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뒤엔 우리나라가 있었네

[중국 장쑤성 여행기 4] 중국 땅 밟자마자 받은 문자메시지

등록 2007.03.14 10:20수정 2007.03.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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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중국엘 간다니까 주위 사람들이 농담으로 놀렸다.

"<타이타닉> 안 봤어요? 배 가라앉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타이타닉>은 안 봤지만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봤다. 초호화 유람선에 문제가 생겨 아비규환이 되는 장면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서 배에 오르자 맨 먼저 구명 장비들이 어디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선실 안에는 구명조끼를 비롯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장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3층 뱃전에는 구명보트가 여러 대 매달려 있었다. 만약 불의의 사고가 터진다면 우리는 저 보트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아는 게 병이라더니 자꾸만 영화의 한 장면들이 떠오르는 거였다. 하지만 애써 그 생각들을 지워 버렸다. 설마 이렇게 큰 배가 문제가 생기겠나,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그런 사고가 생기겠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려 버렸다.

<타이타닉> 생각나서 배 타기가 무서웠네

배를 탄 지 하루 밤 하루 낮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 밤이 깊어왔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둠 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할 일도 없다. 떠날 때 인천 국제선부두에서 사온 시사주간지는 광고 한 줄 안 빠뜨리고 다 읽어낸 터다. 배는 가는지 안 가는지 도통 아무런 기척이 없이 조용히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간다. 언제쯤 육지에 닿을까. 도대체 언제 도착한단 말인가.

불빛이 보였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먼 곳에서 까무룩히 빛이 반짝였다. 차가운 유리창에 뺨을 갖다 붙인 채 그 불빛을 따라가 봤다. 아주 아주 천천히 불빛이 다가왔다. 처음엔 불티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불티가 불씨가 되어서 온 해안가를 환하게 밝혀주는 불꽃이 되었다. 중국이다. 드디어 중국에 도착한 것이다. 인천을 떠난 지 꼭 24시간 만에 강소성 연운항에 닿은 것이다.


불빛이 보이고도 한참이 걸려서야 배가 부두에 닿았다. 사람들은 모두 출입문 가까이로 몰려들었다. 모든 일에 '만만디'라는 소문과는 달리 중국 사람들도 전부 다 출입문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중국에 들어갈 때 입경카드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검역 검사서 카드도 작성합니다.
중국에 들어갈 때 입경카드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검역 검사서 카드도 작성합니다.이승숙
배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출입국 사무소로 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 보이는 거리는 영화 세트장 같았다. 밤이 깊어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없고 차들도 없었다. 마치 SF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거리도 건물도 무미건조하게 보였다. 생명체가 하나도 없는 이름 모를 행성처럼 보였다.

중국 땅에 발을 딛자마자 핸드폰을 켜봤다. 그랬더니 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는 거였다. 열어보니 '주중한국대사관'에서 보내주는 자동 메시지였다. 중국 땅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대사관으로 연락을 하라는 문구와 함께 대사관 전화번호가 들어 있었다.

그 메시지를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우리 뒤에는 우리나라가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다 들었다.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손길이 있다는 사실에 작은 감동까지 느꼈다.

"여보, 우리 뒤에는 우리나라가 있네. 걱정할 거 없겠다 그치? 우리나라가 우릴 지켜주는데 뭐가 무섭겠어?"
"그러게. 생각지도 않았는데 감동이네."

우리 뒤엔 우리나라가 있다

순조롭게 잘 진행되던 일정이 갑자기 꼬여 버렸다. 배에서 내려 출입국 사무소를 지날 때였다. 내 여권을 체크하던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짧은 영어로 물어봤지만 그 직원도 우리도 영어가 짧아서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문 저 너머에서는 우리를 마중 나온 내 외사촌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계속 발이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약 삼십 분을 기다리자 여권을 내주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처남, 이 사람 왜 잡혀 있었던 거지?"
"응, 아마도 동명이인 중에 무슨 문제 있는 사람이 있나 봐. 그런 경우 가끔 있어. 내 친구 하나는 외국 나갈 때마다 공항에서 체크되는데 뭐. 이름이 같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아마도 무슨 문제를 일으켜서 수배 중인 사람이 있나 보지 뭐."
"어쨌든 입국 한 번 요란뻑적지근하게 했네. 중국이 당신을 특별하게 모시나 보다. 여보,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다면 기억에 남겠어? 오래오래 중국을 기억하라고 당신한테 특별 대우했나 보다."

중국은 낯선 땅이었지만 호의를 품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다. 작은 문제가 있었던 거조차도 추억거리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중국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대와 호기심을 가득 안고 중국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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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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