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박물관 평가, 저녁 땐 차마 못가

세계최초 사립박물관 연구서 낸 최병식 교수

등록 2007.03.16 17:12수정 2007.03.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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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사립박물관 연구조사서를 낸 최병식교수
국내 최초 사립박물관 연구조사서를 낸 최병식교수김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한 해 대략 800만 정도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박물관 관람객 수는 그 두 배인 1600만을 훌쩍 넘긴다. 이유인즉, 전국 각지에 산재한 사립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놀랍게도 두 국가기관의 관람객 수를 상회할 정도인 것이다.

사립박물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박물관 건립과 운영에 투자한 금액만 1조 2천억원에 달하는 놀라운 사실도 밝혀졌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다.


사립박물관협회(회장 전보삼)가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로 사립박물관에 대한 본격 연구조사작업에 착수하여 1년 여만에 결실로써 드러난 많은 사실들이 박물관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사립박물관이 이와 같은 유래없는 학술조사에 착수한 것은 수치상으로 드러나듯이 국내 문화저변에 자리잡은 사립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통일적인 정책이 없다는 까닭이다.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박물관협회 자체는 물론이고 나아가 정부 사립박물관 정책에도 적극적인 바탕자료로 제시하기 위한 것.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역사는 아직 일천한 단계이다. 본격적으로 사립박물관이 등장한 것은 불과 20 여년에 불과하기에 정부나 시민사회의 인식도 낮고 박물관 자체들도 스스로의 입지를 정리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1조2천억원의 투자는 국가기간산업으로 봐야 한다. 비록 이 금액이 200개관에 분산되어 있기는 하나 그것들이 국가기간망이 닿지 않는 곳까지 퍼져 있는 점들을 감안한다면 사립박물관에 대한 정부정책은 분명 커다란 변화를 가져와야만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전국 사립박물관 실태조사 및 학술연구서를 펴낸 경희대 최병식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사립박물관이 안고 있는 문제와 향후 개선책을 알아봤다.


최 교수가 이번 연구에 착수하게 된 것은 몇 해전부터 사립박물관 복권기금 평가단장을 맡은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사립박물관협회 회장이었던 인병선 관장(짚풀생활사박물관) 등과 연구에 대해 논의하다가 신임 협회장부터 본격화된 것. 보통 이런 연구조사는 정부기금을 받아서 하는 것이 상례이나 협회는 회원들로부터 받은 회비를 모아 연구비를 충당한 점도 이채롭다.

연구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현재 총 200여 관이 등록되어 있으며, 정부나 지자체에 등록되지 않은 수까지 합하면 430개에 달한다. 물론 이 정도 박물관수는 정확한 통계치 확인은 이 연구에서도 하지 못했지만 OECD국가 중 하위에 속하는 것이라는 것이 협회측 예측이다.


미국의 유명한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한 개인의 기념전시실에서 출발한 것을 생각한다면, 늘어나는 사립박물관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지원은 문화산업화시대의 꼭 필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

14일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사립박물관협회 전보삼 회장과 최병식 교수를 만났다. 연구서는 445쪽 분량으로 미술관 을 포함하여 등록된 사립박물관 200여 관 중에서 74관을 집중연구했다. 구수한 남도 말씨에 달변의 최병식 교수는 원래는 미술평론가로 박물관보다 미술관에 더 가까웠으나 이번 연구로 인해 사립박물관 연구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최 교수가 이번 연구조사를 통해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점은 사립박물관에 대한 정부의 선택과 집중의 지원정책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복권기금 평가단장 시절 일정에 따라 저녁 무렵 박물관을 찾게 되면 차마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립박물관장들의 딱한 사정을 듣는 통에 그후로는 꼭 아침이나 낮에만 찾았다는 일화를 털어놓는 최 교수는 연구가의 모습보다 어려움을 겪는 사립박물관의 심정이 전이된 듯 싶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등 총 7개국, 5개 언어권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 대한 포괄적이고 명확한 박물관 정책을 피력하였다.

