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54회

등록 2007.03.19 07:58수정 2007.03.19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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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철한이 궁금하다는 듯 빤히 쳐다보자 좌등이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어제 두 명이 죽고 백호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난입한 사건이 있었소.”


@BRI@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얼핏 좌등의 입에서 나왔고, 예상처럼 어제 두 녀석이 일을 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나 풍철한은 여전히 시침을 떼고 물었다.

“두 명이 죽었다니? 누가 말이오?”

“교두 중 하나인 환영교수(幻影巧手) 반일봉(潘馹鳳)과 만보적의 수족이라는 일접사충 중 복이 피살되었소.”

뜻밖이었다. 언뜻 생각해보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운중보 내의 사건들과는 전혀 무관한 죽음처럼 보였다.

“누가 그들을 죽인 것이오?”


다른 사람이 잠시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재차 물었던 풍철한이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치며 입맛을 다셨다.

“이런… 쩝… 나는 왜 이리 멍청하지? 그런 일은 어차피 우리가 조사할 일인데….”


말을 하며 함곡을 바라보았다. 함곡은 풍철한이 하도 천연덕스럽게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역시 재미있는 친구였다. 좌등 역시 따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을 죽인 인물이 누군지는 이미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조사하지 않아도 되오. 아니 조사할 수도 없고, 필요도 없을 것 같소.”

“……?”

“이상한 일이지만 그들의 시신은 새벽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소. 물론 누가 가져갔는지는 대충 짐작은 가지만 그들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풍철한은 호기심어린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함곡은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누가 죽인 것인지 알고 있다는 좌등의 말은 매우 애매하고 의미심장했지만 시신을 거두어 간 인물들은 대충 짐작이 갔다. 특히 만보적은 자신의 수족이었던 복의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을 터였다. 만약 복의 죽음을 알리게 된다면 공공연하게 일접사충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을 통해 무슨 일을 하는지 스스로 공언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허나 환영교수 반일봉의 죽음은 의미가 달랐다. 교두였으니 교두들 쪽에서 회수해 갔을 가능성이 높지만 왜 감추려 하는 것일까? 그것 역시 ‘보이지 않는 것’ 중 하나일까? 뭔가 느낌이 오고 있었고, 좌등이 새삼스럽게 달리 보였다.

아무리 총관이라고 불리고, 그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지만 그것은 보주를 위하는 일에 한정될 뿐이라 생각했다. 허나 함곡은 불현듯 좌등이 누구보다 운중보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복이란 사람은 그렇다 치고 반교두라면 운중보 내에서도 꽤 비중이 있는 분일 터인데 모른 척 해도 된다는 말씀이오?”

함곡의 날카로운 지적에 좌등은 약간 곤혹스런 표정을 떠올렸다. 설명을 하자면 장황해진다. 현 운중보의 상황은 공식적으로 보고 되는 사건이 아니라면 먼저 파헤쳐 떠들어댈 시기가 아니다. 미묘한 현재 상황을 구구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때가 되면 보고가 될 것이오. 그 때 일을 처리해도 늦지 않소. 아시다시피….”

대충 짐작은 하고 있는 터였다. 좌등이 말끝을 흐리자 그의 곤혹스러움을 벗어나게 풍철한이 불쑥 물었다.

“헌데 백호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난입했다는 사건은 또 뭐요?”

“아… 아주 이상한 사건이었소.”

좌등은 마침 잘되었다는 듯 얼른 화제를 바꾸며 대답했다.

“분명 누군가 백호각 안으로 잠입했고….”

좌등은 백호각에서 일어났던 상황을 설명했다. 잠입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공교롭게도 백호각 밖에서 백도와 마궁효 간 일어났던 사건으로 인해 옥기룡의 손에서 벗어난 일까지 마치 지켜보았던 것처럼 자세히 알려주었다.

궁금했던 일을 자세히 알게 되자 함곡과 풍철한은 왠지 내심 안도가 되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일단은 두 녀석이 무사한 것이다. 헌데 의외로 자세히 설명을 마친 좌등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헌데 설소협과 능대협이 안 보이시는구려?”

안 보이는 사람이 어디 그들뿐인가? 반효나 설화, 그리고 소유항도 이 자리에 없다. 그럼에도 특히 두 사람을 지목해 물어본 것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낸들 알겠소? 뭐 그리 신나는 일이 있다고 죽이 맞아 돌아다니는 놈들이니… 사고나 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풍철한이 능청스럽게 좌등의 말을 받아넘겼다. 허나 좌등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어제 백호각에서 사고 친 녀석들이 ‘그들이요’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헌데 그 때였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속하 진운청(陳雲菁)입니다.”

좌등이 밖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며 진운청이 모습을 보였다. 좌등이 함곡을 데리러 갈 때 목갑을 전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좌등에게 있어 가장 믿을 만한 수하가 있다면 그다. 그는 앉아있는 세 사람에게 일일이 포권을 취했다. 함곡과 풍철한 역시 정중하게 포권을 취해 답례했다. 비록 좌등의 수하라 하지만 풍기는 기도가 결코 예사 인물이 아니다.

“무슨 일인가?”

좌등이 손으로 자리를 권하며 말했지만 진운청은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좌등에게 시선을 던지며 잠시 주춤하는 것이 옆에 함곡과 풍철한 때문에 조심을 하는 듯 보였다. 좌등이 어찌 그 눈치를 모르랴?

“자네가 이곳까지 찾아 온 것은 급한 일이겠지. 허나 자네가 지금 보고하려는 일이 보 내의 중요한 일이라면 잠시 기다리게. 그렇지 않고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알 일이거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고하려 한다면 말을 해도 괜찮을 듯싶네.”

그 어떠한 중요한 일이라도 함곡과 풍철한이라면 말을 해도 상관없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진운청은 그제야 고개를 끄떡이며 입을 열었다.

“오전에 들어오는 운중선에 동창제독으로 계시는 추산관(萩㦃寬) 태감과 혈간 어른의 동생인 철기문의 문주도 들어온다고 전갈이 있었소이다.”

“추태감이?”

급하긴 급한 일이었다. 철기문의 문주인 옥청문(玉淸文)이야 들어온다고 이미 들은 바도 있었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설마 했던 추산관 태감까지 들어온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좌등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함곡이나 풍철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추산관 태감이 들어오면 매우 귀찮아 질 것이 분명했다. 신태감의 죽음은 그냥 지나칠 사건이 아니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막무가내로 동창이나 군문의 병사들이라도 끌고 들이닥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은근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변명할 거리라도 찾아놓아야 하겠군.”

조사를 맡은 입장에서 흉수가 누군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변명이라도 필요하다는 뜻이었지만 영 찜찜한 듯 풍철한은 눈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함곡이 말을 받았다.

“추교학도 그 안에 만나보아야겠지….”

운중선이 들어오려면 아직 반 시진 이상 남았다. 추산관 태감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조사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좌등과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좌등으로서는 급했다. 보주께 신속히 보고해야 한다. 세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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