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신의학 아제르바이잔에 전파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10일간 해외의료봉사 활동

등록 2007.03.14 12:03수정 2007.03.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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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제르바이잔에서 펼친 양.한방 의료봉사

아제르바이잔에서 펼친 양.한방 의료봉사 ⓒ 윤병기


@BRI@'샬람' '오뜨른' '교즐레인'.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단어들일 것이다. '불의나라' 아제르바이잔어로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기다려주세요'란 뜻이다.

아제르바이잔은 구소련으로부터 1991년 5월 28일 독립한 나라로,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에 있으며, 고도 1500~1800m에 이르는 고원지대와 평균고도 900 ~1,500m의 낮은 침강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가 바쿠이며, 전체 인구의 90%가 아제르바이잔인, 2% 아르메니아인, 3% 러시아인으로 구성되었고, 공용어는 아제르바이잔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이슬람교(시아파 75%, 수니파 25%), 러시아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등 이며, 인구 1만 명당 의사 수는 37명으로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매우 부족하여 의료봉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아제르바이잔은 국경 인접국가인 아르메니아와의 6년간의 내전으로 국토가 분단되어 있는 상태로 1994년부터 휴전 중이며, 고향을 뺏긴 난민들이 이주해와 대규모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다.

"불의 나라를 가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원장 유명철)은 개원후 첫 해외의료봉사를 불의나라 아제르바이잔으로 정하고 고향을 빼앗긴 난민들을 위한 의료봉사활동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한방병원, 치과병원, 중풍뇌질환센터, 척추센터, 심장혈관센터, 소아과, 이비인후센터, 소화기센터 등에서 총 30여명의 의료진과 경희의대 및 치대 학생 10여명이 참가하는 의료봉사단(단장 김종진 교수)을 구성했다.

의료봉사단은 심전도검사기, 초음파검사기, 진단검사장비, 뇌혈류측정기, 치과장비 등을 갖추고 지난달 19일 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대 규모의 봉사인원이 참가하는 이번 봉사활동은 조정원 세계태권도협회 총재의 주선으로 아제르바이잔 태권도협회와 SE-BA 코리아 및 한화그룹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의료봉사단을 태우고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9시간의 비행후 러시아 모스크바공항에 도착, 2시간여의 환승을 기다린 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에 새벽 2시경 도착, 호텔에서 4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첫 번째 의료봉사도시인 가발라를 향해 출발했다. 장시간 비행과 긴장으로 피곤이 누적된 의료봉사팀은 가발라까지 가는 6시간 동안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면서도 낯선 언어와 낯선 문화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첫 번째 의료봉사지역인 가발라는 인구 3만 명 규모의 매우 작은 도시로 전체적인 도시 분위기는 마치 한국의 60~70년대와 매우 흡사했다.

호텔 숙소에 짐을 풀고 의료봉사준비를 위해 가발라 중앙병원에 도착한 의료봉사팀은 열악한 의료시설과 의사소통 문제로 애를 먹으며 21일 첫날 진료준비를 위한 막바지 진료준비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의 진료를 준비하며 하나둘 잠을 청했다.

21일 오전 10시 병원에 도착한 의료봉사단은 예상외로 많은 난민과 지역주민들에 놀라며 개회식을 맞았다.

진료보다 질서 유지가 먼저

아제르바이잔에 주재하고 있는 유광철 한국대사는 격려사에서 "한국에서 멀리까지 대규모 인원을 파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봉사란 인도주의 정신이 없이는 힘들다"며 봉사단 일행을 격려했다.

김종진 단장은 인사말 통해 "우리는 양ㆍ한방 및 치과 의료진 45명을 이끌고 앞으로 1주일간 가발라 및 예블락 지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히고 "봉사단원 전체가 한마음으로 뭉쳐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양국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회식을 마친 후 진료를 시작했으나, 봉사단은 혼란과 무질서로 인한 통제 불가로 진료개시부터 진료를 멈추고 난민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가까스로 질서를 잡은 봉사단은 진료과별로 정리를 다시하고 진료를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밀려드는 환자들로 눈코 뜰 새 없이 진료가 진행됐다. 봉사활동 취재를 위해 동행한 한국일보 박상준 기자와 기자까지도 동원되어 난민들의 줄을 세우고 진료과 앞에서 접수를 받는 등 부족한 일손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시작된 첫 의료봉사는 예상보다 많은 280여명의 난민과 주민들에게 진료를 실시했다. 숙소로 돌아온 봉사단은 흡사 전쟁을 치른 듯 피곤함이 밀려와 깊은 숙면에 빠져들고 있었다.

해외에 나가면 대개 그렇겠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는 역시 음식일 것이다.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 간 라면과 김치, 김 등으로 허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화물운송량 초과로 서울에 나누고 온 햇반이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했다. 하루세끼 먹는 빵은 봉사단원들을 지치게 하고 체력을 회복시키기에 부족한 영양분이었지만, 봉사단원들 모두 배고픔에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22일 새벽 6시경 시끄러운 소음에 잠에서 깨어 보니 이슬람문화권이어서 그런지 기도를 알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온 동네에 흘러나왔다.

