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 너머로 남해 바다가 펼쳐집니다. 섬들은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처럼 숨었다 나타났다 합니다.이승숙
특별히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부처님을 섬기는 나는 절에 가는 걸 좋아한다. 대웅전의 부처님을 보고 난 뒤에 꼭 '삼성각'을 찾아가는 게 내 절 나들이의 순서다. 호랑이를 옆에 두고 앉아 있는 수염 허연 산신령님을 보면 마치 어릴 때 보았던 동네의 할아버지 같았다.
삼성각은 절의 뒤쪽에 있기 때문에 찾는 이가 별로 없다. 향에 불을 사르고 조용히 앉아 있다 보면 잠이 소르르 오기도 했다. 벽에 기대어서 잠깐 쉬었는데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한숨 자고 나면 온 몸이 개운했다.
작년에 딸애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할 때 자주 절에 갔다.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면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절만 해도 내 콧등은 시큰거렸고 콧물과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작년 한 해를 부처님 덕분에 마음을 다스리며 잘 보낼 수 있었다.
딸 위해서 했던 절 나들이, 아들 위해서도 하리라
올해도 우리 집엔 수험생이 있다. 바로 아들놈이 고3 수험생 자리를 물려받았다. 딸을 위해서 해준 거라면 절집 찾아간 거밖에 없었던 나는 아들을 위해서도 역시 절을 찾아갈 것이다. 아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절을 찾아갈 생각이다.
남해 보리암은 소위 '기도발'이 잘 먹기로 유명한 곳이다. 전국에서 소문난 기도처가 세 곳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경남 남해군의 보리암인 것이다.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경북 청도군 운문사의 사리암, 그리고 경남 남해의 보리암이 소문난 3대 기도처이다.
보문사는 강화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석모도에 있기 때문에 쉽게 가볼 수 있었다. 운문사 사리암도 친정 가는 길에 다녀왔다. 하지만 남해 보리암은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 딸은 원서를 낸 세 군데 대학 중에서 두 군데만 합격하고 한 곳은 떨어지고 말았다.
"보리암도 갔다 왔으면 세 군데 다 붙었을 텐데 못 가서 두 군데만 붙었나 보다. 우리 이번에 아들 위해서 보리암 갔다 오자. 누나까지 세 명이 가면 부처님이 더 생각해 주실지 모르잖아."
남편이 우스개처럼 말했다. 진짜로 그리 된다면 어딘들 못 가겠는가.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다 똑같을 것이다. 자녀가 잘 된다면 뭘 못 하겠는가. '그래 아들아, 너를 위해 우리가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