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걱정이 노년의 행복인가

부모 걱정은 자식 나이 만큼 커간다

등록 2007.03.11 10:10수정 2007.03.1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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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기억이 늘 남아있다. 중동의 사막으로 일하러 가기 위해 아내와 작별한 뒤에 온 고독한 날들이 어제 같건만 30년이 지났다. 그때 삼칠일도 안됐던 아들이 이제 장년이 되었다. 결혼할 때다. 아기 때처럼 예쁘지도 않고, 아들 걱정이 어린 날 댈 것 아니게 충격을 준다.


@BRI@아들은 간밤에 안 들어왔다. 새벽 5시, 아들의 빈방이다. 아침 6시,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아버지, 저 방에 있어요."

그 사이에 집에 들어왔나 보다. 7시 반이면 출근길에 나서는 아들인데 게으름을 피운다. 밤샘을 하고 왔으니 피곤하겠지.

"아들아 일어나라. 갈 시간이다."

나는 아들을 깨운다. 일어나서 나서는 시간이 8시다. 나도 나설 차비를 한다.


"피곤할 텐데 내가 버스 정거장까지 태워다 주련?"

집에서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서 10분 걸린다. 더러 내가 이러면 좋다 하던 아들이 이번에는
"걸어갈 랍니다. 걷고 싶어요."한다. 그래, 그럴 때도 있겠지. 아들의 마음이 왜 그런가 물어 볼 틈도 없이 나갔다.


출근한 지 두어 시간 후, 아들이 전화를 걸었다. 자식들의 전화를 받을 때는 늘 가슴이 철렁한다.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웬일인가 아들이.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녀석아. 아비 목소리는 징그럽냐?) 나는 속으로 중얼댄다.

"마음이 꿀꿀하다고? 이번에 진급이 안됐다고? 지난주에 발표했고… 다른 동기들은 어땠고? 다 됐는데 우리 아들만 빼나? 그런 법이 어디 있나. 심란하지. 그래서 월요일 화요일을 휴가를 냈었구나. 올해 안됐으면 내년이면 되겠지. 우리 아들이 일이 많아서 날 밤새고 지방 출장 다니면서 차사고가 나서 죽을 뻔 하고 차도 한 대 폐차를 시키며 애썼는데. 다 알아줄 날이 올 거야. 실망하지 말고……."

(이 아비도 중동에 갔을 때는 사원이었다. 어떤 군대 동기는 차장으로 공구장이었다. 진급자 발표할 때 내 이름이 빠져서 슬프고 분노했다. 내가 정말 일을 열심히 했다고 믿었기에 그랬지. 그러나 중동에서 진급하고 그 다음에는 때가 되면 한 계급씩 올라갔다. 쓰라린 경험 뒤에 작은 성공은 더 달콤하단다. 아들아.)

"……. 하는 일마다 안 된다고……? 하다 보면 성과가 있게 마련이지. 뭐, 일이 안되니 장가라도 가야겠다고……? 환영이지. 한동안 만난다는 아가씨는 어쩌고? 헤어졌으면 다시 만나야지. 엄마가 이모에게 말하고 친구에게 말하고 색싯감을 구한다고 말을 해놓았는데 말들이 없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교인이 아니면 안한다더라. 네가 교회라도 다녀서 좋은 색싯감을 만들든지.

다시 결혼상담하는 곳에 가입하면 어떠니? 몇 번 만나서 허탕을 쳤지만 다시 시작하려무나. 뭐, 150만원을 회비로 내면 정말 맞춤 중매를 하는 곳이 있다면 생각할 만하지. 그래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하자. 어디 얼굴을 볼 수 있어야 말을 하지. 그래그래, 일찍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하자."

집 밥상머리에서 말이라도 건네면 예와 아니오로 아들의 답변은 간단하다. 아비가 되어 자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나이가 지났다. 이미 품을 떠난 아들이다. 부모가 시시콜콜 물어보거나 야단칠 때는 이미 배 지나갔다.

a 이 사진을 품고 나는 사막의 현장에서 별 보고 나가서 별 보고 숙소로 왔다.

이 사진을 품고 나는 사막의 현장에서 별 보고 나가서 별 보고 숙소로 왔다. ⓒ 황종원

자식이 커갈수록 부모의 걱정 또한 크기가 커진다. 한때 내가 나가 있던 중동 시절에는 걱정 또한 작았다. 이때는 그런 고통을 몰랐다. 어린 시절의 아들 생각을 하면 지금 이 나이 아들도 귀엽다.

