(1897년) 7월 13일 법률 제1호 우체사항범죄인처단례(郵遞事項犯罪人處斷例)
광무 2년(1898년) 11월 2일 법률 제1호 전당포규칙(典當鋪規則)
광무 3년(1899년) 2월 6일 법률 제1호 전당포규칙중개정건(典當鋪規則中改正件)
광무 4년(1900년) 1월 11일 법률 제1호 적도처단례중개정건(賊盜處斷例中改正件)
광무 5년(1901년) 2월 12일 법률 제1호 육군치죄규정(陸軍治罪規程)
광무 6년(1902년) [해당없음]
광무 7년(1903년) [해당없음]
광무 8년(1904년) 1월 13일 법률 제1호 평리원관제중개정건(平理院官制中改正件)
광무 9년(1905년) 3월 21일 법률 제1호 도량형법(度量衡法)
광무 10년(1906년) 2월 2일 법률 제1호 형법대전중개정건(刑法大典中改正件)
광무 11년(1907년) 6월 27일 법률 제1호 민사형사의 소송에 관한 건(民事刑事의 訴訟에 關한 件)
광무 11년(1907년) 7월 24일 법률 제1호 신문지법(新聞紙法)
융희 2년(1908년) 1월 21일 법률 제1호 삼림법(森林法)
융희 3년(1909년) 2월 4일 법률 제1호 재판소설치법중개정건(裁判所設置法中改正件)
융희 4년(1910년) 3월 12일 법률 제1호 선박법(船舶法)
도량형법이 대한민국 최초 법률이 아닌 이유
위의 목록을 살펴보면, 법률 제1호는 도량형법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소한 15개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907년의 경우에는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 퇴위가 있었으므로, 법률 제1호가 둘씩이나 존재한다. 보아 하니 자유당 정권 말기에 언론탄압을 위해 동원되었던 '광무 신문지법'이란 것도 1907년도의 법률 제1호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대한제국 시절의 최초 법률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은 어렵다. 1897년에 대조선국이 대한제국으로 전환되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법률체계와 법률번호는 그대로 승계되었으므로 여기에서 구태여 대한제국 부분만 잘라내어 최초의 법률이 무엇인지는 가려내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