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를 위해 우리가 간다"

기도처로 소문난 경남 남해 보리암

등록 2007.03.19 13:56수정 2007.03.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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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이 흐뭇한 미소를 입 가에 담고 우리를 지켜 보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이 흐뭇한 미소를 입 가에 담고 우리를 지켜 보십니다이승숙
설을 쇠러 시댁이 있는 경북 의성에 다녀온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또 경상도 갈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길이 더 멀다. 경남 사천까지 가야 한다. 사천에 살고 있는 막내 시동생의 둘째 아들이 첫 돌을 맞게 되어서 시댁 식구들이 다 모이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가야 할 자리이지만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사천이 어디인가. '진주라 천리 길'이라는 진주보다 더 먼 곳이 사천이 아니던가. 그 먼 곳을 다녀올 생각을 하니 솔직한 말로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인데 큰엄마 큰아빠가 가서 힘차게 축하해줘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지도를 펼쳐놓고 갈 길을 모색해 봤다.

진주라 천리 길이라는데 그기까지 어찌 갈꼬?

우리가 사는 강화도에서 경남 사천까지 가는 길을 눈으로 훑어보니 정말이지 끝에서 끝이었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대전까지 가서 또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를 달려서 끝까지 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기름 값과 고속도로 통행료만 해도 수월찮게 나올 것 같았다.

장거리 운전이 부담이 되어서 비행기로 갈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우리 부부 왕복 비행기 삯도 만만찮을 것 같았다. 설 쇠느라 가정 경제에 주름이 졌는데 또 몫 돈을 써야 하니 어떡하든 경비를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며 머리를 짜봤다.

그러던 차에 반짝하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왕 가는 길에 봄나들이 삼아 가 보자. 멀어서 못 갔던 남해 보리암을 이번 기회에 가보자라는 생각이 번뜩 났다. 딸아이도 데리고 가면 오붓하고 정겨운 가족 여행이 될 거 같았다.


절집 너머로 남해 바다가 펼쳐집니다. 섬들은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처럼 숨었다 나타났다 합니다.
절집 너머로 남해 바다가 펼쳐집니다. 섬들은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처럼 숨었다 나타났다 합니다.이승숙
특별히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부처님을 섬기는 나는 절에 가는 걸 좋아한다. 대웅전의 부처님을 보고 난 뒤에 꼭 '삼성각'을 찾아가는 게 내 절 나들이의 순서다. 호랑이를 옆에 두고 앉아 있는 수염 허연 산신령님을 보면 마치 어릴 때 보았던 동네의 할아버지 같았다.

삼성각은 절의 뒤쪽에 있기 때문에 찾는 이가 별로 없다. 향에 불을 사르고 조용히 앉아 있다 보면 잠이 소르르 오기도 했다. 벽에 기대어서 잠깐 쉬었는데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한숨 자고 나면 온 몸이 개운했다.


작년에 딸애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할 때 자주 절에 갔다.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면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절만 해도 내 콧등은 시큰거렸고 콧물과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작년 한 해를 부처님 덕분에 마음을 다스리며 잘 보낼 수 있었다.

딸 위해서 했던 절 나들이, 아들 위해서도 하리라

올해도 우리 집엔 수험생이 있다. 바로 아들놈이 고3 수험생 자리를 물려받았다. 딸을 위해서 해준 거라면 절집 찾아간 거밖에 없었던 나는 아들을 위해서도 역시 절을 찾아갈 것이다. 아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절을 찾아갈 생각이다.

남해 보리암은 소위 '기도발'이 잘 먹기로 유명한 곳이다. 전국에서 소문난 기도처가 세 곳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경남 남해군의 보리암인 것이다.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경북 청도군 운문사의 사리암, 그리고 경남 남해의 보리암이 소문난 3대 기도처이다.

보문사는 강화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석모도에 있기 때문에 쉽게 가볼 수 있었다. 운문사 사리암도 친정 가는 길에 다녀왔다. 하지만 남해 보리암은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 딸은 원서를 낸 세 군데 대학 중에서 두 군데만 합격하고 한 곳은 떨어지고 말았다.

