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 '싹~'

트랜스젠더 작가 김비의 소설 <플라스틱 여인>

등록 2007.03.20 16:55수정 2007.03.2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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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사

[박윤수 기자] 여성작가만을 대상으로 한 장편소설 공모에서 최초로 '법적 남성' 당선자가 탄생했다. 소설 <플라스틱 여인>으로 제39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트랜스젠더' 작가 김비(36·본명 김병필)씨가 그 주인공이다.

소설 <플라스틱 여인>은 미용실 보조로 일하는 트랜스젠더 여성 '연'이 그의 배경을 알면서도 결혼을 약속한 '인태'의 가족에게 인정받는 과정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자아 찾기를 다룬 작품.


심사를 맡은 하응백 문학평론가는 "1980년대 이전이 부계중심 문학이었고, 90년대에 여성이 문학적으로 성 정체성을 찾았다면, 2000년대 한국문학은 제3의 성의 문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 소설은 섬세하고 세밀한 여성적 언어로 트랜스젠더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 있게 하는 시금석"이라고 평했다.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인 '연'은 그의 배경을 알고도 사랑해주는 '인태'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 그러나 인태의 가족과 함께 한 저녁식사에서 트랜스젠더임을 들키고 만다. 그 충격으로 인태의 할머니가 쓰러지고, 뒤이어 간호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차례로 입원하게 되면서 인태의 집안은 한순간에 엉망이 된다.

연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인태의 할머니를 간병하며 집안일을 돌보면서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요구한다. 가까이서 연을 지켜본 할머니의 결정으로 인태의 가족들이 연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저녁식사에 초대한 날, 연은 자신의 본명인 '민수'라는 이름으로 키우던 도마뱀을 집 문 앞에 놓고는 사라진다. 마침내 여성임을 인정받고 가족을 가지게 된 연이 인태와의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결말은 의외였다.

"연이 그 집에 가지 않기로 한 것도 연의 선택이었거든요. 이제 연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작가 김비씨는 이 결말이 주인공에게는 '해피엔딩'이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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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플라스틱 여인>은 그가 간질환으로 쓰러졌던 2003년, "이렇게 죽으면 너무 허망하다"는 절박함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쓰기 시작한 작품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주인공에 감정이 이입돼 많이 울었고 몇 번이나 멈췄다 썼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김비씨는 사실 트랜스젠더로서 낯익은 얼굴이다. <병원 24시>라는 의학 다큐 프로그램에선 그의 성전환수술 장면이 방송됐고, 케이블 채널 TvN의 토크쇼 <라이크 어 버진>에선 트랜스젠더를 다룬 'M2F'(Male to Female)라는 코너의 고정 게스트로도 활동했다. 여성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을 다룬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시나리오 자문을 맡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단다. 1998년 성적소수자 월간지 <버디>에 단편 '그의 나이 예순넷'을 발표하고, 99년 홈페이지(www.kimbee.net)를 열어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고 싶었고, 글쓰기가 절망을 치유하는 힘을 가졌음을 알게 됐기 때문. 에세이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와 장편소설 <개년이>, 소설집 <나나누나나>도 펴냈다.


그는 "예전에 비해 트랜스젠더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점은 기쁘지만 이로 인해 또 다른 편견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해서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화려한 화장, 여자보다 더 예쁜 외모를 트랜스젠더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큰 키에 화장기 없는 얼굴, 여성스런 옷보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김비씨는 다른 모습이다. "트랜스젠더가 더 이상 특별한 사람이 아닌,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다.

그는 소설을 통해 이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담아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다음 작품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리소설 형식으로 그려낼 계획이라고. 그렇다면 호적 정정은? "재판을 통해야 하는 지금의 제도가 변화하고 특별법이 제정되면 하고 싶다"고 그는 쓸쓸히 답변했다.

플라스틱 여인 - 제39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김비 지음,
동아일보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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