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중복장애인을 아시나요

시청각중복장애인 교육과 재활 국제세미나에 다녀와서

등록 2007.03.16 12:58수정 2007.03.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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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시청각중복장애인 교육과 재활 국제세미나.
2007년 3월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시청각중복장애인 교육과 재활 국제세미나.국은정

한국은 복지 선진국 대열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일까? 3월 15일 오후 2시 국회 도서관 강당은 300여명분의 객석이 모자랄 만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시청각중복장애인 국제세미나를 보기 위해서다.

@BRI@하지만 예상대로 비장애인보다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이 한국의 복지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구청 지원을 받아 매년 열리는 동제가 오로지 노인들의 동네잔치가 돼버린 것처럼, 장애인 당사자들과 그들을 안내하기 위해 시간을 쪼갠 도우미와 복지사 등을 빼놓으면 순수한 관심 때문에 찾아온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에선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한낮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인가? 말하는 사람도 장애인, 들어주는 사람도 장애인!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줄 비장애인들은 정말로 찾아보기 힘든 것이 한국 복지의 씁쓸한 현주소인 셈이다.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온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매일 싸우기에 바쁜 여당과 야당이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기쁘다”며 “국가와 사회가 소외계층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내빈으로 참석한 전재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역시 정부의 무관심을 꼬집었지만, “아파본 사람이 아파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며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과 장향숙 열린우린당 의원이 공동으로 세미나를 주최하는 모습이 반갑고도 고맙다고 전했다.

인사말과 축사를 전해 들으면서도 언제까지 아픈 자들만 계속 아프게 내버려 둘 것이냐고 아무도 묻지 못했다. 결국 다시 아픈 자들의 몫으로 남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세미나 공동주최자인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왼쪽)과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
세미나 공동주최자인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왼쪽)과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국은정

나사렛대학교와 함께 이번 행사를 주최한 정화원 의원은 “그나마 이번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때문에 가능했다, 장애인 운동이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더 단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인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며 “그야말로 ‘병신육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향숙 의원도 한국의 복지현실을 개탄했다. 또한 장애인 중에서도 더 소외된 장애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절감하게 됐다며 “이번 세미나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인프라 구축의 시초가 되고 좋은 배움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자가 누가 있을까? 발제자로 나온 10여명의 관련 학자들 중에는 시청각장애인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 쓰다 버린 논문을 그대로 짜깁기한 것 같은 참으로 어설픈 연구실적을 발표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학자에게 학문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학문 역시 ‘죽은 자의 외침’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은 출발 단계이기 때문에 겪는 시행착오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물론 그중에는 시청각장애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준 발제자도 있었다. 진정한 학자의 면모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학문도 아니고 복지 관련 학문이기에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애정과 관심은 당연히 연구 과정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미나에서 나온 긍정적인 제언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무엇보다 시청각장애인 실태조사가 우선돼야 한다. 중복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무지와 무관심이 여전히 이 땅에 존재할 수많은 시청각장애인들을 세상으로 불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독자적인 단체가 필요하다. 권익을 옹호할 수 있는 당사자 중심의 협회 추진도 필요하다는 논의도 이뤄졌다.

마지막으로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특성화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들의 장애 특성에 맞춰 교육을 전담할 수 있는 교육기관 설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시청각장애인의 교육이나 취업은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교수와 그의 점화 통역을 맡은 아내(가운데).
일본의 후쿠시마 교수와 그의 점화 통역을 맡은 아내(가운데).국은정

이밖에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도울 수 있는 일명 ‘점화’(손가락으로 점자를 손등에 찍어 의사를 소통하는 방식) 교육, ‘한소네’ 같은 점자단말기 등 기자재의 보급 등을 꼽을 수 있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무수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 천부인권마저 탐욕을 위해 독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가장 약자인 그들을 내세워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파렴치한들이 장애인을 사이에 두고 이권다툼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 잔인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복지강대국으로 가는 길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무수한 가시에 찔리면서 가야하는 험난한 길이다. 세미나를 참관하고 돌아오면서 ‘아픈 가시에 찔릴 준비를 하고 그 길에 동참하는 순수한 영혼들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부디 자신의 명예나 직위, 사욕 따위 때문에 양심까지 팔아먹는 위선자들이 나타나 이들의 눈과 귀를 더 아프게 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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