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인가?

[지역언론 별곡 177] 강준만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출간

등록 2007.03.11 11:39수정 2007.03.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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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영역은 없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강력한 '중앙 1극 구조'를 유지해온 한국 사회에서 '쌍방향'은 기대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명제를 던졌다. 최근 펴낸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란 한권의 책에서다. 60년대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처럼 단정적이긴 하지만 솔직 담박하다. 여러 이론과 실증적 고찰을 통해 소통의 향방을 짚었다.


'소통모독', '소통불능', '소통죽음' 등 여러 지역신문 칼럼들에서 늘 "소통부재와 소통을 모독하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해 온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소통이 부족한 한국사회를 진단했다. 모든 걸 단칼에 해치우려는 거대담론증에 빠진 때문일까.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은 사회적 현상을 냉철하게 지적하고 원활한 소통 대안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평소 강의노트, 방학 중 한권의 책으로

a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 박주현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란 한권의 책은 그가 방학기간 중에 고민하며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은 '미네르바의 부엉이', '망탈리테와 커뮤니케이션', '아비투스와 커뮤니케이션',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커뮤니케이션', '프런티어 사관과 커뮤니케이션', '정체성과 본질주의', '언론보도의 의인화·개인화',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던 역사학', '미시사와 일상사', '기억으로서의 역사' 등 12장으로 구성됐다.

평소 강단에서 학생들과 함께 토론했던 주제의 강의노트를 한데 묶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책은 2만장이 넘는 원고지에 1945년부터 최근까지의 역사를 18권에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를 보강까지 해준다.

국내 정치ㆍ경제ㆍ사회는 물론 대중문화ㆍ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며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낸 강 교수는 한국현대사를 이번엔 '커뮤니케이션'에 담았다.

역사와 커뮤니케이션을 등치시키는 책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특이한 점은 이 책에서도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는 명언에는 동의하지만 법칙으로 삼는 것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강 교수의 고집스런 주장이다.


지난 해 6월 <3당 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현대사산책 3권을 출간하면서도 그는 거리두기의 지혜를 상징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거론하며 많은 역사학자들이 중요시하는 거리두기 법칙을 '전문주의의 함정'이라고 비판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한낮에도 날아오른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한낮이나 새벽에 날기를 주저하는 것은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는 헤겔의 '법철학' 또는 일종의 법칙에 단호히 반대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도대체 뭐 길래 그는 집착하는 것일까. 그는 '한낮에 날아올라야 한다'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렇게 반문한다.

"커뮤니케이션사 연구는 역사를 탐구할 때 '지금 당장, 여기에서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그래서 현대사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역사 연구에서 거리두기의 지혜를 의미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라는 명언은 반드시 지켜야 할 진리인가?"

이런저런 이유로 현대사는 죽어가고 있다는 강 교수의 답은 간단하다. "그렇지 않다"이다. 학생들이 100년 전 사건은 알아도 10년 전 사건은 모르기 때문이란다.

"100년 전 사건은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밑줄 그어가며 외우지만, 10년 전은 시험에도 안 나오고 읽을 만한 책도 없다"는 그는 "100년 전보다는 10년 전을 알 때에 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선명해지는 경우가 아주 많다. 10년 전 역사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실용적이고 유익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사를 다루는 건 위험하다고만 외칠 게 아니라 현대사의 무지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강 교수. 그는 "우리사회에 민주화의 역사는 있어도 민주화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언론사·대중매체사·문화사·커뮤니케이션사'를 통칭하여 커뮤니케이션사로 부르자"고 이 책에서 제안한다.

역사학을 위한 또 다른 변론인가?

관련분야를 묶어 커뮤니케이션사라 하고 이에 대한 통찰을 통해, 이해와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공동체의 규범을 창출하자는 것. 이를 위해 커뮤니케이션과 역사에 대해 생각해볼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의사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한국사회를 위해서라고 한다.

강 교수가 리처드 에번슨이 지은 <역사학을 위한 변론>이란 책을 강의실서 왜 가끔 소개했는지를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에번슨은 "역사학은 경험적 학문이며, 지식의 본질보다는 그 내용에 관심을 가진다"고 했다. <역사학을 위한 변론>의 결론부는 '역사의 초연함', '사실에 매달리는 상상력', '시적인 역사' 등으로 포스트모던의 역사이론을 한 단계 훌쩍 넘어선다.

강 교수의 이 책에서도 그러한 탈 포스트모던 이론과 같은 파격적인 냄새가 짙게 풍겨난다. 강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망탈리테의 충돌과 더불어 망탈리테 내부의 모순으로 인한 불신이 소통 불능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이 책에서도 주장한다.

'심성, 정신 자세' 등으로 번역되는 망탈리테. 지리나 기후와 같은 장기 지속적인 조건에 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 생활 습관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망탈리테가 인간의 사고를 제약할 수 있는 틀이기 때문에, 이 틀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한 상호 소통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

강 교수는 "'경제주의 망탈리테'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모든 걸 경제의 관점에서만 보고자 하는 '경제주의 망탈리테'는 박정희 평가를 둘러싼 논쟁에서 특히 상호 접점을 찾기가 매우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개혁과 진보진영 내부에서 노 정권을 평가하는 시각이 양극으로 갈리는 이유도 망탈리테, 즉 상호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매듭 짓는다.

