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를 두드려 천둥을 일으키는 뇌신명대 소운종
동한의 왕충(王充)은 <논형>(論衡)에서 천둥을 뜻하는 ‘뢰’(雷)자가 지금과 달리 비 ‘우’(雨) 아래에 ‘뢰'(畾)자가 붙은 모습에서, 이를 여러 개의 북을 그린 모습이라고 하면서(圖畵之工, 圖雷之狀, 畾畾如連鼓形), 뇌공을 왼손에는 여러 개의 북을 거머쥐고 오른손은 쇠망치를 들고 내리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又圖一人, 若力士, 謂之雷公. 使之左手引連鼓, 右手椎之) ’역사‘의 모습은 이후 뇌공의 기본적인 모습이 되었다. 한대 화상석에 보이는 뇌공도 대부분 왕충의 설명과 일치한다.
물론 오늘날의 생각처럼 음전하와 양전하를 띤 구름이 서로를 끌어당겨 방전되면서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이때 주위의 공기와 물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나는 폭발음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설명도 있다. 예컨대, <회남자>에서는 “음기와 양기가 서로 부딪쳐 감응을 하면 천둥이 된다”(陰陽相薄, 感而爲雷)고 하였다.
삼국시대 오(吳)의 양천(楊泉)이 지은 <물리론>(物理論)에서는 “바람이 모여 천둥이 된다”(積風成雷)고 하였다. 동한의 채옹(蔡邕)은 천둥은 겨울에는 땅속에 숨어 있다가 봄이 되면서 조금씩 올라온다고 보았다. 경칩 때가 되면 바로 땅위로 나오고 중춘이 되면 하늘 위에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고대 중국인들이 가졌던 ‘봄’에 대한 생각, 즉 양기가 승하고 음기가 쇠한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중국의 시인들은 천둥을 초봄의 계절과 연관시키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추분 이후인 가을 겨울에는 천둥이 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당대 원진(元稹)은 ‘꽃 핀 나무’(芳樹)에서 “봄 우레 소리가 한 번 울리자, 제비가 놀라고 뱀도 놀란다”(春雷一聲發, 驚燕亦驚蛇)고 하였다. 봄에 치는 우레 즉 ‘춘뢰’(春雷)는 여름의 우레와 달리 소리가 적기 때문에 ‘경뢰’(輕雷)라 하기도 한다. 청대 우이(尤怡)의 ‘잡감’(雜感)에서도 “봄이 오니 양기가 움직이고, 경뢰가 북처럼 울린다. 개인 강물에는 아침빛이 가득한데, 풀과 나무는 새로 내린 비에 머리를 감았다”(春至陽氣動, 輕雷殷方鼓. 晴川泛朝光, 草樹沐新雨)고 했다.
사람들이 도시에 살면서 봄 우레 소리를 들을 기회가 갈수록 적어졌다. 그러나 시골에 산다면 경칩 무렵 흐린 날에는 봄 우레가 치는지 귀 기울여볼 만 하리라. 그 소리에 땅속 동물들이 잠을 깨고, 나무들도 놀라서 깨어나 싹을 틔우는지도,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깨어나는지도 함께 느껴볼 일이다.
경칩 무렵이면 찾아 읽는 시가 있다. 북송 구양수(歐陽修)가 지은 ‘정보신(丁寶臣)에게 장남삼아 답하며’(戲答元珍)이다.
