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58회

등록 2007.03.23 08:44수정 2007.03.2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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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똑같이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분명 함곡은 뭔가 감을 잡고 있었다. 윤석진이 말했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좋으이. 두 사람의 사인이 구룡의 무공이었다는 점과 구룡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관계가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하세. 그렇다면 구룡의 무공을 익힌 자가 흉수라고 하더라도 그 자를 어떻게 찾는다는 것인가? 나보고 아무나 붙잡고 일일이 비무(比武)라도 하란 말인가?”


풍철한은 분명 함곡이 두 사람의 죽음과 연관된 공통점을 찾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알면서도 함곡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저 함곡이 말을 하기 편하게 하기 위한 역할만 맡겠다는 모습이었다.

“내 어찌 자네에게 그런 부탁을 하겠나? 또 다른 공통점을 찾아보자는 말이네. 일단 범위를 정하고 또 다른 공통점을 찾으면 찾을수록 그 범위를 좁히게 될 것이고 우리는 흉수나 흉수에 연관된 자를 찾을 수 있을 걸세.”

함곡 역시 풍철한이 의미를 모른 척 하는 태도에 개의치 않았다. 친구를 인정하는 마음과 배려에서였다. 풍철한이 불쑥 말했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 청룡각에서 두 사람 모두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지. 물론 신태감의 경우에는 외부에서 기습을 받긴 했지만 말이네.”

“역시 자네도 많이 생각했었군. 바로 그거네. 그들의 죽음은 바로 이 청룡각에서 이루어졌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풍철한 역시 생각하지도 않은 듯 말을 뱉었다.

“적어도 이 청룡각 안의 누군가가 흉수이거나 흉수와 내통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함곡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풍철한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조사를 하는 입장에서 풍철한과 같은 동료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그는 환시능력이라는 아주 특이한 직감을 가지고 있다.

“그럼 우리는 두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청룡각 내부인이 누군지 생각해보면 간단할걸세.”

“……!”

역시 함곡은 이곳에 오자고 할 때부터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고 온 것 같았다. 풍철한 역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뚜렷한 물증 없이 말을 하기 꺼림칙해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은 청룡각의 시비인 홍교(虹橋)였다. 서당두에게 희롱을 당했고, 신태감의 목욕물을 가져다주었던 시비가 바로 그녀였다. 허나 풍철한은 이곳 청룡각 내에서 그녀의 이름을 거론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게.”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겨우 옆에 있어야 들릴까 말까 하는 정도였다.

“먼저 서당두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세. 우리는 서당두를 죽인 흉수가 두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네. 한 사람은 방문으로 들어와서 방문으로 나갔고, 또 한 사람은 창문으로 들어와 창문으로 나갔네. 방문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방문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니 분명 이 청룡각의 내부인이네. 창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일단 서당두와 그리 친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네.”

저녁 식사 시간이었으니 내부인 중에 다른 사람이 서당두의 방에 들어온 사람은 홍교뿐이었다. 아주 명백했다. 함곡은 말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신태감의 방으로 가 보세.”

풍철한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떡이며 함곡의 뒤를 따랐다. 신태감의 방은 여전했다. 물도 없는 욕조에 빠져있던 신태감의 시신이 침상으로 옮겨져 있을 뿐이었다. 함곡은 욕조 옆으로 다가갔다.

“신태감은 청룡각으로 돌아올 당시 기습을 당해 상처를 입고 있었네. 바로 옥음지에 의한 상처였지. 물론 또 다른 자상(刺傷)이 있었네. 경첩형의 말에 의하면 속명단을 복용하고 금창약을 발라주었다고 했네.”

“목욕을 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바로 그거네. 그저 피를 씻어낼 정도의 물을 원한 것인데 목욕물을 가지고 왔네. 적당히 덮여서 말이지. 그리고 뜨거운 물을 욕조에 계속 부어주러 드나들 수 있었던 사람은 홍교와 당화(棠花)란 시비뿐이었지.”

함곡의 말은 입속으로 중얼거리듯 매우 작아 풍철한으로서도 청각을 최대한 높여 들어야 했다. 그러한 속삭임은 이상하게도 함곡의 말에 신빙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녀들 짓이란 말인가?’

풍철한이 전음으로 물었다. 이곳 어디서 엿들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함곡은 대답을 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속명단을 복용했다면 신태감이 취했을 행동이 무어라고 생각하나?”

“운기를 했겠지.”

“보주께서 신태감의 세 군데 상흔을 보고 천정혈(天鼎穴)에 난 상흔은 다른 옥음지와 틀리다고 했네. 경첩형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이곳에 와서 난 치명적인 상처일 가능성이 높네. 나는 무공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옥음지에 천정혈이 파괴당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정혈은 치명적인 사혈 중의 하나네. 더구나 옥음지에 정통으로 당했다면 그 즉시 죽는다고 봐야지. 아무리 고수라 해도 살아남기 어렵고 숨이 붙어있다 하더라도 일각을 넘기지 못할 걸세.”

더구나 운기를 하는 도중 옥음지에 당했다면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흉수는 두 명이네. 옥음지를 사용하는 자와 염화신공을 가진 자 두 명이란 말이네. 물론 두 가지 무공을 모두 익힌 자라면 한 명이겠지만 말이네.”

여하튼 홍교란 시비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었다. 풍철한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밝혀진 공통점은 특이할 것도 없는 세 가지였다. 구룡의 무공에 당했다는 점과 피살 장소가 청룡각이라는 점, 그리고 청룡각 내부인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풍철한이 애매한 시선으로 함곡을 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제 이러한 모든 사실을 이미 파악해 냈을 걸세. 그런데 지금 와서 이 사실을 굳이 나에게 말해주는 이유가 뭔가?”

풍철한의 질문에 함곡은 이미 예상을 했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네. 더구나 추산관 태감이 들어오면 이 정도 사실은 바로 알아낼 수 있을 걸세. 경첩형이 신태감의 죽음으로 경황이 없었다고는 하나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 모르네. 좀 더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상대를 자극해 물증을 내놓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네.”

경후는 지금 추산관 태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추산관 태감이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보주의 명을 받은 함곡과 풍철한은 조사에 여러 가지 제약을 받을 것이고, 가장 혐의가 짙은 홍교마저 마음대로 신문하지 못할지 모른다.

“어찌하려고 하는가?”

“좌총관에게 부탁을 해야지. 다른 아이를 구해 청룡각에 배치시키라 하고 홍교를 현무각으로 데려오라고 말이네.”

좌등은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부탁을 하려면 지금이 적기였고 서둘러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자네의 두 동생과 선화가 있고, 설소협이나 능대협도 있으니 그 아이를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네.”

풍철한은 이제야 함곡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했다. 함곡은 지금 상대를 충동질해 움직이게 만들려는 것이다.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는 했지만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다행히 풍철한은 물론 반효와 소유향, 선화와 같은 고수가 있었고, 설중행이나 능효봉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당화(棠花)란 아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 말에 잠시 풍철한을 바라보던 함곡이 고개를 흔들며 방안을 다시 한 번 쭉 둘러보았다.

“좀 더 조사할 필요는 있지만 서당두의 사건과는 관계가 없으니 현무각으로 데려가는 것은 일단 보류하기로 하세. 하여간 우리도 추산관 태감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야 하지 않겠나? 그 전에 좌총관을 만나야 하고 말이야….”

풍철한이 갑자기 급한 마음이 들었는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허나 풍철한은 아직 그를 따라 나가는 함곡이 가장 중요한 살해 동기와 구룡의 무공으로 애써 상흔을 남기려 했는지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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