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폐광에 세워진 바람개비들
전기도 만들고 일자리도 만든다

[이명박 발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⑧] 클레트비츠 풍력파크에 가다

등록 2007.03.22 08:47수정 2007.08.3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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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부운하' 사업을 놓고 시민사회단체에서 비판의 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란 주제의 심층 기획을 통해 이 사업의 효용성을 검증합니다. 이를 위해 2월 21일부터 3월 11일까지 '운하의 나라' 독일과 네덜란드의 실태를 현지조사했습니다. 또 미래산업으로 부상한 신재생에너지의 현주소도 짚어볼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은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www.ecoin.or.kr)과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편집자주>
현지 조사단 : 생태지평 박진섭 부소장·장지영 연구원·김병기 기자
통역 : 베를린 자유대학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김상국 씨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난해 10월 독일 MD운하의 힐폴슈타인 갑문에 서서 경부운하 건설을 사실상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독일 운하를 벤치마킹해서 물류 운송시스템을 혁신하고 3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면 제2의 국운융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와 '생태지평' 현지 조사팀의 눈에 비친 MD운하는 일자리는커녕 경제성조차 찾기 어려운 지경(관련 기사 참조)에 처해있었다. 과연 우리는 독일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100m 바람개비, 아우토반의 속도로 돌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그 한 가운데 무려 100m 높이의 육중한 쇠기둥이 박혀있다. 기둥 아랫쪽은 어른 대여섯 명 정도가 양손을 맞잡아야 감싸안을 수 있는 크기다.

"쌕-쌕-쌕-쌕-."

쇠기둥 꼭대기에서 세 가닥 날개를 편 거대한 바람개비. 날개 한 개 무게가 6톤이니까 도합 18톤이다. 쇠기둥까지 합친 전체 무게는 약 156톤.

그 거구가 고개를 꼿꼿이 치켜든 채 레이더처럼 좌우로 움직이며 맞바람을 맞고 있다. 바람개비가 돌아가면서 허공에 그리는 원의 지름만도 90m. 보기와는 달리 날개 끝은 시속 220㎞로 돌아가고 있다.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자동차와 비슷한 속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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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트비츠 풍력파크 전경.


지난 달 24일 찾아간 독일 브란덴브루크주의 클레트비츠 마을. 기차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허름한 시골길을 10여분 정도 달리니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한 두기씩 시야에 잡혔다.

폴란드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이 곳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만 해도 동독을 세계 최대의 갈탄 생산국으로 입적시키는 데 한몫 했던 대형 광산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마을을 검게 뒤덮던 갈탄 가루는 사라졌다.

길이 280m, 높이 80m에 달한다는 채광기의 굉음도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수천명의 광부들도 대부분 이곳을 떠났다. 그 대신 60m 깊이까지 팠던 거대한 갱도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풍력발전기 66기를 세웠다. 고갈 위기에 처한 화석에너지를 미래에너지로 전환하는 대역사의 상징적 현장이다.

갈탄 파내던 갱도 위에 세워진 풍력발전기

"38개의 풍력발전기는 99년 건설돼 그해 겨울부터 작동했다. 한해 총 발전량은 11만MWh. 3만가구에 전기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었다. 규모 275㏊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컸는데 1년 후에 6기가 추가됐고, 2003년에 드라이센 지역에 13기가 건설돼 총 66기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여러분들 앞에 서 있는 풍력발전기가 중앙조절 역할을 하는 66번기이다."

풍력파크 관리인 헨리 뢰벤 헤르츠(53)씨의 설명이다.

헤르츠씨는 66번기 앞에 서서 간단한 설명을 마친 뒤 "바람이 너무 차다"면서 타원형의 무거운 철문을 열고 풍력발전소 안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1평 반 남짓한 공간. 잠깐동안 추위에 떨었던 탓인지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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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기 입구.

풍력발전기 꼭대기로 오르는 100m의 사다리가 먼저 눈에 띄었다. 그는 "1시간 정도 걸릴 수도 있는데 한 번 올라가겠냐"고 제안했고, 우린 웃으며 거절했다. 당초 풍력발전기 끝에 올라가 사진을 찍을 요량이었지만, 기차를 놓쳐 이곳에 늦게 도착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한 것이다.

