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51회

등록 2007.03.14 07:58수정 2007.03.14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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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주인은 어젯밤의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더 확인하려고 자신을 부른 것일까?

“백도가 상양현(常陽縣)의 자온후(仔瑥厚)의 아들이라 했지?”


@BRI@주인이 묻고자 하는 것은 백도에 관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요 감시 대상의 하나인 백도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해하기 힘든 아주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고, 아주 공교로워 마치 미리 계획된 일처럼 보인 백호각의 일로 해서 좀 더 치밀한 조사와 감시를 하려던 참이었다. 일접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자온후는 동림당(東林黨)에 몸담고 있었던 자로 삼년 전 의문의 피살을 당하기 전까지 상양현 상양서원(常陽書院)의 원주였습니다.”

“남은 가족은?”

“모친이 살아있기는 하나 칠순이 넘은 고령이고 남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그 뒤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형제는 없지만 상양현 내에서는 자씨 일가가 많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지내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사실 더 특별할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백도를 운중보 문하생으로 천거한 사람이 성곤이지?”

“백도는 특이하게 운중보에 들어온 인물입니다. 아마 성곤 어른께서 중원을 다니시다가 우연하게 백도를 보았고, 그의 자질이 너무 뛰어나 썩히기 아깝다고 하여 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죽은 철담에게 직접 들었던 일이라 그저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철담 역시 백도의 자질을 눈여겨보다가 운중보에 들어온 지 채 삼년이 지나기도 전에 자신의 직전 제자로 삼았다고 말한 바 있었다.

“백도는 봉(蜂)에게 맡겨 철저하게 움직임을 감시하도록 지시해. 위험을 느끼면 침(針)을 사용해도 좋다.”

특별히 이상할 일도 아니었지만 지금 백도가 보이는 태도는 확실히 이상했다. 부친의 죽음에 대해 뭔가 알아낸 것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백도는 조사해볼 시간도 알아낼 수 있는 방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부친의 상을 당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운중보를 떠나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멍청한 자식….”

갑작스럽게 혼자 말로 욕을 하는 주인을 보며 일접은 내심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신이 뭔가 조사하지 않은 부분이 있거나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일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만천의 눈치를 살폈지만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쓸모없는 놈이었어. 차라리 죽은 것이 잘 되었지.”

그제야 일접은 주인의 욕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백도의 사제인 쇄금도 유석진이었다. 백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계집을 끼고 뒹굴다 죽은 윤석진이 생각났던 모양이었다.

상만천은 원대한 야망을 꿈꾸고 있었다. 상계는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 분야에서는 더 이상 이룰 것도 없었다. 언제나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그에게 상계는 이미 흥미꺼리가 없었다. 수없는 경쟁을 물리치고 나자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도 없었고, 당분간 그런 존재도 나타나지 않을 터였다.

그의 눈이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었다. 이미 대명의 국운(國運)은 기울었고, 이름뿐인 황제는 아직 어렸다. 시기만 잘 탄다면 자신만의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는 것도 꿈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 끔찍한 꿈을 이루기 위하여 수년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윤석진을 사위로 거둬들인 것도 하나의 포석이었다. 회의 수뇌 중 하나인 철담과의 연결고리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었고, 회를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사실 윤석진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보다는 ‘요긴한 존재’였지만 그 꼴을 하다가 죽었다. 이미 철담이 죽은 다음이니 그리 아쉬워 할 일도 없었지만 만약 자신의 선택이 백도였다면 지금쯤 많은 도움이 되었을 터였다. 물론 당시로 돌아가 백도와 윤석진 중에 선택을 하라면 다시 윤석진을 선택할 것이었다. 백도는 동림당원의 아들이었고, 분명 그 아비의 죽음에는 동창과 관계있을 터였다.

최근 들어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든든한 배경이 될 철담이 죽은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철담이 밀어주고 중의가 또 한 축인 추산관 태감을 설득한다면 회를 한 손에 움켜쥐는 일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회를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쥘 수만 있다면 그 원대한 꿈을 이루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중의의 태도도 너무 소극적이야….”

그렇게 뒤를 봐주었건만 자신보다는 추산관 태감과 더 가까운 것 같았다. 겉으로는 자신에게 적극 동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그 결과는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상만천은 중의에 대한 생각을 접고 일접을 보았다.

“추태감이 오늘쯤 운중보에 들어오겠지?”

“남경(南京)에서 이곳으로 향한 지 하루 반나절이 지났으니 오늘 오후 배에는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 때까지는 아직 세시진 반의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운중보 안에서 도박판을 벌이듯 모든 것을 결판내던지, 아니면 자신의 원대한 야망을 접을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간치고는 너무 짧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 안에 결정해야 했다. 철담의 피살로 인하여 시작되어 전 중원을 뒤흔들고 있는 이번 사건은 회에는 매우 위기라 할 수 있었지만 상만천 개인에게 있어서는 기회일 수 있었다. 그가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자신의 영역을 떠나 운중보에 들어온 것은 반드시 용추의 조언 때문만은 아니었다.

‘용추가 빨리 회복되어야 할 텐데….’

잠시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느낌이었고, 그 충격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용추가 제 몫을 하지 못한다 해도 상만천은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는 터였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른 사람 좋은 일만 시키는 결과를 가져올는지 몰랐다.

“흑백쌍용(黑白雙龍)이 오늘 이곳으로 들어올 거야. 다른 사람들 이목을 끌지 말도록 주의해서 데려오도록 해.”

그 말에 일접은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은 정말 이번에 생사대적을 맞이해 필생의 승부를 보려는 것일까? 도대체 그 상대가 누구기에 흑백쌍용까지 부른 것일까?

흑백쌍용은 상만천의 측근들이라도 아는 사람이 극히 적은 존재였다. 일접도 말만 들었지 본 적이 없었다. 주인이 비밀리에 직접 키운 살귀(煞鬼)라고 들었다. 주인은 지금 불안한 것일까? 용추가 아직 회복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알겠습니다.”

“흑의와 백의를 입은 삼십대 전후의 사내들이니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게야.”

말과 함께 상만천은 손을 내저었다. 나가보라는 뜻이다. 그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질치자 상만천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을 던졌다.

“지금 바로 용추에게 가서 상세를 확인해. 움직일 수 있다면 이리로 오라 전하고…. ”

주인의 태도로 보아 일이 급박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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