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이 따로 없구만..."

[룩소르에서 다마스커스까지 22] 패트라의 역사와 일곱 개 바위 빛깔

등록 2007.03.19 10:59수정 2007.03.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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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일까요? 비단일까요? 아니면 추상화?
바위일까요? 비단일까요? 아니면 추상화?이승철
바위협곡을 입구로 만든 고대동굴도시 패트라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가 놀랍고 신기한 것들뿐이다. 비좁은 바위협곡과 까마득한 붉은 바위산이 놀랍고, 알카즈네 신전에서 감탄을 거듭하다가,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서 수많은 유적과 동굴들을 바라보게 되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고 신기한 것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이드로부터 듣는 패트라의 역사가 듣는 사람들을 또 다시 놀라게 하는 것이다. 패트라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기원전 6세기경에 서부아랍지역 출신의 유목민족인 나바테이안들이 지금의 동굴도시지역 주변에 정착을 시작하면서부터 세워졌다.


그럼 이 척박한 바위계곡 속에서 이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주변이 온통 깎아지른 절벽들로 이루어진 붉은 사암과 사막뿐인 이곳은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땅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이만한 고대도시를 이루며 살았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사실 그 시절 나바테이안들의 주 수입원은 이 지역을 통과하는 대상(caravan)들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옛날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을 상기해보자. 수십 명의 대상들이 뜨거운 태양빛에 긴 그림자를 끌며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이들은 진기한 향료와 보물들을 낙타에 짊어지우고 느릿느릿 사막을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대상들이 어느 모래언덕을 돌아서자 말이나 낙타를 탄 산적들이 바람처럼 나타난다. 하나같이 얼굴엔 검은 복면을 하고 약간 휘어진 긴 칼을 휘두르며 나타난 산적들은 대상들에게서 향료와 보물들을 약탈하여 역시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첨탑과 고드름이 맞물려 있는 것 같은 바위표면의 색상과 모양
첨탑과 고드름이 맞물려 있는 것 같은 바위표면의 색상과 모양이승철
가옥의 지붕모양 같죠.
가옥의 지붕모양 같죠.이승철
나바테이안들이 그랬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막대한 부를 자랑하던 대상들을 약탈하거나 통행세를 받음으로써 곧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주로 낙타를 이용했던 그 당시의 대상들은 남쪽 아라비아 반도에서부터 터키와 소아시아지역까지 주 교역품목인 향료를 실어 날랐다. 그런데 그들의 교통로가 바로 이 길목이어서 나바테이안들은 대상들을 통하여 앉아서 손쉽게 돈을 벌어들이게 된 것이다.

나바테이안의 왕 아레타스3세의 무덤이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알카즈네 신전의 또 다른 이름은 트래져리(Treasury)다. 트래져리라는 이름은 산적들이 대상들의 보물을 약탈하여 이곳에 감춰두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다. 실제로 신전의 앞 윗부분의 기둥 위에는 항아리 모형이 보이는데 이 항아리가 보물항아리로 알려져 누군가에 의하여 깨뜨려진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대단한 군사력을 보유한 적은 없었다. 나바테이안은 국가 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엉성한 왕조였지만 지리적 이점 때문에 주변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기원전 2세기경에는 이 약체의 나바테이안 왕국이 상당히 강성해졌다. 국력이 강해진 이들은 당시 강대국이었던 시리아와 로마에까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세력이 이 지역에까지 확장되면서 이들의 생존권도 위협을 받게 된다. 이들은 그동안 축적한 부를 이용하여 로마의 정벌군을 매수하기도 하고 로마와 파르티아 전쟁에서는 파르티아 편을 드는 등 외교력을 펼치기도 했지만, 결국 서기 106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다.


이런 화려한 동굴은 궁전 같기도 합니다
이런 화려한 동굴은 궁전 같기도 합니다이승철
한폭의 산수화?
한폭의 산수화?이승철
찬란한 고대 동굴도시 패트라의 전성기는 기원전 6세기에서부터 서기 100년까지 600년간이었던 셈이다. 그 600년간 찬란한 문화를 일궜던 나바테이안의 패트라도 로마군에 의하여 패망한 이후에는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바위 또는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패트라의 동굴도시는 비잔틴 시대에는 기독교적인 용도로 이용되었다. 또 십자군들이 원정했을 때는 그들의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그 이후 1812년 스위스의 한 탐험가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현지에 거주하고 있던 베두인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을 뿐 역사 속에서 잊혀진 도시가 되고 말았다.

"이 화려했던 고대동굴도시는 그러나 이들의 역사나 삶에 대한 기록이 뚜렷이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유적은 역사나 기록으로보다는 현존하는 유적 자체로 말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떤 기록이나 역사보다 현존하는 유적 자체로 말하는 고대동굴도시 패트라. 그래서 이 패트라는 더욱 신비롭고 놀라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유적지는 신전이나 동굴 등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도 대단하지만 자연 그 자체만으로도 여간 황홀한 것이 아닙니다."

가이드 장 선생의 말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 동굴지역의 바위들은 붉은 색이 주류인 사암들이라고 한다.

이 바위들 좀 보세요
이 바위들 좀 보세요이승철

물결 무늬 바위표면과 동굴
물결 무늬 바위표면과 동굴이승철
그런데 이 사암들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어떤 것은 대리석을 능가하는 반질반질한 매끄러움과 함께 바위표면에 나타나는 문양이 정말 화려하고 기기묘묘한 모습이었다.

"저 바위 좀 보세요? 마치 화려한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지 않으세요?"

일행이 먼저 발견하여 손짓하는 바위는 정말 화려한 비단결이었다. 울긋불긋 화려한 색상이 도저히 바위 표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바위들은 햇빛을 받는 각도나 정도에 따라 색깔이 다양하게 바뀝니다. 어떤 사람은 그 바뀌는 색상이 일곱 가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지요."

정말 그랬다. 바위표면의 색깔이 설마 그렇게 다양하게 바뀌랴 싶었지만 주변을 돌아보노라면 그 다양함이 정말 실감났다.

어떤 바위는 물결무늬, 또 어떤 바위는 고드름과 첨탑이 위아래로 교차하는 것 같은 현란함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바위는 사람의 형상과 얼굴 등 온갖 형태와 빛깔을 드러내는 것들도 있었다. 그냥 바위표면이라기보다 어떤 유명화가가 물감으로 그린 추상화 같은 모습이다.

기괴한 형상과 빛깔
기괴한 형상과 빛깔이승철

이 바위산의 다양한 빛깔과 모양을 보세요
이 바위산의 다양한 빛깔과 모양을 보세요이승철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계곡이고 바위들이구먼."

옛날 사람들이 거주했던 어떤 동굴은 그 현란한 바위 속에 만들어져 있어서 그야말로 화려한 궁전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였다. 영국의 시인 존 버곤이 <장밋빛 붉은 도시>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았다.

"인류가 남겨놓은 문화유산 가운데 이만한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유적지 한가운데서 느끼는 감동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모양이었다. 깎아지른 붉은 바위협곡과 계곡 속에 이루어 놓은 믿어지지 않는 인류의 문화유산인 신전과 원형경기장, 그리고 수많은 동굴들은 정말 놀라운 것들이었다.

또한 이들 유적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신의 손길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경관도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다. 특히 기기묘묘한 형상과 빛깔로 황홀경을 연출하는 바위들의 풍경은 이곳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정말 불가사의한 것들이었다.

바위들의 다양한 모양과 빛깔
바위들의 다양한 모양과 빛깔이승철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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