발전기 안 작은 공간에는 안전장비·변압기·20㎾케이블, 철제 엘리베이터 등 각종 기계와 전자장치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한 계기판을 보면서 "현재 66번기는 492kWh를 생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저것이 모든 풍력발전기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잘못된 게 있으면 스스로 명령하고, 나의 휴대폰에 문자메시지로 바람의 세기와 발전기의 상태 등을 시시각각 알리는 중앙처리 기기이다."

그는 한 구석에 박힌 낡은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면서 이렇데 말한 뒤 "간단한 고장의 경우 집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고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람이 세게 불면 66기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이 한꺼번에 폭주해 과부하가 걸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풍력발전을 반대하는 논리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는 "바람개비의 회전 속도가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말했다.

이런 전자동 시스템으로 인해 72.6MW (7만2600kW)의 발전용량을 갖춘 풍력파크의 관리 인원은 8명. 풍력파크를 건설할 때는 지역 설비생산 회사에 최소 300여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관련 산업은 크게 발전했지만, 발전소 운영 인력은 많지 않다고 한다.

독일 풍력발전=원자력발전기 4대

헤르츠씨는 "1999년 이 곳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유럽 최대의 풍력단지였는데 이제는 독일에만도 이보다 더 큰 단지들이 여러 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독일의 풍력발전 성장률은 가히 폭발적이다. 2006년 말 현재 독일의 풍력발전기는 총 1만8685기. 발전용량은 총 2만600㎿이다. 1년 전에 비할 때 10% 신장한 것이다.

풍력발전기들은 주로 바람이 센 북해 연안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에 많이 분포돼 있는데, 전체 전력생산량의 6%를 생산하고 있다. 또 1980년 이래로 독일의 풍력 기술 발전은 500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2020년에는 전체 전력생산량의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독일 정부와 관련 업계의 전망이다.

원자력발전기 1대의 발전용량은 1000MW. 독일 내 평균 가동률이 20% 정도인 걸 감안한다면 독일의 풍력발전은 원자력발전기 4대와 맞먹는 규모이다. 참고로 독일 풍력발전기 1개의 발전용량은 평균 1㎿. 이는 가정용 백열등(60W) 1만7000여개를 밝힐 수 있는 용량이다.

이 곳이 광산이던 시절, 수천 명의 광부들이 갈탄을 트럭이나 기차, 배에 싣고 화력발전소로 운반한 뒤 전력을 생산했을 것이다.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화력발전소 굴뚝은 입 밖으로 검은 연기를 쉴새없이 내밷었을 것이다. 그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친환경형 고부가가치 산업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여전히 꿈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독일에서는 현실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최대의 재생에너지 단체인 '독일 풍력에너지협회(BWE)' 홍보담당 마티아스 호르슈테터씨는 2000년에 개정된 신재생에너지법을 꼽았다. 그는 "90년에 이미 전력매입법이 만들어졌는데,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에서 만든 전력을 일반 구매가의 90%에 달하는 가격으로 전기회사가 사들일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고 말했다.

결국 정치적·정책적 결단이 현재 독일을 풍력 발전 최대 강국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풍력발전으로 정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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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기.

그렇다면 풍력발전은 기존의 석탄·석유·원자력 등 화석연료를 통한 발전보다 경제성이 있는 것일까. 가령 생산단가가 너무 비싼 것은 아닐까. 또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만으로도 전력소비를 충당할 수 있을까.

