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정치활동 참여는 당연한 권리죠"

[인터뷰] 민주노동당 당원이자 '다함께' 회원으로 활동하는 한 대학생

등록 2007.03.17 10:33수정 2008.08.2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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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3월 미국 보스턴 인근의 웰즐리 대학교에서 어느 학생대표의 말이 당시 재학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국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된다. 이 연설의 주인공은 바로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후보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다.

 

힐러리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우들과의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학생회 활동을 하던 중 발생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사망사건은 보수적이었던 그의 생각을 바꾸며, 정치와 사회문제 참여에 본격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 후 그는 민주당 당원으로 입당하게 된다.

 

힐러리는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에서 "웰즐리 대학시절의 정치활동은 나에게 즐거운 일이었으며 민주적 사고의 밑거름을 제공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2007년 한국의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대한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기 위해서 학교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거나 원천봉쇄당하는 고초를 겪고 있다.

 

지난 3월 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와 같은 대학생 정치활동 제한·금지 학칙에 대해 "헌법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등이 정한 사상과 양심,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며 해당학교와 교육인적자원부에 시정권고를 내렸다.

 

그렇지만 일선 대학과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의 중립성과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학칙에 명시된 규제조항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대학생 정치활동' 허용 문제가 캠퍼스를 벗어나 사회적인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금, 현재 대학생으로서 민주노동당 청년당원이자 대표적 반전·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 단체인 '다함께' 회원활동을 겸하고 있는 최 아무개(26· 대학생)씨를 만나 캠퍼스 내 정치활동 제한 실태와 대학생 정치참여의 의미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들어보았다.

 

진보적 학생단체 활동만 제재, 학교 측의 이중잣대는 문제"

 

그가 정치활동을 처음 결심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미국 부시 정부가 벌인 이라크 전쟁에 대해 부당한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최씨는 광화문에서 열린 파병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국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분 없는 파병을 결심한 참여정부에 배신과 분노를 느껴서다.

 

이 집회에서 그는 '다함께'란 신문을 접하게 되었고 그동안 궁금했던 이라크 전쟁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다함께'의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고 민주노동당 당원활동도 시작했다.

 

현재 최씨는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을 맡으면서 교내에서 정치모임 결성을 준비하고 있으며 총선 등 선거 때가 되면 민주노동당 지지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학교 측의 시선이 곱지 않고, 구체적인 정치활동 금지조항은 없지만 포괄적인 학생활동제한 조항이 학칙에 명시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는 "혹시라도 학교 측과 마찰이 생길 경우 처벌될 여지가 남아 있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가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양호한 편"이라면서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고려대에서 '다함께' 주최로 열린 '진보적 대학생이 알아야 할 9가지 주제'란 강연회의 악몽을 떠올렸다.

 

다함께 회원으로 이 행사에 참여한 최씨는 "애초에 학교 측에서 행사를 허락했지만 돌연 일주일 전에 '외부단체의 행사'란 이유만으로 불허 방침을 통보했고, 주최 측에서 예정된 행사를 강행하자 행사진행을 위해 필요한 전기와 난방의 공급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더 황당해했던 것은 비슷한 시기에 조금 먼저 열린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란 보수성향의 외부단체 강연회는 학교 측의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진행된 부분이었다.

 

최씨는 고려대 사건을 포함해 대학생 정치활동 제한에 대한 학교 측의 '이중 잣대' 문제를 지적했다. 즉 진보적인 학생단체의 학술강연회나 행사 등 정치활동은 종종 학교 측의 압력으로 불허되거나 제재를 받기 십상이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수성향이 있는 학생단체의 정치활동에는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선 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학생 정치활동 제한 혹은 금지' 학칙의 표적이 주로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는 학생단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진보적인 학생단체의 정치활동은 '등록금 운동', '재단비리 폭로' 등 학교 당국의 입장과 대치될 수 있는 안건들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학생들의 정당한 권리 찾기 목소리를 외면하고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를 제한하고 있는 일선 학교당국의 태도를 비판했다.

 

"정치활동 참여는 내 권리 찾기 운동"

 

또한 정치적 중립성 문제와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한 이유로 대학생 정치활동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면서 그 정당성 및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는 학교 측의 논리를 반박했다. 그는 "대학이란 공간은 사회와 동떨어진 공간일 수 없으며 대학생들도 사회적인 문제와 정치에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들었다.

 

"요즘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정규직 채용비율을 확대하고 있어요.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는 우리도 졸업 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고, 얼마 전 졸속으로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법안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죠."

 

그는 "다시 말해 대학생의 정치활동 참여는 언젠가, 그리고 지금 당장 자신에게 다가올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대안을 마련해 목소리를 내는 권리 찾기 운동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작 중립성이 요구되는 쪽은 학교 당국"이라며 "특정 종파의 교리나 정치적인 입장을 '필수이수과목'을 통해 강요하는 그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더 나은 활동을 위해서는 그동안의 대학생 정치활동에 대한 반성과 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체적인 학생운동이 가지는 의미에는 문제가 없다고 봐요. 다만 일선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운동 방식 등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만의 방식, 자신들만의 목소리에만 집착해 다양한 학생들의 목소리를 잘 담아 내지 못하고 그동안 자폐증에 빠져 왔거든요. 이제는 더 많은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학생운동문화가 캠퍼스 내에서 공감대를 얻어야 합니다."

 

준비된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지갑 한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내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바로 '민주노동당 당원증'이었다.

 

최씨는 "그동안 대학생 신분으로 정치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은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주변의 격려가 활동을 하는데 많은 힘이 되었고 보람을 갖게 해주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학생들에게 공감대를 얻고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정치활동'을 열심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더는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불온한 학생', '골치 아픈 학생'으로 취급받지 않고 민주적인 자질 습득과 사회문제에 대한 정당한 권리 찾기 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7.03.17 10:33ⓒ 2008 OhmyNews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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