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49회

등록 2007.03.12 08:12수정 2007.03.12 08:12
0
원고료로 응원
아침식사는 상만천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저녁보다는 아침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반시진이 넘게 걸리는 아침식사는 대개 혼자서 하는 것을 즐겼다.

그것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바로 그 시간에 생각하는 그의 버릇 때문이었다. 정신이 가장 맑을 때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BRI@오늘 아침도 그는 해삼과 전복, 그리고 새우를 넣어 끓인 탕과 팔보연자죽(八寶蓮子粥)을 한 그릇 가득 먹었으며 돼지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든 만두를 여덟 개나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밀전감과(蜜錢甘果)까지 모두 먹고 입을 닦아냈다.

또르르---

찻잔이 비자 금방 한쪽 구석에 있던 여인이 빠르게 다가와 희고 가는 손으로 차를 따랐다. 상만천은 차를 한 모금 입에 넣고는 금방 삼키지 않고 잠시 입안에서 굴렸다.

“소접(小蝶)… 복(蝮)의 행방을 찾았느냐?”

얼굴이 갸름하고 몸매는 날씬했지만 ‘작은 나비’라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큰 키의 여자였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지만 차분하고 변함없는 표정으로 인해 완숙해 보였다. 바로 일접사충 중 일접이었다.

“아가씨들께서 조금 전 돌아와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운중보에 들어와 상만천의 모든 시중을 드는 사람이 일접이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음식을 가져오면서도 주인이 물을 것이라 예상되는 모든 사항을 챙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연락이 끊긴 복의 행방을 직접 알아보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있어 그 어떠한 일보다 중요한 것은 상만천의 시중을 드는 일이었다. 대신 비교적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 두 딸이 나선 모양이었다.

“……!”


상만천은 다그치지 않고 다시 차를 마셨다. 일접이 복의 행방에 대해 직접 말을 하지 않고 복의 행방을 찾으러 나갔던 두 딸이 돌아왔다는 말을 꺼낸 것은 복에게 무슨 변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접은 보고할 때 대체로 일시적인 충격을 완화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주인이 잠시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결론을 말해주는 독특한 버릇이었다.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연못에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상만천의 얼굴에 잠시 의외라는 기색이 스쳤다. 일접사충이 상만천의 수족임은 알만한 인물들은 모두 아는 일이다. 그 중 하나를 살해했다는 것은 자신과 적대하겠다는 의미였다. 최근 십여 년 동안은 이런 일이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복이 중간 중간에 음호를 남겨두어 그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차분하게 복의 행적을 보고했다. 백호각에 난입한 인물이 옥기룡에게 당하는 순간 또 한 인물이 구해갔고, 그것을 용이하게 만들었던 것이 백도에게 당한 마궁효 때문이었다는 보고를 들으면서도 상만천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자들을 추적하다가 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누구에게 당한 것인지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제야 상만천은 물었다.

“사인(死因)은?”

“시신이 물에 약간 불어 확실치는 않지만 누군가와 약간의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결정적인 사인은 허리에 난 지공(指功)의 흔적이라는 보고입니다. 보통 지공이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시(午時)까지 흉수가 누군지 찾아내도록… 운중보에는 알리지 말고.”

지시는 간단했다. 일접 역시 그런 지시에 아주 익숙해져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반 시진 전 철교두가 다녀갔습니다.”

운중보 수석교두인 광나한(廣羅漢) 철호(徹虎)를 말함이다. 아마 주인의 식사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돌려보낸 모양이었다.

“급한 일이었던 모양이군.”

꼭두새벽부터 찾아온 것을 보면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의미다. 빨리 보고를 해야 하지만 일접은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띠었다.

“어제… 소비(小婢)와 만나고 헤어졌던 반교두(潘敎頭)가 살해되었습니다. 그 때 함께 해치웠어야 했는데… 오히려 당한 모양입니다.”

“무슨 말이냐?”

“운중각에서부터 소비를 따라온 것으로 보이는 자가 있었습니다. 손을 쓰려다 지켜보았는데 반교두와 만나는 것까지 본 자입니다. 반교두가 혼자 처리하겠다고 하여 소비는 그냥 왔는데 오히려 그 자에게 당한 모양입니다.”

상만천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심기가 상할 때 보이는 현상이지만 일접을 탓하는 것은 아니었다. 운중보에서부터 일접을 따라 붙었다면 만만찮은 인물이다.

“환영교수(幻影巧手)가 당할 정도라… 운중보에서부터 따라 붙었다면?”

“철교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보주의 셋째 제자인 모가두(摸暇頭)가 유력하다는 전언입니다.”

다시 상만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신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 살해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교두들의 경우 운중보에 몸은 담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교두들은 회에 소속된 인물들이라는 게 옳을 터였다. 그들은 회의 중추적 전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절정고수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들이 운중보에 들어온 문하생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교두에 대한 문하생들의 관계는 기명 제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제의 연이 닿아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것은 회의 우호세력을 만들어 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교두들을 선발하는데 있어서 매우 신중을 기했고, 회에서 추천한 자가 아니면 교두가 될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또한 실질적으로 운중보 내의 일을 처리했던 인물이 철담이었던지라 교두들은 내부적으로 철담의 사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기에 철담이 시해되자 그 흉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몰랐다. 허나 대놓고 철담의 흉수를 색출하는 일에 뛰어드는 것도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다고 판단한 교두들로서는 상만천의 사위인 쇄금도 윤석진을 내세워 흉수를 색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하튼 철담이 시해되자 교두들로서는 어차피 회의 수뇌 중 한 명인 상만천과 자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철담을 대신한 위치에서 어느 정도는 통제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철담이 살아있었다 해도 상만천과 직접 끈을 가지고 있는 교두들이 꽤 있어 하등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모가두라… 그 자가 환영교수를 살해할 정도였던가?”

보주의 다섯 제자 중 모가두가 가장 뒤쳐져 있지만 진심으로 사부를 모시는 극진한 마음은 가장 위일 터였다. 그가 교두를 대놓고 살해할 정도라면 그 혼자 결정하고 움직였을 리 없었다. 더구나 운중각을 정탐하던 일접을 뒤쫓은 것이라면 보주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2. 2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3. 3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4. 4 행담도휴게소 인근 창고에 '방치된' 보물 행담도휴게소 인근 창고에 '방치된' 보물
  5. 5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