단잠을 뒤로하고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진료를 위해 병원에 도착한 봉사팀은 다시 한번 치열한 몸싸움(?)과 바디랭귀지로 밀려든 환자들의 질서부터 잡아야 했다.

병원이 좁은 관계로 접수처와 진료실이 분리되어 있어 접수순으로 난민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힘센 청년들부터 먼저 들어오는 바람에 진료실 입구를 지키며 환자를 들여보내던 봉사단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현지 경찰까지 동원되어 질서를 유지하였으나 봉사단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밤 10시 넘어서야 숙소로...

특히 뜻하지 않은 환자들이 몰려온 것도 봉사단을 더욱 힘들게 했다, 현지 경찰과 의사들이 다른 출입구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아는 환자들을 먼저 들여보내는가 하면 자신들이 접수증을 따로 만들어 진료실로 들어오려는 바람에 진료 대기실은 더욱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후 설영돈 행정지원팀장과 윤성욱씨, 취재기자 2명, 송양섭 홍보실직원 등이 참여한 대책 회의 끝에 기자가 문앞을 지키고 진료차트에 봉사단만이 아는 비표을 만들어 들여보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부속병원 진료 파트의 심장혈관내과 김종진 교수팀과 내분비내과 정호연 교수팀에서는 가발라 지역이 석회암 지역이라 그런지 몸에 담석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예상 밖으로 많아 애를 먹기도 했다.

처음에는 '난민'이라는 특성상 정형외과 질환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외로 관절염환자가 적어 정형외과 이재훈 교수가 내과진료를 병행하여 내과 환자들을 좀 더 신속하게 진료할 수 있었다.

한방분야에서는 걱정과 달리 동양의학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뜸이나 침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일순간에 한방 환자가 몰리는 바람에 환자들은 분산시키기에 바빴다.

치과병원에서는 발치를 주목적으로 하였으나, 예상 밖의 스켈링 환자가 몰려와 난민이 아닌 경우에는 스켈링 치료를 해주지 않은 일까지 벌어졌다.

통상적으로 접수를 마감하는 5시30분경. 아직도 병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환자들을 위한 대책 회의가 벌어졌다. 회의 끝에 김종진 단장이 남아있는 모든 난민들의 진료를 실시하자고 결정, 병원 밖에서 대기중이던 난민 50여명을 다 받아들였다.

정신없이 진행된 진료 전쟁 끝에 480여명의 난민에 대한 진료를 마친 후 밤 10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돌아올 수 있었다.

a 동서신의학병원 해외의료봉사 모습

동서신의학병원 해외의료봉사 모습 ⓒ 윤병기

2차 봉사지역을 향하여

23일 가발라에서의 마지막 진료일. 오전 진료후 짐을 정리하여 예블락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봉사단의 오전 일정은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이날 진료에서는 예블락 시 직원과 병원장이 견학을 나와 전반적인 운영시스템을 배우는 등 바쁜 일정 가운데서 환자 170여명의 진료를 마쳤다.

가발라 지역 난민들과의 작별을 고하고 2차 봉사지역인 예블락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봉사단원들은 3일간 정들었던 가발라 지역을 떠나오면서 왠지 모를 아쉬움에 잠시 숙연해 지기도 했다.

버스로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예블락 지역은 인구 10만 명 정도의 도시로, 규모는 가발라보다 컸으나 가발라보다는 열악한 환경처럼 보였다.

예블락에 도착한 봉사단원들은 각자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예블락 중앙병원으로 이동하여 진료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특히 빠른 시간 안에 화장실과 세면시설을 갖추어줄 것을 요구하고 숙소로 들어와 예블락에서의 첫 진료를 기대하며 잠에 들었다.

24일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병원을 향한 봉사단원들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현지인들이 밤새 병원 2층에 화장실과 세면시설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예블락에서도 마찬가지로 봉사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프닝 세러머니를 실시하여 정상적인 진료는 12시경이나 되어 시작되었다. 난민 숫자는 가발라보다 많았으나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한 병원과 시관계자들이 사전 답사 경험을 토대로 병원 문밖에서 경찰들의 철저한 통제아래 난민증을 가진 난민들만 들여보내 진료를 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취재를 위해 동행한 기자들의 취재 활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누구 한명이라도 자기가 맡은 바 소임(?)을 다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취재기자 2명이 취재는 뒤로하고 난민들을 위한 진료 활동을 도와야 했다.

이곳의 난민들 역시 뇌성마비와 담석 환자들이 즐비했다. 25년만에 처음 의사를 만난다는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서로 끌어안고 볼을 비비는 인사를 해주었다.

