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전을 보고 왔다. 뭐 딱히 미술에 대해 지식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에 대한 갈망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휘날리는 휘장이나, 광고문구를 보면 맘이 자연스레 그 쪽으로 이동하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 난 마그리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로 박물관을 찾았다. 입장료 만 원. 카드할인으로 천 원을 할인받았다.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대가라고 한다. 벨기에에서 태어났으며, 파리에 거주하다가 다시 벨기에로 돌아갔다.
초현실주의가 무엇인지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라고 나와 있고, 미술사조로 보면 입체주의(Cubism)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현실 그대로보다는 상상과 꿈의 세계를 맘대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대충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전시관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한국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어서 한편 흐뭇하면서도, 많은 공간이 더 없다는 것에는 좀 씁쓸했다. 그래서 좀 시끄럽고 더웠지만, 참고 무사히 관람을 할 수가 있었다.
미술 관람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체력전이다. 쉬어가면서 몸과 눈을 편안하게 해주고, 물도 마셔가면서 천천히 음미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림은 한번 보고는 힘들다. 가능하다면 두 바퀴 정도는 돌면서 그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 언뜻 보아서는 비정상적인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이게 초현실주의인가?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운동선수라는 그림은 공을 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그려져 있고,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림에 사람이 보인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그 그림을 그린 의도와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몇 시간으로 그 작가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내 나름 그 사람이 내 맘속에 자리를 잡고,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게 된 것은 하나의 좋은 사건이었다. 죽은 마그리트와 내가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현실은 가끔 우리에게 너무 버겁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꾸고 현실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그도 힘들 때면 아예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그러한 생각들은 뒤틀린 사물상을 부각시키게 마련이다. 이러한 뒤틀림을 묘하게 찾아내 그려주는 마그리트가 때론 시원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에서야 난 그의 그림의 묘미를 찾았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요즘같이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대에서야 이러한 이미지는 더욱 그 메세지가 강렬하다. 주식투자 모임이니, 부동산 모임이니 돈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돈을 가치있게 쓰는 것도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주말엔 한번쯤 바람도 쐴 겸 박물관에도 한번 가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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