우선 타 연료와의 경제성 비교 분석과 관련, 호르슈테터씨는 "석탄화력발전이나 원자력 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2005년의 전력 생산단가는 4.39센트/kWh 정도이고, 가격 경쟁력을 거의 갖춘 상태"라며 "기술 발전과 산업 확산 추세가 이어진다면 2015년에는 독립적으로 경제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바람의 세기에 따라 발전량이 불안전하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풍향과 세기에 대한 도표를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바람의 세기와 풍향을 예측한 곡선과 실제 곡선의 차이는 거의 없다. 기술적으로 뒷받침이 가능한 것이다. 즉, A발전소가 꺼지고 B발전소가 돌아가는 상황을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데, 풍력발전이 불안정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또 만약 풍력발전소 전력이 남아돌면 수력발전소와 연계해서 물을 펌프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저장할 수도 있다. 이른바 풍력과 수력 복합방식을 사용하면 에너지 효율을 70%로 끌어올릴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로 인한 독일 산업 구조의 변화도 흥미롭다. 독일 에너지공사(DENA)의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팀장 베르톨트 브라이트씨는 "풍력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들은 화석에너지 산업을 담당하고 있다.

호르슈테터씨도 "풍력발전은 기본적으로 분권적이고 풀뿌리 시스템을 통해 시작됐다"면서 "지방에서 펀드를 조성하고 농부들이 돈을 모아서 조합을 형성했다,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은 각 지역에 분산적으로 배치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알력도 많았다고 한다. 브라이트씨는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했던 대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 전력의 조건을 아주 까다롭게 하면서 중소기업의 진입을 막으려려고 했다"고 전했다.

결국 독일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들이 가진 송배전망과 생산망을 분리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고, '연방전력망 기구'를 설립해서 신재생에너지를 운용하는 중소업체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있지 않은지 감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독일의 풍력파크, 대한민국의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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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에서 카지노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선 풍경 ⓒ 강기희

검은 하늘에 선명하게 박힌 반달과 별무더기. 풍력발전소 문을 열고 나오자 가장 먼저 눈에 띈 풍경이다. 그 앞에서 66번기가 '쌕-쌕'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는 속삭임에 가까웠다. 폐광에 카지노를 세우고 '인생 막장'에서 일했던 일부 광부들이 또다시 그 곳을 기웃거리는 우리의 우울한 풍경과는 크게 대별되는 모습이다.

게다가 석유는 40년, 가스는 60년, 석탄은 220년이면 고갈된다고 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갈탄을 파헤치지 않더라도 바람개비를 돌려 대안을 만들어가는 독일의 모습. 그러나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어떻게 미래에너지를 준비하고 있나.

'토목공화국'을 건설하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전환하면 또다른 대안이 있다. 대규모 건설을 통해 단기간에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100년·200년을 내다보면서 중소기업 위주의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국가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자연을 파헤쳐 인공적 물길을 뚫는 운하와 불어오는 바람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는 바람개비. 클레트비츠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 운전사와 잠깐 잡담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재생 에너지는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원

기자가 중소기업 위주의 신재생에너지 산업 구조에 주목했던 것은 일자리 창출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인터뷰 내용이다.

"2006년 현재2000여개의 중소업체들이 풍력 발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이중 50%는 생산업체이고, 나머지는 전기 배선·보수·마케팅 업체이다. 풍력산업은 지난 2006년에 7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지난 4년만에 50% 성장했다. 2015년에는 15만명의 일자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호르슈테터 씨)

"현재 17만명이 신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2000년에는 3만명이었다. 6배가 늘어난 것이다. 풍차를 만들고 솔라셀을 만드는 등 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중 20%다. 그걸 판매하는 사람, 설비하는 사람, 보수하는 사람 등이 80%를 차지한다. 산업에 있어서 파급효과가 엄청난 것이다."(브라이트 씨)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대기업은 지난 10년 사이에 200만 근로자를 130만명으로 줄였다고 한다. 반면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2000만명.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어떤 분야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통계수치이다.

다시 클레트비츠 풍력파크 현장으로 돌아가보자. 헤르츠씨는 이 지역 토박이라고 했다. 그 역시 과거 60m 깊이의 갱도로 내려가 삽과 곡괭이를 들었던 광부였다. "당시 갈탄광산이 지평선과 맞닿아 있었다"며 옛날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독이 된 뒤 거대한 채광기는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그 역시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탄광을 떠났다가 풍력파크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경부운하 #이명박 #독일 #풍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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