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구를 위한 책인가

[서평] 장용동 외 <한국의 부촌>

등록 2007.03.14 11:15수정 2007.03.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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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촌> ⓒ 랜덤하우스

순전히 호기심에 책을 골랐다. 붉은 바탕에 상공에서 찍은 서울의 모습이 아찔하게 찍힌 사진, 그리고 책의 맨 위 귀퉁이에 찍힌 '르포'라는 단어가 유혹적이었다. 그리나 무엇보다 매혹적인 것은 붉은 바탕위에 적힌 글귀였다. 대한민국 1%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재태크 책인지, 아니면 비판의식이 번뜩이는 시사성의 글인지 표지만으로는 도무지 분간이 안 되는 이 책을 여는 순간 호기심이 출렁, 일렁였다.

책은 부촌이라 불려지는 수도권 일대의 21군데를 골라 그 지역이 부촌이 된 이유와 사람들의 성향, 생활방식, 그리고 집값의 동향을 알려준다. 부촌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부촌마다 서로 다른 환경과 개성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지은이들은 친환경 부촌과 교육부촌, 젊은 부촌, 부의 바벨탑 초고층 신흥 부촌과 같은 이름을 각각 지역에 붙여준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 책의 성격이 금방 잡혀왔기 때문이다.

살구골 7단지는 아파트 시세를 떠나서 돈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인식이 있다. 단지가 조성된 1998년 초창기에는 강남에서 내려온 이들이 많았다.(수원 영통)

이곳에서 간혹 아이가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쯤 강남으로 이사 가거나 직장의 변화 때문에 옮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수원 영통)

택지개발 당시 자녀 교육을 마친 다수의 강남 은퇴민은 물론 서울 지역에서 인구의 유입이 이뤄진 것도 토평지구의 가치를 높인 결과이기도 하다.(구리 토평)


제목만 요란한 스포츠 신문을 본 것 같은 느낌

말끝마다 강남, 강남을 반복하는 이 책은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어 아파트를 산 후 그 빚을 갚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하며 인생을 소비해버리는 한국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다. 모든 장들이 그 지역 아파트값이 어떤 경위로 오르게 되었는지와 당시 시세, 그리고 지금의 시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향후 어느 정도 오를 것이라는 암시까지 내비추고 있었다.

아마도 책을 고를 때 부촌이라 일컬어지는 지역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서적일 거라고 내심 기대했었나 보다. '르포니,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단어를 듣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저자들이 기존에 쏟아져 나온 재테크 서적들과 차별화시켜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자녀들이 결혼을 했든 안했든 서울이나 분당 등지에 따로 사는 경우가 많은데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모님을 찾는 것도 이곳 마을의 아름다운 풍속이다(용인 향린단지).

@BRI@어떤가. 나름대로 용인 향린단지의 특성을 문화적 차원에서 조망한 것 같아 보이는 말이 아닌가. 하하하, 이쯤 되면 책은 거의 개그프로그램으로 바뀐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모님을 찾는 곳이 수도권에 어디 이 지역뿐일까.

사실 이 단락은 수도권 어느 지역에도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얼마나 마을의 특성을 찾기 힘들었으면 이런 말을 써놓고 '마을의 아름다운 풍속'이라고 했을까. 사실 당연한 일이다. 모든 이들의 삶이 획일화되고 교통이 정교하게 발달한 요즘 어느 지역에서 '마을풍속'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들의 노력이 역으로 슬픈 현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재테크 서적인가 시사성 있는 르포집인가. 애초에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이 끝나갈 즈음 명쾌하게 나와 있었다. '답 : 이도 저도 아니다.' 그렇다. 이 책은 돈을 굴려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재테크 서적도 아니고, 시사성 있게 사회현상을 파헤친 책도 아니다.

그 양쪽의 성격을 조금씩 따온 애매모호한 책이다. 읽고 나면 제목만 요란한 스포츠 신문을 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리곤 이내 따라오는 궁금증. 도대체 이런 책은 어떤 사람들을 목표로 만들어졌을까.

정답 : 나같이 겉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는 어리버리한 사람들.

르포 한국의 부촌

장용동 외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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