지금은 함께 있어도 그리운 아내가 그때는 더 그리웠다. 그런 만큼 아내는 내가 그리웠다. 꽃다운 아내를 품었던 처녀 시절이 생각난다. 어린 것을 품에 안은 아내가 생각난다.

그때 그 시절 1978년 8월 16일자 아내의 편지는 '다정한 아빠'라고 시작되었다.

a 젊은 날의 아내는 꿈이 많았다.

젊은 날의 아내는 꿈이 많았다. ⓒ 황종원

이곳 아침저녁 날씨가 차차 서늘해져가고 있어요. 가을이 곧 올 것 같아요. 가을 하니까 괜스레 쓸쓸해져요. 가을이란 낱말이 무척 외로운 것 같아요.

그곳 날씨는 여전히 덥죠? 몸조심하세요.

식사는 이제 좀 어떤지요. 조금씩이라도 꼭 드세요. 식사를 잘 하셔야 기운이 생겨서 일을 하지요. 기운이 없으면 지쳐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익숙해질 거예요.

요즘은 토요일이나 공휴일이 되도 평일과 잘 구별이 안 돼요. 계단 청소를 하면 일요일인 것을 알고 신문이 안 오면 월요일인 줄 알죠. 그렇지만 날짜 가는 것은 정확하게 알아. 우리 집 일력은 항상 오늘이 며칠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죠.

8월 14일은 우리가 잠실로 이사 온 지 만 일 년이 되는 날이에요. 처음 이사 올 때 무척 좋아하던 생각이 나요. 그런 것을 보면 일 년이 잠깐인 것 같은데 지금은 생각하고 기다리니 더디 가는 것 같아요. 아빠가 있었으면 시원한 맥주로 축하주 한 잔 쯤 준비해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며 보냈을 텐데요.

그리고 또 이 날은 차 서방 생일이여서 엄마는 영동 AID아파트로 가시고 정태와 둘이서만 집에 있었죠. 그런데 정태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혼났어요. 정태 자신도 졸리면서 잠을 못자고 잠투정을 계속해서 3시간을 하다가 밤 10시가 다 되어서 겨우 잠이 들었어요.

재우고서 뒤돌아서면 다시 깨서 울고 또 다시 그러기를 열 차례는 했을 거예요. 너무 속이 상해서 볼기를 몇 차례 때렸어요. 그리고서 자는 모습을 보니 애처로워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어린 것이 무엇을 안다고 내가 그랬나 생각하니 나는 아주 나쁜 엄마인 것 같았어요.

마음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정태에게 빌었어요. "아들아, 정말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라고요. 그러면서 손을 꼭 잡고 울어버렸어요. 아마 그것이 엄마 마음인가 봐요. 속을 썩이면 미워도 그것은 순간, 다시 예뻐지고 사랑스러워지는 것이 엄마 아빠 마음인가 봐요.

광복절에는 하루 종일 TV를 봤어요.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영화처럼 세월이 잘 갔으면 좋겠다고요. 화면이 바뀌면 세월이 어느새 성큼 가버리잖아요. 그리고 아무리 길어야 두세 시간 안에 다 끝나버리니까요.

우리도 영화 같이 화면이 바뀌면 한 달이, 또 바뀌면 반년이 지나는 것처럼 날들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어린 아이 같은 철없는 공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에요. 아빠 정말 보고 싶어요. 한 달에 한 번, 아니 두 달에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참 좋겠어요. 그렇지만 참을게요. 꼭 참을게요. 아빠도 꼭 참으세요.

1978. 8. 16
아빠의 아내, 숙


a 무게를 줄이려고 작은 글씨로, 아내는 꼼꼼하게 편지에다 그리움을 담았다.

무게를 줄이려고 작은 글씨로, 아내는 꼼꼼하게 편지에다 그리움을 담았다. ⓒ 황종원

이제는 늙은 부부가 된 우리 부부다. 자식은 이제 떠날 차비를 하고, 우리는 처녀 총각 때처럼 단 둘이다. 아직은 곁에 있는 아들 걱정과 취직하여 독일에 가있는 딸 걱정으로 늙어 가는 일만 남았다.

젊은 날에 꿈꾸던 노후는 자식들에 대한 불안, 걱정으로 지켜보는 삶인 줄 몰랐다. 누구는 이것을 행복이라고 한다. 인간은 행복한 착각 속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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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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