전보삼 사립박물관협회장과 최병식 교수. 사립박물관 연구서에 대해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전보삼 사립박물관협회장과 최병식 교수. 사립박물관 연구서에 대해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김기

연구를 수행하면서 최교수팀이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세계적으로 사립박물관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박물관이라는 커다란 이름에 억눌려 민간이 사재를 털어 운영하는 사립박물관은 그 의의가 큼에도 국제적으로 아직 사립박물관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음을 반영하는 현상이었다.

또한 국내적으로도 최교수의 말을 옮기자면 “한국사립박물관협회는 한국박물관문화의 진흥은 물론 사립박물관들이 현실적으로 한국문화진흥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의미부여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정체성 확립을 추구”하고자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 연구착수는 1년이지만 3년에 걸친 기초조사가 이루어진 셈인 이번 연구를 통해 최교수가 이룬 성과는 최초의 사립박물관 연구라는 점과 더불어 사립박물관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문화적 영향에 대해 수치화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립박물관이 설립 및 운영에 지난 20 여년 투자한 금액도 그렇거니와 연간 8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까닭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이런 문화적 인프라를 통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박물관 자체의 의식과 정부 정책이 부재하다는 점은 대단히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음을 강조했다.

사립박물관이 처음부터 박물관을 목적으로 세워진 경우는 흔치 않다. 현장에서 사립박물관의 낡은 서랍 속까지 들여다본 최 교수도 그런 점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개인적 소장욕구나 학문적 수집 그리고 민족의식 등으로 사립박물관들 대게는 출발함을 그는 제기했다.

그러다가 차차 수집품의 수와 규모가 증가하면서 박물관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사재를 몽땅 털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가족의 반대 등으로 불행을 겪게 되는 일도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사립박물관들이 그런 것이라 볼 수는 없지만 여하튼 대부분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대단히 미미한 것이 현재 사립박물관이 처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재산을 보유했다가도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처분하게 되고, 몇 년은 학예사 등 직원을 채용해서 꾸려나가다가 운영난에 봉착하게 돼서 결국에는 관장 혼자서 모든 박물관 업무를 도맡는 현상은 사립박물관들의 전반적인 경향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미한 정부지원도 전체 430 여관에 고루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방시설, 학예사 등을 갖춘 등록박물관에 국한되어 있어 불합리한 요소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교수가 분석한 다른 나라 사립박물관 등록요건과 우리나라는 사뭇 달라서 정부나 지자체가 가진 사립박물관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등의 경우, 사립박물관 등록요건에 소방시설 및 학예사 자격자의 요구가 없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사립박물관들은 등록에 부담을 떠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등록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를 가졌다가 막상 등록 후에 이렇다 할 정부지원이 없어 낙심한 박물관들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최 교수는 등록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한편 철저한 평가를 통해 지원을 차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선택과 집중은 결국 시민사회에 박물관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기부문화의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동법 관련해서 고발당하지 않은 관장이 얼마나 될까요?” 하고 난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최 교수의 말에서 우리나라 사립박물관들이 겪고 있는 운영의 어려움은 단적으로 느껴졌다. 박물관은 인건비와 운영비 외에도 박물관 발전을 위해 유물구입비가 필수적으로 필요하지만 관장의 개인적 재정이 고갈되면 더 이상 그런 운영 및 발전의 기대는 불가능해진다.

결국 관장 1인의 개점휴업의 박물관이 늘게 되고, 그런 현상이 깊어지면 박물관 인프라는 효율을 잃고 마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자발적 투자로 형성된 1조원 이상의 인프라를 그렇게 방치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 분명하다.

이런 사립박물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행스럽게도 몇 년 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이 사립박물관협력망사업을 통해 노력하고 있고, 그 일이 작년 문화부 우수혁신사례로 선정됐지만 오히려 예산은 준 기이한 결과를 보이고 있어 정부의 박물관에 대한 인식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정책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책대상에 대해서 정확히 안 이후에 정책과 법을 만들어야 한다. 사립박물관과 관련한 정부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립박물과협회의 의견청취 한번 없이 만들어진 정책이 제대로 된 것으로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정책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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