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파기 가능한 계약서

[서평] 안토니의 갈라의 러브 아포리즘 <사랑의 수첩>

등록 2007.03.12 19:33수정 2007.03.1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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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랑의 수첩> 글 : 안토니오 갈라 / 유혜경 옭김

<사랑의 수첩> 글 : 안토니오 갈라 / 유혜경 옭김 ⓒ 들녘

우리는 늘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하거나 말하고 산다. 또 사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에로스의 사랑이니, 아가페의 사랑이니 하며 정의를 내리고자 했고,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사랑의 감정을 달콤한 때론 아픈 언어로 표현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사랑'이 뭐냐 물으면 명확히 답을 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사랑이란 복잡 미묘한 심리적인 것이고 환경적인 것이다.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면서 매우 전체적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달려드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랑의 감정을 어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 속에서 미적미적하다가도 어느 순간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의 용광로를 어찌 제대로 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헌데 그런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런 글로 이루어진 책도 있다. 천재작가,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스펜인의 안토니오 갈라의 <사랑의 수첩>이다. 사랑의 아포리즘이라 불릴 수 있는 이 책은 이기적인 사랑에서부터 이타적인 사랑까지, 남녀 간의 사랑에서부터 일반적인 사랑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형태를 적절한 비유를 들어 산문과 시로 표현하고 있다. 일종의 사랑의 모든 언어와 정의를 종합적으로 이야기해 놓고 있다.

그럼 그가 말하고 있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사랑과 찾아오는 이별의 고독은?

그는 사랑은 열광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일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고 한다. 또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존재를 사랑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많이 이해하려면 많이 사랑하고 공감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건 누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은 한 편의 연극이다

허면 그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 사랑은 한 편의 연극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가 연극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며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사랑이라는 것이 치열한 두뇌싸움이라는 것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끌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머리를 굴린다는 것을. 그러다 힘이 소진되면 영원히 지킬 것 같은 사랑의 약속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하지만 '사랑하는 이는 사랑을 포기할 때도 있지만 사랑했던 순간만큼은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갔다가 돌아오는 / 부자로 갔다가 가난해져서 돌아오는 / 원주민. / 그러나 사랑이 있었던 곳에 / 망각은 있을 자리가 없으니…."


사랑하는 사랑과 헤어지면 연인들은 슬프고 단단한 망각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나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던 곳에 망각의 자리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의 가장 귀한 것들을 빼간다.

"사랑은 우리의 골수와 뼈를 빼가고, 가장 깊은 곳을 침략한다. 그리고 끝을 내는 순간 우리 자신마저 빼앗아간다. 사랑을 주는 대가로 무언가를 기대하지 말라. 바라지 말고 공짜로 사랑을 주어라."

우리는 사랑을 주면서 똑같은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그게 우리의 마음이다. 헌데 갈라는 전부를 원하는 아이들처럼 무조건 사랑하라고 한다. 그리고 삶마저 순순히 잃어버릴 정도로 사랑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 끝은 아무도 장담 못한다. 장담은 못하지만 가장 진실한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이다. 무언가 바라는 사랑은 늘 허전함을 가져오지만 바라지 않은 사랑은 충만함을 가져다준다.

부부는 파기 가능한 계약서

연인 간의 사랑이 무르익으면 부부라는 연을 맺게 된다. 그 부부를 갈라는 '파기 가능한 계약서'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냉정한 정신으로 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부는 서로 다른 조건, 다른 성격, 다른 연령, 다른 교육, 다른 환경과 다른 성을 가진 남남이 서로를 필요로 하여 하나를 이룸을 말한다. 그 하나의 전제 조건으로 '사랑'이라는 것이 따른다. 그러나 요즘은 결혼의 전제 조건으로 사랑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없어도 그리 싫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결혼을 한다. 그리고 무언가 조건이 안 맞으면 이혼을 한다. 그러면서 사랑이 식었다고 한다.

갈라는 이혼에 대해 단적인 표현을 써서 말한다. '이혼은 사망 행위'라고. 이혼이란 이 사회의 잘못된 영향을 받아 제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부 관계와 사랑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사랑과 부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사랑한다고 해서 꼭 결혼을 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을 하는 오늘날의 현상을 보면 일면 일리 있는 말이다.

사랑. 인간에게 늘 따라 다니는 화두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랑에는 뚜렷한 느낌이 있다. 그 사랑의 느낌은 때론 키스, 애무 같은 행위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다 질투, 고독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안개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갈라는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나름대로 만들어 나간다고.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형상을 사랑한다고.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겐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사랑처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없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다가도 어느 틈엔 뒤로 물러서 있는 게 사랑이다. 또 사랑이 자유이어야 할 터인데도 오히려 구속이 되기도 한다. 허나 왜 그런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안토니오 갈라의 사랑의 아포리즘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수첩>을 읽다보면 사랑의 속과 겉의 내밀한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수첩 - 천재작가 안토니오 갈라의 러브 아포리즘

안토니오 갈라 지음, 유혜경 옮김,
들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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