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아 고맙다, 잘 묵으꾸메이"

내 고향 미나리, 그 속에 동생의 사랑 담겨 있네

등록 2007.03.13 17:38수정 2007.03.1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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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보시기에다 미나리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서 볼이 터지라고 한 입 가득 떠넣습니다.
큰 보시기에다 미나리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서 볼이 터지라고 한 입 가득 떠넣습니다.이승숙
매년 이맘 때면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 한 해도 빼먹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 바로 대구 사는 내 동생이 거는 전화다. 올 해도 잊지 않고 전화가 왔다.


"작은 누나야, 내일 집에 있으레이. 내일 미나리 도착할끼다 집 비우지 말거레이."

@BRI@동생이 미나리를 보낸 모양이다. 미나리는 생물이니 빨리 받아서 신선할 때 무쳐 먹으라며 집 비우지 말고 택배를 기다리라고 했다.

"오야 고맙다. 해마다 누나는 앉아서 얻어 묵네. 잘 묵으꾸마."
"뭐 빌 꺼 아이다. 봄에 나오는 미나리는 보약이다 카잖아. 자형 해드리라. 그라마 누나야 잘 있거레이."
"오야, 니도 건강하고 항상 조심하며 잘 지내거레이."

대구 사는 내 동생은 철마다 먹을 만한 것들을 우리한테 챙겨준다. 봄이면 미나리를 보내주고 가을이면 감홍시가 찾아온다. 저도 사는 게 빡빡할 텐데 매년 이 누나를 챙겨준다.

내 고향 경북 청도는 소싸움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먹거리도 풍족하다. 특히 과실농사가 잘 되어서 복숭아를 비롯해서 감, 대추 등 과일들이 지천으로 나온다.


미나리를 좋아하는 자형을 위해 친정 동생은 해마다 잊지않고 보내줍니다.
미나리를 좋아하는 자형을 위해 친정 동생은 해마다 잊지않고 보내줍니다.이승숙
대구와 경산을 지나 청도로 내려가자면 첩첩 산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여기가 강원도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로 청도는 산이 많다. 산이 많으니 골도 깊다. 그 깊은 골골마다 집들이 들어서 있고 산비탈에는 과실나무들이 있다.

산골짝에선 맑은 물이 흘러내려온다. 그 물들은 땅을 적시고 초목을 키워준다. 주변 산천을 닮아 순박한 사람들은 깎아 놓은 밤톨처럼 매끈하진 않지만 속 깊은 마음을 은근히 전해준다.


봄이면 청도의 산비탈들은 연분홍꽃밭이 된다. 농부들은 손바닥만한 땅도 허투루 놀리지 않고 다 과실나무를 꽂아두었다. 집 근처 밭에는 감나무를 많이 심고 산비탈 밭에는 복숭아 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청도의 봄은 복숭아꽃으로 시작된다. 무릉도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청도의 봄은 복숭아꽃으로 수놓아진다.

청도의 '한재'라는 마을에선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천지가 다 미나리 향으로 덮인다. 골짝 골짝마다 하얀 비닐 온상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온상에는 겨우내 자란 미나리들이 파랗게 향을 내뿜고 있다. 청도의 깊고 맑은 물에서 자란 미나리들이 이 계절이면 제 맛을 낸다.

맑은 물로 농사 지은 청도 한재 미나리, 맛과 향이 좋습니다.
맑은 물로 농사 지은 청도 한재 미나리, 맛과 향이 좋습니다.박범이
미나리에는 독을 다스리고 피를 맑게 해주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 한 주 내내 헤매던 사람들은 주말 한때만이라도 시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피로를 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주말이면 한재 미나리 밭을 찾는 사람들로 인근 도로는 출렁인다. 청도의 청정 공기와 오염 안 된 맑은 물로 키운 미나리는 도시 사람들에겐 보약과도 같을 것이다.

미나리는 비타민 A, B1, B2, C 등이 다량으로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으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는 혈액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 미나리에는 풍부한 무기질과 섬유질이 들어 있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다. 그리고 칼로리가 거의 없어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한다.

퇴근한 남편이 미나리를 보자 반색을 한다.

"처남이 또 미나리를 보냈네. 하여튼 처남은..."

남편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은근하게 자형을 챙기는 내 동생의 뜻이 남편에게 전달이 되었나 보다.

"여보, 큰 그릇에 미나리하고 고추장만 주라. 다른 반찬 아무 것도 필요 없어. 그냥 밥하고 미나리만 주라."

옷도 채 안 벗은 채로 남편은 미나리를 찾는다. 동생이 보내 준 미나리에는 고향 청도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인정이 살아 있는 내 고향 청도가 미나리 파란 잎 속에 담겨 있었다.

청도 화악산에서 내려다본 한재 미나리 마을 모습입니다.
청도 화악산에서 내려다본 한재 미나리 마을 모습입니다.이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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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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