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장준혁은 결코 정의롭지 않지만 사랑받는데 비해, 정의롭지만 깊이 사랑받지 못하는 인물들이 있다. 누구보다 올바르고 원칙적인 최도영은 예상보다 큰 공감이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단지 현실에 그런 인물이 없어서라는 것만이 이유일까.
최도영은 고집 세고 옳다고 믿는 일은 끝까지 해내는 내과의사다. 제2화에서 장준혁과 최도영은 부원장의 오진을 알고 몰래 수술해서 환자의 목숨을 구한다. 젊음의 패기, 굽히지 않는 소신,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뭉쳐서 해낸 결과다. 부원장은 병원 내 최고 실력자이다. 그런 배경에서 볼 때 최도영의 캐릭터는 빛난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 법률진과 모임에서 다른 이들은 '최도영은 장준혁의 친구니까'라고 말하며 쉽게 넘어가려 하지만, 장준혁은 오히려 '그 친구가 원래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서'라고 두려워한다. 천하의 장준혁도 최도영이 두렵다.
그런 최도영이 부원장이 내민 카드인 해외유학 건을 받아들이는 설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절이 하수상한 이즈음 해외유학 건을 내민 부원장의 속셈은 '조용히 있어라'는 신호인데 그간 매사에 원칙을 주장해 왔던 최도영이 왜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을까. 장준혁이 친구라서? 제주도까지 찾아가서 분노하고 소리 지르며 장준혁을 야단치던 최도영은 어디로 갔나?
유족이 집으로 찾아와 증언을 부탁할 때 최도영은 증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최도영은 그다지 괴로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누구보다 폐생검을 주장했던 의사로서 그의 태도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최도영의 아내는 묻는다. "친구라서 당신 힘들구나... " 그것이 전부다.
다만 친구라는 이유로 그렇게 물러날 수 있는 것일까, 유족들의 간절한 애원에 그 정도의 표현으로만 거절했어도 되는 것일까? 부원장 앞에서 버럭 대고, 부원장의 오진에 과감하게 수술을 벌이는 대쪽 의사로서의 성격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최도영이 결국 병원에 사표를 내고 법정에 나가게 되지만 왜 그제야 분노하고 정의의 칼날을 내세운 것인지 알 수 없다. 타이밍은 항상 한 박자 늦다. 미흡한 캐릭터 설정에 최도영 아내의 태도는 더욱 김을 빼놓는다. "당신 우리 민아랑 나 안 굶길 거지." 남편은 세상과 싸우는 지금 아내가 그런 말을 하는 건 드라마에 있어서도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도 좀 웃긴다.
멋진 캐릭터이고 정의의 사도로 충분히 박수 받을 최도영은 회를 거듭하면서 비현실적이고 답답한 인물로 비난받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는 '그런 의사가 세상에 없어서'가 아니라 인물이 살아있지가 않아서, 시청자의 가슴에 와 닿지 못해서가 아닐까.
너무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아
화제작 <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은 시위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서 쌀을 사오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괴로워하며 주저앉아 펑펑 운다. 누군가는 낮의 시위로 인해 감옥에 갔는데 나는 이렇게 쌀을 사와서 밥을 해먹나 하는 자괴감에 하염없이 울던 그녀의 모습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반면 <하얀거탑>의 시민운동가 이윤진이 '오지라퍼'라는 별명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희화화 되는 것을 보면 '어휴 잘 좀 하지'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하지만 드라마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의를 말하는 인간들 따위는 다 재수 없어'라는 등식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더구나 '먹고 살만하니까 그럴 수 있는 거지'라는 결론에까지 이르면 답답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의로운 그들은 사랑받지 못한다.
네티즌이 여론의 전부는 아니며 시청자 게시판의 의견이 대다수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얀거탑>의 반응은 선과 악이 나뉜 드라마에서 지금껏 보여주던 시청자들의 반응과 다르다. '올바른 길을 걷는 그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만만치 않음을 보면서, 장준혁에게만 과도하게 쏟아진 따뜻한 에피소드는 아쉽기만 하다. 최도영도 이윤진도, 피해가족도 충분히 감싸 안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었을까.
# 이름을 부른다는 것
어느 날 와인바에서 장준혁이 강희재에게 말한다.
"희재야 "
강희재는 이름을 불러주니 듣기 좋다며,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 순간 장준혁은 자신을 "준혁아"라고 말하는 두 사람을 떠올린다. 어머니와 최도영이다.
<하얀거탑>은 장준혁을 위한, 장준혁에 의한 드라마다. 하지만 최도영에게도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는 게 더 좋았겠다. 장준혁을 향해 브레이크를 걸었던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더라면. 이를 위해 많은 말과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신자유주의 시대. 드라마에서만이라도 그런 일이 없기를.
덧붙이는 글 | TV리뷰 시민기자단 응모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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