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에게 인생을 묻다

[리뷰] 고경원씨의 <나는 고양이에 탐닉한다>

등록 2007.03.21 11:08수정 2007.03.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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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우리나라에서 까마귀와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다. 영물로 아홉 개의 목숨을 가졌고, 한 마디로 말해 '재수 없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강아지를 생각해 볼 때 고양이 입장에서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똑같은 네 발 달린 짐승인데, 강아지는 맹견으로서 충성을 다하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심지어 똥개도 똥개라는 어휘의 어감이 좋지 않을 뿐, 시골에서는 아직도 '똥개'가 최고다. 물론 보신탕, 유기견 문제가 새롭게 등장하고는 있지만 고양이 신세에 비하면 세월 참 좋아졌다. 최근 들어 고양이도 조금씩 애완동물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도 길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는 천대받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둑고양이'라 부르는데, 유독 그들을 '길고양이'라고 호칭을 붙이고 예뻐하는 이가 있다. 바로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를 지은 고경원씨다.


고경원씨는 도시의 하이에나쯤으로 취급받는 고양이를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다. 그리고 4년 6개월이란 시간동안 도시의 하이에나 길고양이를 찾아 거리를 헤매며 셔터를 눌러댔다. 참으로 독특하다. 그렇게 그는 길고양이의 매력에 꽂혀 골목골목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씨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책은 4년 6개월을 길고양이를 탐닉하는데 매진한 저자의 알콩달콩 동거 이야기와 길고양이의 사진들이 함께 하는 에세이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열심히 길고양이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던 무렵은 내 마음이 가장 고단한 시절이기도 했다. 길고양이들은 그런 내게 치열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지금도 어떤 사진 속에서는 그들이 '봐, 나도 이렇게 살고 있잖아'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같다." - 본문 중에서

그런데, 이 책은 본문에서 말하듯, 길고양이의 고단한 삶과 그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생존력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표면에 불과하다. 저자는 고양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찾았다. 따라서 이 책은 고경원씨의 성장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처럼 책에는 고양이와 저자 고경원씨가 서로 상생한다. 저자는 사람을 경계하면서 노숙을 통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진 길고양이, 사람에게 호의적인 길고양이 등 다양한 길고양이들을 보여주면서 더불어 길고양이의 생존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자신의 삶도 고양이만큼만 이루어지길 간절히 빌고 있다.


소시지를 들고 길고양이를 찾아다니는 그녀의 열정이 아름다운 길고양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더 나아가 고경원씨는 길고양이와 동거를 하며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스밀라는 작고 여린 고양이였지만, 보이지 않는 억센 힘으로 나를 붙들었다. 돌보는 동안 정이 들어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고 믿었지만, 실은 스밀라가 나를 선택한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을 집으로 들였을 때 져야 할 책임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스밀라를 돌보면서 매일 느낀다. 스밀라가, 그 책임의 무게에 준하는 기쁨을 주고 있다고는 해도 말이다. (중략)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일단 모든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고양이와 생활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이다. 스밀라와 함께 해 온 시간은 짧지만, 스밀라와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스밀라도 나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좋겠다." - 본문 중에서


고경원씨는 스밀라를 만나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찍은 피사체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동거 스토리는 책에 또 하나의 재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저자는 고양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변화는 길고양이를 진정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고경원 지음,
갤리온,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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