"보리암도 갔다 왔으면 세 군데 다 붙었을 텐데 못 가서 두 군데만 붙었나 보다. 우리 이번에 아들 위해서 보리암 갔다 오자. 누나까지 세 명이 가면 부처님이 더 생각해 주실지 모르잖아."

남편이 우스개처럼 말했다. 진짜로 그리 된다면 어딘들 못 가겠는가.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다 똑같을 것이다. 자녀가 잘 된다면 뭘 못 하겠는가. '그래 아들아, 너를 위해 우리가 가마.'

바다를 가슴에 안은 섬들이 살갑게 다가옵니다.
바다를 가슴에 안은 섬들이 살갑게 다가옵니다.이승숙
진주를 지나 남해 쪽으로 길을 잡아 갔다. 차창 밖은 북쪽과는 확연히 달랐다. 벌써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남해 마늘이 유명하다더니 논에는 마늘이 제법 자라 있었다.

"이야, 확실히 남쪽은 남쪽이네. 저기 저 마늘 좀 봐. 논 마늘이라서 빨리 자라나 보다."

마늘로 유명한 의성 사람 아니랄까봐 남편 눈에는 마늘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남해대교를 지나 드디어 남해 섬으로 들어갔다.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었으니 남해도 이제 더는 섬이 아니다. 강화도 사람들이 굳이 강화도를 강화라고 부르듯이 남해 사람들도 남해를 섬이라고 하면 듣기 싫어할 것이다. 강화도는 강화고 남해는 남해다.

한참을 가자 드디어 보리암이 나왔다. 보리암은 주변 자연 경관이 아주 훌륭했다. 발밑으로는 오밀조밀하게 섬들이 보이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눈을 들면 온 사방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포진해 있었다. 숨바꼭질 하는 아이들 모양 섬들이 요기조기 박혀 있었다. 그 한가운데 보리암이 있었다.

절에 왔으면 부처님을 뵈는 게 순서인데 남편은 법당에 들어가는 걸 쑥스러워한다. 그래서 딸애와 나만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저 돌멩이 하나 하나에는 작은 정성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 돌멩이 하나 하나에는 작은 정성들이 모여 있습니다.이승숙
소문난 기도처 남해 보리암, 관세음보살님이 함께 하셨다

법당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서 경을 외고 있었다. 그날따라 무슨 날이었는지 스님들도 많았다. 그래서 법당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스님이 계속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그러면 신도들이 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을 암송했다. 단조로운 듯한 그 울림이 끝없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울림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불경 공부를 따로 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계속 관세음보살을 외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따뜻한 힘이 가슴 속으로 전달되어 온다.

지난 번 수능 시험 날에 나는 그 힘을 느꼈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 전등사에 갔는데 법당에서 수능 기원 법회를 하고 있었다. 수험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온 마음을 모아서 절을 하고 있었다. 스님 한 분이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절을 하면 엄마들도 따라서 외우며 절을 하였다.

시험이 시작되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법회는 계속 되었는데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나는 관세음보살님의 손길을 느꼈다. 초조하고 안타까운 우리들을 관세음보살님이 따뜻하게 보듬어 주셨다.

바다가 환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관세음보살님이 계셨다.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담은 채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다. 마치 어머니처럼 관세음보살님은 우리들 곁에 계셨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자신보다는 가족과 자식의 안위를 먼저 챙긴다. 자식이 무탈하게 지내기를 빌고 잘 뻗어나가기를 기원한다.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는 게 또한 엄마다. 그래서 내가 지치고 힘들 때 찾아가면 왜 왔냐 묻지도 않고 그저 덥석 안아주고 받아준다.

관세음보살님도 그러실 거 같다. 내가 평안할 땐 잊고 지내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가면 아무 말 없이 그냥 받아줄 거 같다. 등이라도 토닥이며 두드려 주면서 그 너른 품 안에서 쉬었다 가게 해주실 거 같다.

아들 덕분에 보리암 구경을 잘 했다. 관세음보살님께 살갑게 다가가진 못했지만 그 또한 너그럽게 봐주실 거라 믿는다. 우리들이 열심히 잘 살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빌어주실 거라 믿으며 보리암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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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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