특히 소아과에서는 내장이 배 밖으로 나와 있는 환자가 나타나 순간 의료진을 긴장케 했으나 현지에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추후를 기약하기로 했다.

오전 진료를 마칠 무렵 난민들을 위한 진료시간을 늘리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대신 병원으로 빵을 가져와 점심식사 시간을 줄이고 진료시간을 연장키로 했다. 이곳은 시공무원들이 직접 나서 먼 곳에 있는 난민들을 버스로 직접 병원 안으로 싣고 들어와 난민 422명의 진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난민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다음날 오전 9시부터 진료를 시작됐다. 그러나 걱정거리가 생겼다. 그동안 현지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는 오광철 사범이 통역 및 진행 총괄 업무를 맡아주었으나 갑작스러운 일로 인해 바쿠로 돌아가는 바람에 아제르바이잔 문화원 김영균 씨와 기자가 진료실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봉사 초기부터 해오던 업무인지라 긴장이 되지는 않았으나, 리더 역할을 하던 오 사범의 존재가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날 역시 점심은 병원에서 해결했다. 빵과 과일, 음료수가 나왔으나 입맛에 맞지 않아 대부분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자 봉사단은 진료실 안에서 대기하면서 점심을 못 먹은 난민들에게 남은 음식을 직접 나누어 주기도 했다.

특히 이날은 환자를 좀 더 많이 진료하겠다는 욕심에 오후 5시경 병원 밖에서 대기중이던 난민들을 다시 들여보내기로 하고 진료 전쟁에 돌입했다. 이날 하루 진료인원은 무려 582명이었다.

26일 한국을 떠나온 지 8일 지나면서 체력 고갈과 피로 누적으로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의료진을 기다리는 수많은 난민들의 눈망울을 지켜보며 보람된 진료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날 역시 점심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빵으로 때우고 남은 음식들을 따로 모아서 난민들에게 나누어 주려 했으나 뜻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예블락시 직원에 따르면 어제 병원에서 나누어준 음식을 먹은 난민들이 병원 밖을 나서며 진료실에서 식사도 제공한다는 소문을 퍼트려 이번에는 남은 음식을 현지병원 직원들에게 전부 나누어 주었다. 봉사단원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이날도 560여명의 난민들을 돌보며 예블락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새웠다.

27일, 드디어 의료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처음 예상에는 오후 1시까지 1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할 생각으로 분주히 진료를 개시했으나 밀려드는 환자로 200여명의 난민들을 치료해야 했다.

21일 진료 개시부터 27일 진료 종료까지 총 2700여명의 난민과 현지주민들의 진료를 끝마친 의료봉사단원들 개개인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그 무언가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특히 심장병 어린이 3명과 내장이 배 밖으로 나온 소아 환자를 한국으로 초청, 수술키로 결정하여 봉사단원들의 기분은 뿌듯해졌다.

아제르바이잔에 각인된 이름들

28일, 그토록 기다리던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오광철 아제르바이잔 한국대사의 초청으로 대사관저를 방문하여 쌀밥과 오이김치, 돼지불고기, 김, 닭강정 등의 한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서로 바라보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한국 음식을 먹은 다음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 봉사단의 발걸음이 더욱 든든해 졌다.

총 45명의 봉사단원들이 이국땅에서 보낸 2007년 1월은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제르바이잔 난민들에게도 아름다운 동양의 나라 대한민국과 경희동서신의학병원의 이름이 각인될 것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아제르바이잔 의료봉사단의 10박11일 일정에 참여한 분들의 이름을 적어본다.

△부속병원 = 김종진(심장혈관내과)ㆍ정호연(내분비내과)ㆍ심계식(소아과)ㆍ이재훈(정형외과) 교수, 홍석민 (경희의료원 이비인후과) 강사, 이인숙ㆍ원홍경ㆍ배소희 간호사, 장부순(진단검사)ㆍ김기열(영상의학) 기사, 오치혁ㆍ임현석ㆍ정수영ㆍ이민호ㆍ김연정 학생.

△한방병원 = 박성욱(내과)ㆍ정선용(신경정신과)ㆍ우현수(침구과) 교수, 김남은ㆍ신미연ㆍ이주희 간호사, 노영경 기사(뇌혈류측정).

△치과병원 = 김종률(보존과)ㆍ김규태(치과방사)강사, 김휘열ㆍ이현종ㆍ김진만ㆍ김승현ㆍ강경구ㆍ조수빈ㆍ김고운ㆍ김선하 학생.

△약국 = 서정혜(약사), 김동환(약대생)

△행정팀 = 설영돈(인적자원관리팀), 윤성욱(국제업무팀)

△홍보팀 = 송양섭(홍보실). 박상준(한국일보), 윤병기(의계신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의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의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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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의료계전문지 후생신보 취재기자 할동하고 있는 윤병기 기자라고 합니다. 이번에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를 제공 할까 해서 문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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