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57회

등록 2007.03.22 08:09수정 2007.03.2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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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두의 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서당두의 방으로 들어서자 풍철한이 물었다.

“추교학이 사실 그대로 말했을까?”


“그랬을 가능성이 높네. 그가 윤석진을 죽인 흉수라면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걸세. 사전에 충분한 계획을 세우고 대처했을 테니까. 적어도 그는 흉수가 아니네. 내가 말했듯이 그 비밀통로의 서향 주인은 흉수가 될 수 없네. 단지 목격자일 뿐이지.”

“그렇다면 그곳을 나오는 추교학을 본 진운청은 왜 그 사실을 진즉에 좌총관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혹시 좌총관이 보고받고도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것일까?”

풍철한이 함곡을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풍철한으로서는 왠지 자신만 도외시된 기분이었다. 함곡이 시선을 돌렸다.

“나 역시 그것을 알 수 없네. 진운청은 좌총관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네. 좌총관이 우릴 도와 조사를 같이 하고 있음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이 아주 중요한 정보를 왜 주지 않고 있었는지 나 역시 궁금하다네. 또한 좌총관이 알았다면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을 까닭이 없네.”

“그럼 자네는 진운청이나 좌총관에게 추교학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지금까지 풍철한은 진운청이나 좌등이 함곡에게 슬쩍 정보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다고 생각했나?”


함곡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풍철한이 함곡을 보며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네. 솔직히 나 모르는 가운데 좌총관이 자네에게만 알려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네.”

“그런 일은 없었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자네와 나는 똑같네. 어떠한 정보든 한 사람에게 보고 되는 일은 없네. 또한 자네와 나는 언제나 같이 있기 때문에 그럴 시간도 없었네.”

“그럼 자네는 어찌 알았는가?”

“추교학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현장에 들렀던 사실은 사실 몰랐네. 다만 진가려의 비밀통로에 남아있는 서향의 주인은 궁수유나 추교학이 아닐까 나름대로 확신하고 있었네. 아마 궁수유를 만났어도 나는 그런 식으로 넘겨짚어 말을 던졌을 걸세.”

“소발에 쥐 잡은 격이군.”

“의외의 소득을 얻은 것이지. 물론 누군가가 그들을 범인으로 몰려고 생각했다면 서향을 뿌려놓을 수도 있었네. 하지만 그들을 범인으로 몰려면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걸세. 그곳에 남아있는 서향이 가르쳐주는 것은 흉수가 아니라 단지 목격자 또는 동조자일 가능성뿐이네. 추교학의 말이 사실이라면 흉수는 그에게 혐의를 씌우려 한 것은 분명하네.”

풍철한은 함곡에게도 저렇게 엉뚱한 면이 있었는지 의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망외의 소득은 어쩌면 함곡이 가지고 있는 세간의 평판이나 명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곡 같은 인물이 단지 추측만으로 그런 식의 단정적인 기색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최소한 신빙성 있는 근거라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짐작을 하기 마련이었다.

“역시 함곡의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군.”

풍철한 역시 다를 바 없이 뭔가 근거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물론 함곡이 충분히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함곡이 아니라면 먹히지 않을 일이었다. 또한 그곳을 나오는 추교학을 진운청이 보았다는 점에서 추교학이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관계로 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지만 함곡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풍철한은 아직도 미진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

함곡의 말은 자신이 납득할만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정말 함곡은 단지 아무런 물증 없이 자신의 결론만으로 추교학을 닦달했던 것일까? 풍철한은 서당두의 시신을 살펴보는 함곡의 등을 바라보았다.

“우리 한 번 청룡각에서 살해된 서당두와 신태감의 죽음에 대해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세.”

함곡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생각은 자네가 하기로 하지 않았나? 나는 이제 생각하기 싫네. 자네가 생각하면 나는 그대로 따를 것이네.”

풍철한은 아직도 미심쩍은 마음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불쑥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원… 자네도… 생각해보게. 누군가가 자네의 행동을 예측했다면 자네가 이렇게 나올 것까지 예측하지 못하리란 법이 있나? 자네의 이런 행동 역시 그 자의 예측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네. 그렇다면 어차피 똑같은 결과가 아닌가?”

그도 그럴 듯 했다. 풍철한의 성격과 행동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한다고 파악했을 때 풍철한이 어떠한 태도를 보일지 예상하지 못하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풍철한으로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정말 어처구니없군.”

“누군가 우연을 가장해 자네를 이용하려 한다면 적당한 선에서 이용당해주는 것이 좋네. 그리고 난 후 결정적인 순간의 돌발적인 행동은 자네를 이용하는 상대에 대해 치명적인 비수가 될 수도 있네.”

“……!”

풍철한은 함곡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함곡의 말이 옳은지 몰랐다. 허나 풍철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나는 생각하지 않겠네. 이미 자네의 추측대로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면 그 또한 상대에게 속아주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네.”

그 또한 재미있는 생각이었다. 풍철한이 말을 이었다.

“다만 자네가 생각하는 것에는 도움이 될 수 있네. 나는 생각 없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의문을 던지겠네. 그래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공통점은 무엇인가?”

함곡은 잠시 풍철한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풍철한은 나름대로 복안을 가지고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이 사건의 조사를 포기하거나 무분별하게 행동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도와주면 만족하겠네. 우선은 두 사람의 사인에 관련된 치명적인 공격이 누구의 무공이었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네.”

“서당두가 시비의 고의를 삼키며 질식하고 있던 중이었다고는 하나 사인은 독룡조였고, 신태감의 경우에는 옥음지와 염화신공이었네.”

“구룡의 무학이었고 세 가지가 그들의 사인과 관련이 되어있는 셈이네.”

“자네는 구룡의 후예가 나타났다고 보는 것인가?”

함곡이 웃었다.

“자네가 그랬지 않는가? 구룡의 저주라고… 성급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미 사라진 구룡의 후예이든 아니면 그들의 망령을 이용하는 것이든 분명 구룡과 관계가 있네.”

풍철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말하는 함곡을 보며 또 다른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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