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신드롬, 그 반동의 미학

[드라마사회학]조작된 신화가 우중(愚衆)을 만든다

등록 2007.03.12 14:11수정 2007.03.1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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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V를 켜면 도처에서 영웅들이 출몰한다. 지난주 한 영웅(주몽)이 사라졌지만 주말이면 여전히 영웅들의 세상이다. 제작이 예고된 대하사극(태양사신기 등) 역시 또 한 명의 영웅을 등장시켜 영웅부재의 시대에 영웅신드롬을 이어갈 것이다.

이 시대에 왜 그렇게 많은 영웅들이 필요하고 등장해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일상은 사라지고 과거 속의 영웅들이 득세하는 TV 속의 세상이 그리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영웅의 출현에 열광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사는 시대에 영웅이 없다는 역설적 증명이다. 어려운 경제상황, 어지러운 정치현실, 우리 것과 남의 것이 뒤섞여 좀처럼 그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문화적 상실감에 놓여 있는 대중의 심리적 불안은 영웅(또는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희망 없고 고단한 현실은 종종 위대한 영웅의 시대를 갈망하게 하고 드라마는 그런 대중의 심리를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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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bc.com

요즘 같은 대하사극의 열풍이나 주몽 같은 퓨전사극의 성공은 바로 그런 대중의 심리적 불안과 대리만족체험에 힘입은 바 크다. ‘사극은 대중이 꿈꾸는 역사를 만족시켜주기도 하지만 못난 오늘을 보상받으려는 측면을 가진다’는 어느 기자의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지리멸렬한 오늘의 일상이, 갑갑한 대중의 삶이 영웅을 소환하고 영악스러운 매체는 그 심리를 영웅주의로 둔갑시켜 돈을 챙긴다.

따라서 이 경우의 사극이란 역사적 사건 혹은 인물의 순수한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대중들이 원하는 영웅상을 드라마로 구현한 것이거나 현실을 망각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다 해당 사극은 대중에게 도피처를 제공해준다. 역사 인물 재현보다는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 신화적 인물을 만들어냄으로써 대중의 몰입을 부추긴다. 대중은 이 영향을 받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 안정일 뿐이다. 현실의 불안에서 애써 벗어나거나 일부러 잊으려하는 대중들의 자기 환각이라 말하는 편이 옳다. ‘주몽’과 ‘연개소문’과 ‘대조영’이 건국과 혁명과 부활을 위해 질주하는 들판에 불어야 할 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염원과 힘찬 기상의 돌개바람이다. 그러나 위대한 영웅의 깃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거꾸로 부는 반동의 바람만이 을씨년스런 곡성을 토해낸다.

조작된 신화 속에는 반동의 바람이 세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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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co.kr

드라마의 의도와는 별개로 드라마가 창조해내는 영웅(영웅주의)의 보이지 않는 등 뒤에는 극우이데올로기 혹은 보수반동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새로운 세상 혹은 질서를 열겠다는 그들의 당찬 포부와는 달리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와는 동떨어진 카리스마와 권력에 대한 집착 그리고 실현과정에서 부정한 수단 사용 등이다.

자주 국가로서 당나라에 응전한다는 것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연개소문의 혁명은 무참한 피의 살육에서 시작되었다. 또 그의 혁명은 지나친 독재 권력의 행사로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연개소문의 거사에 대한 미화는 자칫 성공한 혁명은 정당하다는 군부독재세력의 궤변을 옹호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대중 속에 스며든 구시대의 향수가 우리의 내일을 위협하는가하면 버젓이 일해공원이란 현판이 걸리는 지경이니 말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역경을 극복하는 주몽의 모습에서는, 연개소문의 가노로 숨어 성장해야 하는 대조영의 운명에서는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다물군을 이끈 후의 주몽의 신위는 그야말로 신인의 힘이다. 백정백승 불패의 신화 속에 거칠 것이 없다. 제왕지운을 타고난 대조영의 캐릭터는 마찬가지로 하늘이 점지한 신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는 역설적으로 운명은 우리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것이라는 숙명적 세계관으로 대중을 우중(愚衆)으로 전락시킨다.

주몽이 진번 임둔군과의 전투에서 실종되어 사라졌을 때,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시청률은 급락하였다. 드라마에 의해 우중화된 대중은 실제로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다. 내가 못하는 것을 (암담한 현실의 극복을) 대신해주던 인물이 사라지자 우중은 안절부절하지 않을 수 없다. 대조영이 당군의 습격으로 생사지경을 넘나들고 있는 지금부터 얼마간 우리는 마치 제 몸에 살이 박힌 양 끔찍하게 아파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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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co.kr

드라마 주몽이 인간적인 영웅의 좌절과 극복을 실감나게 재현해내지 못한 현실에서, 드라마 <대조영>이 한낱 점지된 신인(神人)으로서의 활약상으로 발해를 건국하는 무협으로 그려진다면, 드라마는 결국 새로운 세상을 연 그 영웅들을 배반하는 우를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혹독한 시련과 역경의 극복 없이 얻어지는 전망이란 절대로 없기 때문이며 계속되는 기연으로 강해진 무협지의 주인공은 환각의 카타르시스만을 주는 까닭이다.

드라마 속의 영웅이 신화 속의 인물과 꼭 같이 그려질 때, 우리처럼 웃고 울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그러다 다시 일어서는 인간이 아니라 애초부터 특별한 권능을 가진 초인으로 그려질 때 우리는 현실의 멍에를 잠시 내려놓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벗어던질 힘을 가질 수는 없다. 한계를 미리 체념한 인간에게 내일의 전망은 없다. 이는 비극적 소모를 경계하여 도전을 포기하는 이문열식 세계관의 강요에 지나지 않는다.

열린 세계로의 진전을 가로막은 채 닫힌 과거에서 위안을 구하는 영웅의 도래를 우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부대끼는 일상을 잊게 해주는 대리인으로서의 영웅은 반갑지 않다. 힘에 겨운 일상에서 다시 일어설 기운을 차리게 해줄 영웅이 필요한 시대임에도 사극의 영웅들은 어쩐지 미덥지 못하다. 대중의 진정한 욕구는 판타지 속의 영웅이 아니다. 대중들이 원하는 영웅은 <하얀 거탑>의 장준혁처럼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 현실의 영웅이 아닐까.

그러나 사극에서는 영웅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말갈기를 휘날림에도 불구하고 열린 세상으로의 활시위는 당겨지지 않는다. 그들의 들판에는 닫힌 과거에서 날아온 돌멩이만 흩어져 있다. 신화는 있으나 역사는 없기 때문이다. 신화는 위안일 뿐 용기를 주지 못한다. 드라마는 보수와 앙시앵레짐으로 우중을 현혹하고 뉴스에서는 연일 그 아이콘들이 오르내린다. 반동의 바람은 세차고 깃발은 우측으로만 나부낀다.

덧붙이는 글 | * TV리뷰 시민기자단 응모
* ncn뉴스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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