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52회

등록 2007.03.15 08:03수정 2007.03.1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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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들.... 일을 벌였겠지?"


아침식사가 끝나도록 두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젯밤 술을 나누며 많은 대화가 오고갔기 때문에 짐작은 했다. 그렇다고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었고, 큰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이다.

"필시..."

함곡이 고개를 끄떡였다. 풍철한과 마찬가지로 함곡 역시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성공하기는 힘들었을 걸세. 그렇다고 잡히지는 않은 것 같고..."


아주 싱겁고 간단한 대답에 풍철한이 찻잔을 집어 들다가 멈추고는 빤히 함곡을 주시했다.

"왜?"


"이 친구하고는... 생각해 보게. 우리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네. 만약 두 사람이 백호각에 침입했다가 잡혔다면 지금까지 우리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겠나? 여하튼 우리 일행이고 좋든 싫든 뭔가 귀찮게 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간단한 결론이었다. 그래서 아무나 똑똑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머쓱해진 풍철한이 투덜거리듯 말을 뱉었다.

"그럼 이 자식들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거야?"

"곧 오겠지."

"그건 그렇고... 자네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실수한 것 아니야?"

"뭘 말인가?"

"설가 자식에게 운중쌍비를 준 것 말이야... 자네가 주자고 하니 뭐 귀찮은 짐 하나 덜자고 덜컥 주기는 했지만... 그 자식들 일을 벌일 것이라 뻔히 알면서..."

풍철한은 아무래도 마음이 켕기는 모양이었다. 함곡의 말대로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 잡히지는 않았다고 해도 만약 운중쌍비를 가진 것을 상대가 알았다면 문제가 커질 터였다.

"아무 일 없을 걸세. 설소협에게 운중쌍비를 준 것은 아주 잘한 일이네. 나는 어제 저녁 비로소 쇄금도가 말한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네. 자네 역시 느끼고 있겠지만 우리는 매우 위험한 곳에 들어와 있고, 점점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

상당히 조심스런 함곡의 말이었다. 풍철한 역시 느끼고 있는 터였다. 풍철한이 빙긋이 웃었다.

"아주 재미있는 말이군. 하지만 나는 죽을 수 없네. 나와 전혀 상관도 없는 곳에 와서 개죽음 한다면 그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렇다고 발버둥을 치겠다는 것은 아니네. 자네가 있는데 내가 왜 애써 머리를 굴리고 발버둥친단 말인가? 이번만큼은 그저 자네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네."

그 말에 함곡은 아주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풍철한을 빤히 쳐다보면서 표정을 살폈다. 풍철한이 불쑥 던진 말은 함곡을 내심 당혹스럽게 했다.

'이 친구가...?'

하지만 풍철한의 표정에서는 다른 어떠한 것도 발견해 낼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떠오른 직감으로 말을 했다면 다행이지만 뭔가 알고 엉뚱한 사건이라도 저지르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함곡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아니라... 설소협이네. 이렇게 생각해 보세. 지금 우리는 운중보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과 상황이라는 미로(迷路) 속에 갇혀 있네. 중간 중간 문이 가로 막혀 있고, 방향도 찾을 수 없는 형편이네. 이리저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출구(出口)를 찾을 수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막혀있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네."

지금 함곡과 풍철한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그럴듯한 비유였다. 지금까지 조사를 하면서 뭔가 안개 속에 빠진 듯한, 그리고 묵중한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었고 기껏 조사를 했다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설가 자식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단 말인가?"

"물론이네. 그는 아주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네. 하지만 그 열쇠 하나로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니네. 결국 우리는 열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에게서 열쇠를 빼앗거나 우리가 잠시라도 사용해 문을 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네."

풍철한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짜증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자네는 말을 너무 어렵게 하거나 빙빙 돌리는 버릇이 있어 나 같은 사람을 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네. 그냥 쉽게 말하게. 나는 어제 운중쌍비를 건네주는 순간부터 내 의지로 움직이려는 생각을 포기했다네."

풍철한은 확실히 어젯밤 이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건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었고, 또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헌데 갑자기 태도가 바뀐 것은 무슨 일 때문일까? 함곡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자네답지 않은 어리석은 생각이군. 어찌 그리 쉽게 포기하고 방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인가? 나야 그렇다 해도 자네는 물론 자네의 동생들의 생명도 달려있는 문제네."

"자네는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었군. 아니 내가 표현을 모호하게 했다는 것이 옳겠지. 나는 방관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네. 또한 포기한 것도 아니네. 살기 위한 방법을 찾다보니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네."

"......?"

함곡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풍철한이 짜증스런 표정을 지우며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는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누차 말했듯이 이 운중보에 들어오기 얼마 전부터 나는 완전히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네.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예측해 나를 이용하고 있단 생각을 지울 수 없네. 이런 기분을 섬뜩하다고 표현해야 하겠지?"

"자네는..."

"마저 듣게. 자네 말투를 빌려야겠군. 나는 늪에 빠져있네. 늪에서 아무리 발버둥쳐 보았자 빠져나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깊이 가라앉는 늪 말이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낫지 않겠나? 내가 완전히 잠기기 전에 사람이 지나가다 구해줄지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아니 나는 분명 나를 늪에서 건져줄 사람이 올 것이라 믿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바로 자네라고 생각하고 있네."

아주 엉뚱하고 괴상한 논리였지만 그제야 함곡은 풍철한의 말을 이해했다. 이 친구는 어젯밤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지나온 시간을 곰곰이 되씹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 바로 이것일 것이었다.

"그럼 자네는 팔짱만 끼고 내가 열쇠를 찾아 헤매는 것을 보고 있겠단 말인가?"

"아직도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군. 그래가지고 어찌 천하의 함곡이라 할 수 있는가?"

풍철한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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