"망탈리테 충돌과 내부모순 경계해야"

a 강준만 교수가 최근 펴낸 책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강준만 교수가 최근 펴낸 책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 박주현

이 책에서 강 교수는 "한국에서 '과거사 청산파'의 관심사는 '경제주의'에 반대되는 '정신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정신적인 것에 집중돼 있다"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망탈리테의 충돌과 더불어 망탈리테 내부의 모순으로 인한 불신이 소통 불능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정신주의 망탈리테를 강 교수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정신주의 망탈리테의 생명이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그럴 때에 비로소 경제주의 망탈리테와의 균형과 소통도 가능해진다"고 해법을 나열했다.

특히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한낮에도 날아오를 수 있다고 한 그는 "노무현 정권에서도 '민생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파가 있는가 하면, '과거사 청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파도 있다"며 "노 정권은 전자는 실패했지만 후자는 성공했다"고 미리 평가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개혁·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노 정권을 평가하는 시각이 양극으로 갈렸다는 것이다. 최근 한 지역신문의 기고 글에서도 그는 "'노무현 시대’는 훗날 지금보다는 더 나은 평가를 받겠지만, '소통의 죽음'이라는 꼬리표마저 떼진 못할 것"이라며 애석해했다.

강 교수는 이처럼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자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사의 취지"라고 한다. 그는 또 "주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점이 중요하다"며 "역사를 그렇게 이해할 때에 인간이 역사에 끌려 다니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역사를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자"

인간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선 역사를 곧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포인트다. "수많은 주제들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관점과 내용을 중시하면서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게 바로 커뮤니케이션사"라고 강 교수는 강조한다.

강 교수는 결국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역사를 그렇게 이해할 때에 인간이 역사에 끌려 다니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인간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선 역사를 곧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주제들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관점과 내용을 중시하면서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게 바로 커뮤니케이션사라는 주장이다. 그는 "한국사회는 커뮤니케이션 불감증 사회, 또는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사회"로 정의한다.

모든 이들이 말로는 '쌍방향'을 외치지만, 습속·체질·기질상 쌍방향성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간 맺힌 한과 스트레스가 워낙 많은 데다 늘 '빨리빨리'를 외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의 개혁 필요성도 제시됐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개혁의 대명제를 세우고 위에서 아래로 각 사안에 적용하는 방식이 연역적 개혁이라면, 대중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개별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서 아래에서 위로 개혁 명제를 세우는 방식을 귀납적 개혁"이라고 못 박았다.

한국의 실용주의는 왜 나쁜가?

"그러나 연역적 개혁은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고 개혁 주체의 개혁성을 홍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간과하기 쉽고 개혁에 대한 반발·염증·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동안 역대 정권들에 의해 추진된 개혁은 모두 연역적 개혁이고,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다"고 방점 찍는다. 구체적 각론에서 출발했더라면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안도 총론에서 거창하게 나가는 바람에 필요 이상의 반발과 의혹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고 보면 역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역시 모든 게 귀결된다.

실용주의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다. "최근에 부각된 '인문학 위기론'과 관련, 실용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이 쏟아졌다"며 "그러나 인문학 사정이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거론되는 미국과 일본은 세계에서 실용주의가 가장 극성을 부리는 나라"고 한다.

그런 뒤 강 교수는 다시 반문한다. "실용주의를 비난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인문학을 긍정 평가한 지식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미국과 일본의 실용주의는 좋지만 한국의 실용주의는 나쁘다는 뜻일까?"

"실용주의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실용주의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한국은 그 문제를 고민할 처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며 강 교수는 "한국은 전근대·근대·탈근대적 요소가 공존하는 나라"임을 전제한다.

브레이크 없는 소용돌이 현상... 왜?

"특히 인문사회과학은 학계 내부경쟁과 인정투쟁으로 매우 높은 서양의존도를 기록한 덕분에 선진적"이라고 한 그는 "문제는 그것이 한국적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또 "각기 다른 시대에 존재해야 할 것들이 한 시대에 어우러져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한국사회 내부의 논쟁과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평가한다. 역시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란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서양에서 직수입한 선진성으로 무장한 지식인이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민하기보다는 조롱하는 것이 박수를 받는 실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또 "한국의 소용돌이 문화와 관련해서 미국에 팽창주의의 '프런티어' 코드가 있다면 한국에는 '소용돌이' 현상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 "중앙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는 소용돌이는 브레이크가 없다"고 한다. 극단으로 치닫고 늘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질주하는 욕망은 광적인 교육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그런 소용돌이 문화는 196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초강력 중앙 집중은 다원주의와 분권화를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리고 경고한다.

"주제 자체보다 관점이 중요"

그래서 그가 곧잘 "서울 1극 구조가 과연 우리의 미래인가?"란 화두를 던져왔던 것일까. 이와 관련, "미디어 구조부터 잘못된 게 아닌가?, 네 공영방송 채널이 모두 다 서울에 몰려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적 관심을 서울로부터 조금 멀어지게 하고 전국적으로 분산되게 하면 국가안보가 위협받는가?, 수출이 안 되는가?, 소용돌이 귀신님들, 말 좀 해보시오"라며 우리 사회의 쏠림과 소용돌이 현상을 개탄해 왔던 강 교수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하나로 묶어 다루는 연구도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한국 사회가 겉으로는 '정치 우위'인 것 같지만 실은 경제가 모든 걸 지배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그는 커뮤니케이션사 연구는 커뮤니케이션의 물적 구조에 대한 관심과 경계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정치과잉 경제과소'의 함정을 피해가야 한다고 조심스레 주장했다.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자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사의 취지다.

주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는 다양한 주제들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기 위하여 중요한 서구 지성과 이슈들을 소개하여 우리가 생각해볼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수많은 인용과 각주 자세히 읽기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은 강준만 교수가 그간 노력해 온 한국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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