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사람들, 그동안 잘 싸웠어요"

[현장] 해산 일주일 전 929회 촛불집회 ..."마을은 사라져도, 평화 촛불은 영원히"

등록 2007.03.20 09:08수정 2007.07.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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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추리 929일째 촛불집회. 주민들이 이전하기로 정부와 합의한 뒤 촛불집회가 모처럼 북적거렸다.

대추리 929일째 촛불집회. 주민들이 이전하기로 정부와 합의한 뒤 촛불집회가 모처럼 북적거렸다. ⓒ 뉴스앤조이 주재일

a 반전평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대추리의 대추분교는 이미 폐허로 변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반전평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대추리의 대추분교는 이미 폐허로 변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뉴스앤조이 주재일


지난 한 달, 경기도 평택 대추리는 한산했다. 찾아오는 발길도 뜸해졌다. 농민들이 땅을 지키겠다며 900일 넘게 촛불을 밝혔지만, 결국 합의했다는 이유로 싸움에서 졌다는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모처럼 평택 대추리 촛불집회가 북적거렸다. 지난 18일 열린 929회 대추리 촛불집회에는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기독인연대 회원을 비롯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신대 학생회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잘 싸웠다"고, "의미있는 떠남이다"고 위축된 분위기의 마을 사람들을 격려했다.

이들 기독인들의 대추리 투쟁은 '회개'의 의미도 있었다. 평택 대추리가 미군 기지로 바뀐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합의금을 받고 하나둘씩 떠날 때, 대추리교회도 재빠르게 마을을 버린 일이 있었다. 끝까지 남아서 고향과 들녘을 지키려는 주민들에게 분노를 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기독인으로서 마을을 책임지지 못한 걸 회개한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모여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기독인연대를 만들고 주민들과 함께 했다.

[손님들] "대추리 주민들은 평화 가르쳐준 스승"

기독청년 노동자 노래패 '나도나도'의 노래로 문을 연 929회 촛불집회는 대추리 농민들에 대한 지지와 응원으로 가득 찼다.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는 "언론은 '보상금 몇 푼 더 받으려고 투쟁한다'고 하고, 사람들은 '투쟁해봤자 남는 게 뭐가 있느냐'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돈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싸웠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조 목사는 "대추리 주민들이야말로 평화를 온 몸으로 가르쳐준 스승이다"며 "대추리는 곧 사라지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 켠 촛불은 가슴 속에 영원히 타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외국인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최정의팔 목사도 "대추리 농민들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이 땅에서 미군 기지가 없어지는 때가 진정으로 승리하는 날이다"며 "비록 이곳 대추리에서 쫓겨나지만, 온 땅에서 다시 싸워야 한다"고 주민들을 격려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홍근수 목사 역시 대추리 주민을 예수와 비교하며 거주지 이전이 패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홍 목사는 "2000년 전 시선으로는 예수는 실패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지금 그를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마무리 행사로 여길지 모르지만 평화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신대 등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 향린교회 청년부 등은 편지를 읽고 노래를 부르며 힘내라고 응원했다. 이들 청년들은 "농민 아버지어머니들을 도우러 왔다가 항상 더 많은 힘을 얻었다"며 "제2, 제3의 평택이 생기지 않도록 불의와 잘 싸우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a 촛불집회에 참석한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왼쪽)과 대추리 주민 송재구씨.

촛불집회에 참석한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왼쪽)과 대추리 주민 송재구씨. ⓒ 뉴스앤조이 주재일

[대추리 주민들] "우리는 미련 없이 싸웠다"

주민을 대표해서는 송재구씨가 나서 함께 싸워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송씨는 "고향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크게 번질 줄은 몰랐다"며 "우리의 저항이 단순히 농토를 지키는 일을 넘어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일이라는 걸 깨우쳐 줘서 고맙다"고 화답했다.

또 송씨는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합의했다면 몰라도 군대와 경찰 등 물리력을 동원해서 우리 땅을 빼앗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긴 거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손자 녀석들에게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는 뭐하셨냐'고 물어보면, 우리 땅을 미군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900일을 촛불을 들고 싸우셨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돼 기쁘다"며 지금까지 미련없이 싸웠음을 밝혔다.

평택 주민들과 동거동락한 지킴이들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15명의 지킴이들이 평택을 미군으로부터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해 지금까지 주민들과 살고 있다. 이번 합의 때도 주민들 못지않게 고심했다. 이들은 함께 싸웠던 날을 회상하며 "우리를 크게 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촛불집회는 3월 24일 935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주민들은 물론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촛불집회는 여기서 끝내지만 마음속 촛불까지 끄지는 않을 것이다"고 다짐했다.

a 환경운동가이자 미술가인 최병수씨가 제작한 '제국의 식욕'. 최씨는 미군이나 정부가 자신의 작품을 철거하면 유엔에 제소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환경운동가이자 미술가인 최병수씨가 제작한 '제국의 식욕'. 최씨는 미군이나 정부가 자신의 작품을 철거하면 유엔에 제소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 뉴스앤조이 주재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추리 #미군기지 #평택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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