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돌아가는 훌라후프가 어딨어요?"

훌라후프 통해 최선을 다하는 법을 배우다

등록 2007.03.16 14:22수정 2007.03.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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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얘 러닝 맞는 거 좀 사 줘. 러닝이 배 위로 올라오잖아."
"그게 제일 큰 거예요."


언젠가 아버지께서 내가 입은 러닝이 배 위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었다. 당연히 아버지는 러닝이 작은 탓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어머니께 '왜 이런 작은 것을 사주었냐'며 핀잔을 주셨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하신 답변은 아버지뿐 아니라 내게도 대단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게 제일 큰 거예요!"

제일 큰 사이즈를 입었는데도 러닝이 작아서 배 위로 올라오다니! 배가 너무 나와 런닝이 배를 다 가리지 못한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도 꽤 충격적이셨는지 그 후 배드민턴 등을 같이 하면서 살을 빼라는 압박을 가해오셨다. 그리고 그 압박의 결정체는 바로 훌라후프였다.

"너 훌라후프 사오면 정말 잘 할 거냐?"
"네."

중·고등학교 때 무언가 홀린 듯 농구 했던 것을 제외하면 운동을 즐긴 적이 없었던 나이기에 그리 내키는 제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내게도 있었기에 훌라후프를 한 번 열심히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버지께서 사 오신 훌라후프는 지압용 훌라후프였다. 그것이 후에 고통스러울지는 꿈에도 몰랐다.


일단 사오셨으니 돌리기는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운동 신경 50% 미만인 내게 10개 이상 돌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도 있고, 금방 포기하기도 뭐해서 계속해서 돌리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10개가 100개가 되고 100개가 500개가 되면서 나중에는 세기도 힘들 만큼 잘 돌렸다.

a 중국에서 산 훌라후프

중국에서 산 훌라후프 ⓒ 양중모

문제는 지압용 훌라후프라 돌릴 때마다 배에 돌기가 부딪혀서 아팠다는 것이다. 결국 며칠 후 배를 살펴보니 멍까지 들어 있었다. 그 아픔을 견뎌내는 것이 한동안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계속 하다 보니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난 훌라후프를 돌리는 데에 관해서는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몸은 살찌고 둔해도 훌라후프는 잘 돌린다고.


이번 설날에 한국에 나갔다가 다시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집에 있던 훌라후프를 안 가져온 것도 그런 자신감의 결과였다. 중국에서 사기가 아까워 집에 있는 훌라후프를 가져가려 했으나 그 얼마나 번잡하던가. 중국에서도 비슷한 훌라후프를 팔 테니 하나 사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내 판단 착오였다!

유명 할인 매장 등에 가보았으나 집에 있던 것과 같은 훌라후프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알록달록 예쁘고 가벼운 훌라후프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 있던 것과 달라 다소 마음에 걸렸으나 이쯤을 못 돌릴까. 훌라후프만큼은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부했기에 당당히 그 훌라후프를 사서 돌아왔다.

그러나 웬 걸. 잘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3번을 못 넘기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돌려보라고 권해 보았다. 역시나 못 돌린다! 그래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던 것이다. 훌라후프가 잘못 설계되어 제대로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안 돌아가는 게 어디 있어요? 못 돌리는 거지."
"그럼 돌려볼래요? 돌아가는지 안 돌아가는지? 해보라고요!"

한참 훌라후프 탓을 하는데 누군가가 안 돌아가는 훌라후프가 어디 있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화가 나서 막 쏘아붙여 주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아무리 중국 거라지만 안 돌아가는 훌라후프를 팔 리가 있나? 그러다 어떤 자기 계발서에 인용한 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명언이 떠올랐다.

"해보기나 했어?"

그렇다. 채 10번도 해보지 않고 포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설계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훌라후프라고 단정 지어 버린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주 잘 돌렸던 집에 있던 훌라후프도 처음에는 10개도 못 돌렸다. 그런데 지금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체력만 된다면 돌릴 수 있는 까닭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돌리는 법을 알아낸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다시 결심했다. 새로 산 훌라후프를 적어도 30분 동안 끊임없이 돌려보자고. 1분 2분이 지나고 5분 10분이 지나도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10번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아주 조금씩의 변화는 있었다. 2번이 3번이 되고 3번이 7번이 되는 등. 20분 정도 지나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깟 훌라후프에게 진단 말인가!

훌라후프가 다시 떨어지려고 할 때쯤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허리를 광속(?)의 스피드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예전 훌라후프처럼 균형을 잡고 보다 잘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처음 목표했던 100개를 채우고 400개를 넘겼다. 전에 쓰던 것보다 가벼워서 돌리는 것이 훨씬 어려웠지만 돌아가지 않는 훌라후프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때 난 내 결심에 상당히 만족했다. 사실 어떻게든 전에 쓰던 훌라후프와 비슷한 것을 살 생각도 해보았으나 정말 도저히 돌릴 수 없다고 생각 될 때까지 돌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사자고 결심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심에 큰 도움을 준 것이 최근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읽은 자기 계발서들이었다.

비록 훌라후프를 돌리는 작은 일었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는 정신을 부끄러워 하라는 책들의 조언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작은 성공에 대한 경험이 결국은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힘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무언가를 간절히 하고 싶은데 이루지 못한다면 이 훌라후프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세상에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게 아니라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하지 못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좀 우습지만 이 공간을 빌려 훌라후프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훌라후프야! 내게 쉽게 포기하는 대신 최선을 다해 도전하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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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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