春風疑不到涯, 봄바람은 하늘 끝 이곳까진 불어오지 않을 듯
二月山城未見花. 음력 이월에도 산마을엔 꽃이 피지 않았네
殘雪壓枝猶有橘, 잔설의 무게에 귤 매달린 가지가 내려앉고
凍雷驚筍欲抽芽. 천둥소리에 죽순이 놀라 움을 틔우려하네
夜聞歸雁生鄕思, 지난밤 기러기 울음 듣고 고향 생각 절실한데
病入新年感物華. 병든 몸에 새해 맞아 달라진 풍경을 느끼네
曾是洛陽花下客, 일찍이 낙양에서 꽃 아래 실컷 지냈으니
野芳雖晩不須嗟. 들꽃이 비록 늦게 피어도 탓할 필요 없으리
1036년 1월 구양수는 낙양의 관리에서 협주(峽州)의 이릉(夷陵, 지금의 호북성(宜昌市) 현령으로 좌천되었다. 다음해인 1037년 당시 협주의 군사판관(軍事判官)으로 있던 친구 정보신(丁寶臣, 字가 元珍)이 '꽃 필 무렵의 오랜 비'(花時久雨)를 써 주자, 구양수가 이에 대한 답시로 위의 시를 지었다. 제목 속의 ‘장난삼아 답하며’는 가벼운 놀이삼아 시를 지었다는 뜻이지만, 후반부를 읽어보면 자신의 좌천에 대한 울분을 제목으로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그러한 개인의 심사가 뚜렷하지만, 전반부는 봄이 오는 시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어 명시의 반열에 오른다. 의창(宜昌)은 양자강의 상류와 중류를 나누는 경계가 되는 곳으로, 서쪽으로 중경시 봉절현(奉節縣)까지 193㎞의 삼협(三峽)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금은 인구 60만 명의 도시이고 삼협댐이 있는 명승지이지만 고대에는 무척 척박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시인은 ‘천애’(天涯, 하늘 끝)와 ‘산성’(山城, 산골 도시)이라는 말로 그 편벽됨을 묘사하고 더불어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고 있다. 사실 의창시는 양자강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산들이 올라간 ‘산성’이다.
의창은 귤과 대나무가 유명하다. 나는 양력 1월에 의창에 간 적이 있는데 역시 귤이 많았다. 길가에는 으레 귤을 대광주리나 포대에 담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그러한 귤이 아직도 가지에 매달려 있다고 한다. 귤이 너무 많다 보니 철이 지나도 내버려 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인건비가 높아 감을 따지 않고 두는 것과는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러한지, 그렇다면 무슨 이유인지 그곳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못했음이 아쉽다. 어쨌거나 여기서 시인이 의도한 것은 색채의 선명한 대비감이다.
흰 눈 속에 주황색 귤은 얼마나 선명하고 신선한가. 또 ‘잔설’이라 했지만 그 눈이 많이 쌓여 가지를 누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여기에서 ‘누르다’(壓)는 무게로 누르기보다는 가지 위에 ‘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잔설’이라 했으니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을 것이니, 오히려 가지가 내려앉은 것은 눈의 무게가 아니라 귤의 무게 때문이리라. 그런데 사람이 보기에는 눈 때문에 가지가 늘어져 있는 듯 한 것이다. 이러한 착시를 함께 말하고 있다.
제4구는 봄의 생동감을 잘 포착한 명구이다.
凍雷驚筍欲抽芽.
천둥소리에 죽순이 놀라 움을 틔우려하네
‘동뢰’(凍雷)는 ‘얼어붙은 천둥소리’가 아니라 ‘겨울의 천둥소리’, 혹은 ‘추운 날씨 속의 천둥소리’이다. ‘경’(驚)은 타동사로 ‘놀라게 하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추울 때 울리는 천둥소리가 죽순을 놀라게 하니, 깨어난 죽순이 움을 틔우려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보통 봄의 절기를 보면, 양력 이월에는 입춘(立春)과 우수(雨水)가 있고, 양력 삼월에는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이 있다. 보통 3월 6일에서 20일까지 이어지는 경칩 기간은 겨울잠을 자던 벌레나 동물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 나오기 때문에 이런 말이 붙여졌다. 다만 이 시에서는 동물 대신 식물인 죽순이 깨어나고 있다. 천둥소리에 비로소 깨어난 죽순은 옴짝거리며 싹을 밀어내려 한다.
봄은 봄만의 일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의 일과 뒤섞여 있다. 시의 후반부는 봄에 대한 생생한 감수란 다름 아닌 정치적 불우 속에서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다. 봄이 오면서 기러기들은 북쪽의 낙양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은 낙양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대비하고 있고, 비록 벽지에서 들꽃이 늦게 피듯 자신의 뜻도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예전에 낙양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환난 속에서도 봄에 대한 민감한 안목과 감수는 결코 퇴락하지 않는다.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봄을 더욱 강렬히 느끼는 것은, 어쩌면 봄의 활력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삶속에 들어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봄비와 천둥소리 속에서 마음속의 한 구석이 울려온다면 봄은 분명 우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봄이 주는 그러한 축복을 느낄 수만 있다면, 비록 이루어지는 일이 적다고 해도 탓할 필요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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