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안녕하십니까?

북미수교, 냉전과 미국에 기댄 자민당의 위기

등록 2007.03.20 11:55수정 2007.03.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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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 20회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자민당은 49석에 그쳐, 50석을 획득한 민주당에 패배했다. 야당이 투표에 의해 <제1정당>이 된 것은 지난 89년 사회당(현 사민당) 이래 처음. 사진은 <아사히신문> 7월 12일자 1면 머릿기사.

제 20회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자민당은 49석에 그쳐, 50석을 획득한 민주당에 패배했다. 야당이 투표에 의해 <제1정당>이 된 것은 지난 89년 사회당(현 사민당) 이래 처음. 사진은 <아사히신문> 7월 12일자 1면 머릿기사. ⓒ 박철현

한반도 핵문제를 중심으로 동북아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핵문제가 남북한이나 미국에 미치는 영향 못지않게 일본 집권 자민당(자유민주당)에 미칠 영향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향후 정세가 동북아 냉전구도와 미국의 역내 지도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자민당의 헤게모니도 연쇄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993년에 자민당이 사상 최초로 야당으로 전락했던 국제적 배경을 되돌아봄으로써 현재의 자민당이 처한 또 한 번의 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55년 11월 15일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의 통합으로 구성된 자민당은 1958년 5월 22일의 중의원선거에서 57.8%의 득표율로 287석(61.5%)을 차지한 이후 역대 중의원선거에서 1등을 독차지해 왔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민당의 아성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1993년 7월 18일의 중의원 선거에서 역대 최저 득표율인 36.6%를 기록한 자민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내세운 야당연합(일본사회당·신생당·공명당·민사당·민주개혁연합·일본신당·신당사키가케)에게 권좌를 내주고 말았다.

그럼, 자민당이 1993년에 권력을 잃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표면적인 측면을 보면 일본의 거품경제와 몇 건의 정치적 악재가 자민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이 되었다. 여기서는 몇 건의 정치적 악재에 대해서만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후계자인 다케시타 노보루(재임 1987~1989년)의 새로운 소비세(비인기 정책) 신설, 다케시타 총리의 후계자인 우노 소스케 총리(재임 1989년 6~8월)의 섹스 스캔들, 리크루트 사건(1989년) 및 사가와규빈 사건(1992년)으로 대표되는 대형 뇌물 스캔들 등이 자민당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현상만으로는 1993년 7월의 일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기 없는 정책이나 뇌물 비리 혹은 부적절한 관계 등은 그 이전 시대에도 언제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냉전과 미국에 기댄 일본 자민당

보다 중요한 것은 1955년 이래 자민당을 지켜 주던 국제적 기반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약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 기반이란 바로 동북아 냉전구도와 미국의 역내 지도력이다. 이와 같은 2가지의 강력한 기초가 있었기에 자민당이 전후 수십 년 동안 집권당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파벌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당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자민당의 파벌 정치와 동북아 국제정치의 상관관계를 보면 냉전과 미국의 지도력은 자민당 내 파벌들의 분열을 봉합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파벌 지도자들은 총리나 총재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외부의 적인 소련·중국·북한과 리더인 미국 앞에서 파벌의 목소리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냉전이 해체되면서 자민당의 지배와 결속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들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한소수교(1990년), 소련 붕괴(1991년), 북·일 수교교섭(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년), 한중수교(1992년) 등의 일련의 사건은 동북아에서 냉전을 급속히 해체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역내 지도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1993년에는 제1차 한반도 핵대결에서 북한이 미국에 맞서 도전하였다. 북한의 도전은 미국의 역내 지도력에 중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런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 속에서 자민당을 지탱하던 냉전과 미국의 지도력이 약화되었다. 자민당을 지켜주던 힘이 약화되었기에 사가와규빈 사건 같은 대형 뇌물 스캔들도 세상 밖으로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보다는 정치적 비리가 폭로될 수 있었다는 점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이후 동북아 냉전의 해체를 임시 ‘봉합’하면서 자민당의 지도력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93년에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한 자민당은 1994년에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를 총리로 내세운 연립내각을 출범시켜 권좌에 복귀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1996년 1월 11일에는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가 연립내각의 총리직에 올라섰다. 미국의 역내 지도력이 미봉책으로나마 봉합되면서 자민당의 권력도 역시 미봉책(연립내각)으로 회복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3년 이후의 자민당은 이전의 자민당과 비교할 때에 그 역량 면에서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1994년의 권좌 복귀는 연립내각의 형식을 빌린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성향의 사회당 지도자를 총리로 내세움으로써 가능했다.

또한 1993년 이후의 중의원 득표율 및 의석수는 그 이전에 비해 크게 약화된 것이었다. 1990년 2월 18일 중의원선거까지만 해도 자민당의 득표율은 대체로 과반수를 넘거나 그에 육박했다. 하지만, 연립내각 출범 이후 치른 1996년 10월 20일의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은 38.6%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에 그쳤다. 권좌를 회복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에는 상처와 불명예가 따랐던 것이다.

그리고 자민당 권력과 미국 지도력의 상관관계는 미국이 대테러전쟁 구도로 지도력을 크게 회복한 시기에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보수적 색깔을 한껏 드러내면서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2차 한반도 핵대결이 한창이던 시절에 고이즈미의 자민당 정권이 인기를 누렸다는 점은 자민당이 기본적으로 냉전과 미국 지도력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임을 잘 보여 주는 현상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엔 희망이지만 자민당엔 절망인 북미간 대화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13 합의 이후 급격히 변화하는 동북아 질서는 자민당의 국제적 존립 기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13 합의는 자민당의 국제적 존립기반 중 하나인 동북아 냉전구도가 최종적으로 와해될 시점에 임박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으로는 자민당의 붕괴를 예견하기 힘들다. 자민당의 존립을 지탱하는 국제적 기반에는 냉전 외에도 미국의 지도력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냉전 해체가 가속화된다 하여도 미국의 지도력이 일정 정도 유지되는 한 자민당도 ‘그럭저럭’ 권좌를 유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동북아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어떤 운명에 놓일 것인가 하는 점은 북·미 협상의 진행과정에서 보다 더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동북아 지도력은 언젠가는 소멸되겠지만, 북한·중국 등의 이해관계나 역학구도에 따라 그것이 잠정적으로나마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의 지도력이 동북아에 그대로 온존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지도력이 유지된다 하여도 그 강도가 예전보다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자민당의 지도력 역시 향후 지속적으로 약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일본 정계에 조만간 또 한 번의 정계개편이 다가올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 대화구도는 일본 자민당의 존립기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냉전구도와 미국의 지도력을 기반으로 수십 년간 권좌를 지켜온 자민당에게 있어서 동북아 냉전의 최종적 와해(북·미 평화협정)와 미국 지도력의 최종적 소멸은 그 존립기반이 근본적으로 와해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미 평화협정 이후에 미국이 얼마나 더 지도력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자민당의 지배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본의 정계구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와 같이 북·미간의 협상구도는 한반도와 동북아에게는 희망적인 소식이지만 자민당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 될 수도 있다. 일본 자민당이 지금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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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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