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건물강이종행
지난해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경찰의 집회 금지통고에 대해 제기했던 긴급구제신청에 대해 인권위는 경찰권 발동은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고, 집회 주최자들도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집회 주최 측과 경찰이 평화적 집회 개최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 또는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평화적 집회의 진행을 담보로 하여, 경찰청장에게 원활한 집회 개최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인권위의 이런 입장은 지난 3월 10일 집회금지통고에 대해 범국본이 인권위에 다시 긴급구제신청을 하자 인권위 위원장 명의로 밝힌 '입장'을 통해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인권위의 이런 태도는 중립지대에 머물고자 하는 인권위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집회를 막는 경찰도 잘못이지만, 평화집회에 대한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집회주최측도 문제라는 양비론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인권위의 이런 태도는 정치적 의미를 가질지는 모르지만, 또는 집회주최 측과 경찰 간의 팽팽한 대결에 인권위를 끼워 넣지 않게 한 효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을 위해서는 참으로 고약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행사하기 위해 사전에 양해각서나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이른바 '평화'를 약속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집회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고, 집회 주최 측이 평화를 깨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그만이다.
평화집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자의적 판단만으로 집회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경찰의 태도는 분명한 위헌이며 반인권인데도 인권위는 두루뭉술한 양비론적 태도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데 묶어 양 당사자가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한 결과 또는 인권문제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부족이라고밖에 달리 평가할 것이 없다.
거듭되는 '하품'나는 권고
최근 발표한 전의경 인권문제에 대한 권고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의 헌법재판소가 지녔던 인권감수성에도 한참 뒤떨어진 하품 나오는 소리들만 잔뜩 늘어놓은 것이다. 전의경제도 폐지 결정 이후 나온 뒷북치기도 웃기지만, 전의경제도를 가능하게 한 전투경찰대설치법의 반인권성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연차적으로 전의경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생길 수 있는 전의경의 과도한 근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권고가 쏟아지지만 구체적인 인권현실의 개선과 별 상관없는 그저 고상한 단어의 나열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인권위가 일을 풀어가는 꼴이 이렇다. 인권의 파수꾼을 자처하지만, 눈치 보기를 통한 어정쩡한 중립지대 안착이 결국은 종착지가 되고 만다.
여러 인권교과서들은 인권의 개념을 설명하며 "…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나이, 피부색, 종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은 원칙에 기반할 때만 그 효력을 담보할 수 있다. 정치적 입장이나 조직의 위상 따위에 인권의 원칙이 휘둘릴 때, 인권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곧 인권위가 설자리가 없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오창익 국장은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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