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중 알콜 0.29%'에도 무죄받은 사연

법원 "경찰 채혈 과정에 문제있다"-피고인 "난 술 한 방울 안 마셨다"

등록 2007.03.22 22:45수정 2007.03.2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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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결과 혈중알콜 농도가 0.294%(위드마크 공식 적용 결과)로 나왔던 김용현(56·전남 목포)씨가 2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의 이같은 이례적인 판결은 교통단속 경찰관들이 채혈과정에서 단속지침을 반드시 지키도록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오전 광주지방법원 형사1부(항소·재판장 이주원 판사)는 201호 법정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운전을 하기 전 술을 마셨다는 진술이 없는 상태에서 음주측정을 위한 채혈과정 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한 1심 선고를 인정,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잘못된 채혈, 국과수 감정결과 인정안해... 2심서도 무죄

a 지난해 10월 기자를 만난 김용현씨는 "전날 술을 마셨다면 이해라도 하겠다"며 "경찰이 잘못해 누명을 씐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기자를 만난 김용현씨는 "전날 술을 마셨다면 이해라도 하겠다"며 "경찰이 잘못해 누명을 씐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승후

이주원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검찰이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한 것에 대해 1심 판결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선고 취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았다.

국과수의 감정결과 혈중알콜 농도가 0.294%가 나왔음에도 김용현씨가 잇따라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은, 음주측정을 위한 채혈 과정과 보관 과정에서 오염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교통사고 이후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며 음주운전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왔다.

경찰청은 지난 2003년 내부 사이트에 '교통단속처리지침'과 '교통사고처리지침'을 공지하고 "음주측정을 위한 채혈시에는 반드시 무알코올 소독제로 소독해야 한다"며 지급된 채혈 세트(무알코올 소독제·주사기·보관용기)를 반드시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김용현씨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들은 목포 한 병원이 김씨 수술전 에틸알코올(85%) 소독제를 사용해 채혈한 것을 국과수에 감정 의뢰했다. 에틸알코올은 술에 포함된 알코올 성분과 똑같은 것으로 혈액 오염가능성 때문에 음주측정시에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최초로 출동한 119대원과 경찰관 등이 '술 냄새가 났다'거나 '술을 마신 것 같았다'는 진술이 없었고, 교통사고 전 김씨와 함께 일했던 이들 역시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진술한 상황에서 유일한 증거는 국과수 감정 결과 뿐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유일한 증거를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10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반정모 판사는 1심 선고 공판에서 "혈액채취 과정이나 보관과정에서 불순물이 혼입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에 비춰 국과수 감정결과 및 감정인의 진술만으로 음주운전을 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또한 법원은 ▲사고 당일 김씨와 함께 일했던 이아무개, 안아무개씨 등이 전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진술한 점 ▲목포전남병원 소견서·사실조회서에서 김씨가 '의식이 명료했고 비정상적인 행동은 없었고 의사소통 상태로 보아 만취 상태로 사료되지 않았다'고 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너무 억울했는데 기쁘다.. 국가 보상절차 밟을 것"

국과수 감정인은 2심 공판에서 "이론적으로 오염 가능성이 있지만 본 건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일선 경찰들은 "아무리 오염이 됐다고는 하지만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만취상태의 결과가 나올수 있느냐"며 의아해 했다.

2심에서도 무죄 선고받은 직후 만난 김용현씨는 "처음에는 변호사를 구하기도 힘들었다"며 "어떻게 한 방울도 안 마셨는데 그런 수치가 나올 수 있느냐, 국과수 감정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들 말하고 변호를 맡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1년여 동안 마음 고생도 많이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경제적 비용도 많이 들었다"면서 "무엇보다 정말로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진실을 믿어주지 않는 시선이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전체적인 채혈과정 등을 주의하지 않으면서도 국과수 감정결과 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라며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론을 맡은 이정학 변호사는 "이 사례는 상당히 특이한 사례"라면서 "모든 증인들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거나 '만취상태는 아니었다'고 증언해서 국과수 감정결과만이 유일한 증거였는데 이것이 유죄의 증거로 보기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김씨는 지난해 3월 함평에서 농사일을 하다 자재를 사러가는 도 중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나 수술을 받았다. 검찰은 국과수 감정결과를 근거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약식기소해 면허취소와 벌금 400만원을 통보했다.

김씨는 국과수에 샘플 오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DNA 검사도 했지만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김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한 후 채혈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돼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검찰은 항소한 바 있다.

에틸알코올 소독제, 혈중알코올 농도에 얼마나 영향줄까
일선 경찰들, 채혈과정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

경찰청은 지난 2002년 1월 교통단속처리지침을 개정해 호흡측정을 1회만 실시하고 피측정자가 불복하는 경우에는 바로 혈액분석을 하도록 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혈액채취를 통한 혈중알코올농도 감정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혈액분석 결과가 호흡측정결과 보다 피측정자에게 유불리를 떠나 최종측정결과로 인정돼 감정결과가 유죄판단과 행정처분 결정적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피측정인에 따라 호흡측정 보다 더 많은 수치가 나오는 경우도 있으며 더 적은 측정치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혈액분석 의뢰 건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채혈 과정과 보관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크게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경찰청의 단속 지침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취재결과 일선 경찰들은 채혈용 세트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도 0.12% 측정될 수도"

에틸알코올 소독제를 사용해 채혈을 했다고 해서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운전자가 혈중 알코올 농도 0.294%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은 채혈 과정의 문제점 때문이다.

도대체 에틸알코올 소독제를 사용해 채혈할 경우 얼마나 농도에 영향을 줄까.

전문가들은 "에틸알코올이 묻은 솜으로 소독하고 채혈할 경우 혈중알코올 농도 감정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수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 법의학전문가는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구체적인 데이터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남현 경찰대학 경찰학과 교수가 지난 2002년에 발표한 소논문은 흥미롭다. 김 교수는 <교통안전연구논집> 제21호에 발표한 '음주운전 단속에서 혈액분석법 운용상의 문제점 고찰'을 주제로 한 논문에서 외국 학자의 저술을 인용해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의 경우도 0.12%감정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채혈 직전 알코올 성분 소독제로 피부를 소독할 경우 "테스트가 알코올의 극소량도 감지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점을 고려하건대 그 영향은 심대한 것 일 수 있다"며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이라도 처벌수치인 0.12%가 측정될 수 있다고 한다"(인용 : Taylor, Lawrence, Drunk Driving Defense, Aspen Law & Business, 1999)고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이 논문에서 "혈액분석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담당하는 국과수의 사회적 신뢰성 때문에 분석이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며 "하지만 혈액분석절차 전체를 개관해 볼 때 그 신뢰성을 의심할 수 있는 여지는 많이 있을 것"이라며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교통지도계 등 일선 경찰 45명을 면담한 결과 "혈액채취를 위해 소독시 알코올 사용, 피채혈자가 타인의 혈액으로 교체한 경우, 혈액시료를 즉시 국과수로 보내지 않고 장시간 사무실에 방치한 경우 등을 오류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 경찰서의 경우 채혈을 실시한 병원 중 채혈시 75%의 알코올 성분의 소독용 거즈로 피부를 소독한 경우가 모두 43회 중 39회에 이른 경우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처럼 일선 경찰들이 채혈 과정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 교수는 ▲혈액 샘플 오염(알코올 성분 소독제 사용) ▲혈액 샘플 발효(보관상 문제) ▲전체 혈액 성분이 아닌 혈청, 혈장의 분석 ▲동맥혈과 정맥혈(부위에 따라 결과에 영향) ▲보관 과정 등이 감정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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