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퍼주기'라고 비난해 왔다. 사진은 지난해 5월 26일 개성공단 신원 공장에서 북한 여성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한나라당의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가 '퍼주기'다. 보수적 관점에서 대북 쌀 지원이나 금강산 관광 대가의 현금 지급을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개성공단까지 퍼주기 범주에 넣어 문제 삼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개성공단은 남한 기업들이 북한 땅을 빌려 제품을 생산하고 그 대가로 북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고 임대료를 내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거래다.
지난해 6월 대만 정부 발표에 따르면 그 해 4월까지 대만 기업에 중국에 투자한 돈이 1500억달러다. 공식적으로는 494억달러로 알려졌지만 홍콩이나 싱가포르 기업 또는 해외 화교 등의 대 중국 투자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대만 기업이 이름을 빌려 한 것이어서 이 액수가 나왔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것을 놓고 대만이 중국에 퍼주기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대만 기업 자체가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군사적 대치상태라고 하지만 대만과 중국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중국은 수백 기의 탄도 미사일로 대만을 겨냥하고 있고 핵무기도 쓸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1700억달러의 적자를 봤다. 갈수록 막대한 군사비를 쓰고 장래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게 될 중국에 미국이 퍼준 것인가?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면 당장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 지역의 섬유업체와 부산의 신발공장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요즘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듯이 중국도 인건비가 높아지고 있고 첨단기업이 아니면 그다지 대우해주지도 않는다. 우리 기업들은 또 보따리를 싸서 베트남으로 가야할 텐데 중소기업의 활로를 개성공단에서 찾겠다는 '친 기업적'인 사고방식이 한나라당에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북한 노동자에 대한 임금 직불 등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이를 빌미로 개성공단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한나라당의 또 하나의 단골메뉴는 엄격한 상호주의다. 보수적 관점에서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상호주의를 관철시켜야 할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산가족 상봉이나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다.
한나라당은 막대하게 퍼주고 이 정도 밖에 해결하지 못 했느냐고 비난한다. 일리가 있다. 이산가족이나 국군포로·납북자들이 고령화됐기 때문에 하루빨리 대량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체제 문제가 걸린 북한이 계속 회피하기 때문에 정말 해결이 어렵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한나라당의 전신 정당들이 집권하고 있었던 1960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37년간 왜 이산가족 상봉이나 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못했는가다. 그때야말로 가족들이 흩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고 생존확률도 높았을 때인데 말이다. 되레 한나라당의 전신 정당들의 집권 시기에는 국군포로나 납북자 가족들을 연좌제에 묶어 놓기까지 했었다.
"아예 북한에 한 사람 당 1억원을 주고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데려오라"는 주장이 보수진영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이렇게 해서라도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해결할지 자못 궁금하다.
한나라당 국제 정세에 밝은가?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안보정당'임을 강조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안보 문제에 있어서만은 자신들이 가장 앞서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한나라당은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이 한미연합사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몰랐다. 전 세계 미군 재배치(GPR)에 따라 주한미군 기지가 오산·평택으로 이전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겠다는데 무조건 받지 말라고 한다. 미국 바짓가랑이를 붙들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혹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막무가내지 정책은 아니다. 더구나 1970년대 주한 미 7사단 철수 등 역사적 사례를 보면 한국이 울며불며 매달린다고 미국이 하고싶은 일을 안 한 적은 없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지만 행정수도 이전 논란 때 한나라당의 태도를 보면서 이게 과연 안보 최우선 정당인지 헷갈렸다. 다른 요인을 배제하고 오직 안보만 생각한다면 북한군 장사정포의 사거리 안에 있는 서울을 남쪽으로 옮겨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도를 옮기려고 했던 중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서울이 휴전선에서 너무 가깝다는 것이었다. 안보 우선 정당이었다면 행정 수도 이전 정도가 서울을 통째로 옮기자고 진작 주장했어야 했다.
한나라당이 진보진영 등에게 툭하면 퍼붓는 비판이 국제 정세에 무지하며 미국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지난해 유엔이 대북제재를 결의했을 때 정점에 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리 국제 정세에 밝고 미국과 긴밀하다는 한나라당은 불과 몇 달 뒤 상황이 급변할 것을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사태 반전의 기미는 아무리 늦어도 지난해 11월에 보였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종전 선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제 정세 빠꼼이'라면 최소한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2·13 합의가 나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대북 기조 변화를 얘기하는 한나라당이야말로 국제 정세에 무지한 것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자랑하는 대미 인맥이라는 게 네오콘을 비롯한 특정 정파에만 몰려있던 것 아닐까?
한나라당은 사실 대북 정책과 관련된 자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정권 때인 1991년 12월 체결된 납북기본합의서가 대표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북한 평화협정이니 종전선언이니 6·15 정상회담 정신의 충실한 이행이니 하는 번잡한 절차 거치지 말고 남북기본합의서만 제대로 발효시켜도 된다고 주장할 정도다.
이 문서가 아직 국회비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노태우 정권 때 만든 것이니 한나라당이 앞장서 남북기본합의서 국회 비준을 주도하면 정말 놀랄만한 광경이 될 것이다. 강경 반공주의자인 리처드 닉슨이 중국과 수교협상하러 베이징에 갈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나라당도 이런 충격파를 일으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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